머리 기사
딸과 함께 '감사일기'를 쓰고,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2023년 1월 15일 일요일은 특별할 것이 없는 아주 평범한 휴일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저는 심심해서 SNS 앱을 접속했다가 한 이웃님이 감사일기에 대해서 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실 내용도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다만 누군가가 감사일기를 쓴 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제 마음에 울림을 준 날이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감사일기를 쓴다는 사실도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부자가 된 유명 강사들이 감사일기를 써야한다고 외치는 강연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 삶에 적용할 의지는 1%도 생겨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날 얼굴도 한 번 본 적이 없는 온라인의 누군가가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는 그 사실은 머릿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더라고요. 그때의 그 글이 3월 말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과 함께 쓰는 '감사일기'
저는 타인과 경쟁하는 게 제 노력의 원동력인 사람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점수와 등수에 매우 민감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이 성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남과의 '비교'에 에너지를 쏟는 사람이었어요. 자연스레 제 머릿속에서는 그리고 제 입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시기와 질투도 참 많이 했죠.
이런 제 성향이 저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자식을 낳고 나니, 그것도 셋이나 낳고 보니 이런 저의 부정적 성향은 제 삶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도 갉아먹는 해로운 습관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1년 반 전쯤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전에는 책을 한 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했던 제가 육아휴직을 하며 세 아이를 돌보면서도 세 달 동안 30권 넘게 읽었습니다.
책이고 강의고 닥치는 대로 읽고 보며 깊은 내면의 우울,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어요.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존감 회복'을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도 마음의 건강을 얻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던 중 글 초반부에 밝혔듯 블로그에서 한 이웃이 감사일기를 쓴다는 글을 읽게 된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아니라, 100억대 자산가가 아니라, 평범한 내 이웃이 감사일기를 쓴 다는 그 글이 오히려 제 마음을 움직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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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23 농부, 아티스트, 시민들이 국립극장에 모인 이유
지난 18일(토) 서울시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농부시장 '마르쉐'에 다녀왔다. 우리 부부는 종종 마르쉐에 간다. 물론 장 보러 가는 이유도 있지만 문화 생활하듯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방문했다.
버스에서 내려 국립극장 언덕을 올라갔다. 완연한 봄을 연주하는 듯한 산뜻한 음악 소리가 들린다. 국립극장 입구에 들어서자 공공공간에 둥그렇게 장터가 조성되었다. 하얀색과 노란색의 파라솔 아래에서 생산자들이 농산물과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구매할 식재료와 각종 가공품을 둘러보면서 생산자이자 판매자인 농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채소와 과일 그리고 가공품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상세히 들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식도 가능하고 상추를 사면 제철 나물을 덤으로 주기도 한다.
우리 부부도 송화버섯, 당근김치, 사과주스를 구매하고 재활용 종이를 활용해 채소 봉투를 만들었다. 송화버섯을 구매하며 생산자와 대화도 나누었다. 송화버섯은 10도 정도 환경에서 재배된다. 식감은 단단하고 쫄깃하다. 부드러운 표고버섯과는 식감에서 차이가 있고 재배 방법도 차이가 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대화하는 시장 마르쉐
서울 도심지 한복판에 장터를 연 이들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은가. 마르쉐는 장터, 시장이라는 뜻의 프랑스어(marché)에서 차용한 단어다. 생산자와 대면할 수 있는 도심 속 시장이다.
2012년 10월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처음 열렸다. 돈과 물건의 교환만 이루어지는 시장이 아닌 사람, 관계, 대화가 있는 시장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실 전통시장에 가더라도 우리는 상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요즘 왜 바나나가 비싼지, 애호박은 통 보이지 않는지 상인들에게 전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상인들은 생산자가 아닌 유통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마르쉐에 농산물을 판매하는 이들은 전부 생산자이자 판매자다. 누구보다 농산물에 관해 잘 아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종종 방문하다 보니 마르쉐만의 분위기와 가치를 체감한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눈과 귀 그리고 손과 발로 느껴진다. 신조어로 표현하자면 '마르쉐 바이브'가 느껴진달까.
먼저 마르쉐는 불필요한 포장을 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을 지양하고 종이 혹은 신문지를 재활용하여 포장을 최소화한다. 장바구니가 없는 방문객을 위해 수거해 둔 종이가방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마르쉐에 방문하는 이들도 이런 문화에 익숙한 듯 장바구니와 다회용기 그리고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
공연과 체험을 곁들인 문화장터
둘째, 마르쉐는 장보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팝업스토어나 축제 장소처럼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팝업 공간이기도 하다. 음악 공연과 체험 공간 그리고 워크숍 등이 열린다. 문화장터인 셈이다.
특히 마르쉐는 3월~5월 셋째주 토요일 국립극장에서 '아트 인 마르쉐' 봄 시즌을 열고 있다. 이날 열린 문화시장이 아트 인 마르쉐의 첫 시작이다. 덕분에 채소와 음악을 통해 눈과 귀로 봄 내음을 만끽하고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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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23 "자존감 높아졌다" 기자보다 노가다가 좋은 10가지 이유

"청춘에게 고하노니 방황하지 마라. 직업의 귀함과 천함은 사람들의 시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달려있다. 나와 직업 궁합이 맞으면 그게 천직이다.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장밋빛 청사진만 꿈꾸지 말고 지금 당장 칩거하고 있는 방을 박차라.
길은 있다. 가끔은 울퉁불퉁하지만 그래도 그 길은 가볼 만하다. 지름길만 찾다 보면 되레 오르막길만 보이게 된다. 살다 보면 정신에도 근육이 붙는다. 난 팔 힘만 있으면 피 튀기는 현장 속에서 버티고, 감내하면서 하루를 맞을 것이다. 설령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잠시 파열돼도 말이다."
1987년 캠퍼스는 최루탄과 화염병, 그리고 포악무도한 군사독재 정부의 서슬 퍼런 압재가 밤이슬을 적시고 있었다. 당시 나는 투사가 아니라 들러리에 가까웠다. 민주화운동의 변방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고 유혈이 낭자한 거리에서 막걸리에 취해있었다. 자본주의가 싫었지만, 사회주의에도 경도되지 않았다. 짝사랑마저 좌절되자 꿈은 시들었다. 그 꿈을 이룰 희망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그때 도피처가 군대였고 3년을 세상으로부터 도망 다녔다.
1994년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을 때, 백수의 어두운 그림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1년을 영화 시나리오 공부를 하며 소일했다.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본기가 없었는지 이력서를 83곳에 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물론 낙방의 이유는 83가지가 넘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는데 이력서를 낸 곳이 대부분 이공계였다.
이후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 지방의 한 신문사에 입사했다. 기자의 길은 결코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 영화 쪽 일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늘 예측한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비껴가면서 시험대에 세우곤 한다. 그렇게 시작된 기자 생활은 1년, 5년을 넘어 30년 가까이 총알처럼 흘러갔다.
나는 '기자'로 살지 않고 '직장인'으로 살았다. 정말 치열했다. 1년 차, 3년 차, 6년 차, 9년 차 등 '3의 배수'로 위기가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용케도 버틸 거리가 생겼다. 아기가 태어났고, 전셋집을 구했으며, 승진했다. 15년 차가 됐을 때 난 편집국 간부가 돼 있었고, 논설위원까지 겸직했다. 취재와 편집은 물론 사설과 칼럼을 썼고 심지어 광고 관리에도 한발 담갔다.
회장과 사장단 앞에서 회사 발전에 대한 프레젠테이션(PPT)하느라 수시로 불려 갔고, 사장의 각종 행사 연설문 작성도 남몰래 전담했다. 몸은 한 개인데 일곱 가지 업무를 하다 보니 폭음도 함께 늘어났다. 그러나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다. 기자의 일은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주말, 휴일은 물론 여름휴가까지 반납하면서도 난 일에 빠져들었다. 내가 없으면 신문사가 망한다는 착각으로 온몸을 바쳐 일하는 '회사 인간'이었다. 어쩌면 일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노가다'처럼 했다. 문제는 정신적인 노동이 육체를 좀먹는다는 거였다. 흔히들 육체노동이 정신을 지배한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정신과 육체는 합일(合一)된다. 둘 중 하나가 무너지면 둘 다 무너진다.
결국 정신과 전문의도 만났다. 알약 한 움큼씩을 입에 털어 넣어야 머릿속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내는 자세히 묻지 않았으나 눈물로 현실을 증명했다. 난 스스로 열정이라고 변명했지만, 실은 정신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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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23 마음이 '갑갑'할 땐 갑오징어 볶음을 먹는다
책을 기획하고 쓰느라 거의 2년여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여성의 삶'을 큰 주제로 두고 30대부터 50대까지 나이도 살아온 생의 결도 제각각인 세 사람이 마음을 다해 고군분투 중이다.
처음 기획했을 때만 해도 한 일 년이면 모든 것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그래도 책을 한 권 이상은 내 본 사람들이라 글 쓰기 근육이 제법 단단하게 붙어 있기에 세 사람의 공력이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가도 싶었다. 근데 웬걸, 수정과 교정을 거치는 회의의 연속이다.
육신이 지치고 마음이 답답할 때 먹는 한 끼의 밥
사실 모든 일을 계획적으로 진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극 'J'의 성향을 지닌 나라서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지난 겨울 과정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올봄엔 새 책을 주변에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도 여즉이다.
슬금슬금 육신은 지치고 마음이 답답해진 게 며칠째다. 가뜩이나 입맛이 없어 어떻게든 끼니를 거르지 않으려고 무한 애를 쓰는 중, 이런 일까지 겹치니 입안이 온통 까끌까끌하다. 그래도 회의가 있는 날이면 으레 셋이 같이 식사를 하게 되는지라 무엇이든 먹게 되니 1식을 내 손으로 준비해야 하는 수고로움에서 잠시 해방이 되는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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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기획했을 때만 해도 한 일 년이면 모든 것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그래도 책을 한 권 이상은 내 본 사람들이라 글 쓰기 근육이 제법 단단하게 붙어 있기에 세 사람의 공력이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가도 싶었다. 근데 웬걸, 수정과 교정을 거치는 회의의 연속이다.
육신이 지치고 마음이 답답할 때 먹는 한 끼의 밥
사실 모든 일을 계획적으로 진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극 'J'의 성향을 지닌 나라서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지난 겨울 과정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올봄엔 새 책을 주변에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도 여즉이다.
슬금슬금 육신은 지치고 마음이 답답해진 게 며칠째다. 가뜩이나 입맛이 없어 어떻게든 끼니를 거르지 않으려고 무한 애를 쓰는 중, 이런 일까지 겹치니 입안이 온통 까끌까끌하다. 그래도 회의가 있는 날이면 으레 셋이 같이 식사를 하게 되는지라 무엇이든 먹게 되니 1식을 내 손으로 준비해야 하는 수고로움에서 잠시 해방이 되는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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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23 딸과 함께 '감사일기'를 쓰고,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2023년 1월 15일 일요일은 특별할 것이 없는 아주 평범한 휴일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저는 심심해서 SNS 앱을 접속했다가 한 이웃님이 감사일기에 대해서 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실 내용도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다만 누군가가 감사일기를 쓴 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제 마음에 울림을 준 날이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감사일기를 쓴다는 사실도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부자가 된 유명 강사들이 감사일기를 써야한다고 외치는 강연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 삶에 적용할 의지는 1%도 생겨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날 얼굴도 한 번 본 적이 없는 온라인의 누군가가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는 그 사실은 머릿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더라고요. 그때의 그 글이 3월 말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과 함께 쓰는 '감사일기'
저는 타인과 경쟁하는 게 제 노력의 원동력인 사람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점수와 등수에 매우 민감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이 성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남과의 '비교'에 에너지를 쏟는 사람이었어요. 자연스레 제 머릿속에서는 그리고 제 입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시기와 질투도 참 많이 했죠.
이런 제 성향이 저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자식을 낳고 나니, 그것도 셋이나 낳고 보니 이런 저의 부정적 성향은 제 삶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도 갉아먹는 해로운 습관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1년 반 전쯤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전에는 책을 한 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했던 제가 육아휴직을 하며 세 아이를 돌보면서도 세 달 동안 30권 넘게 읽었습니다.
책이고 강의고 닥치는 대로 읽고 보며 깊은 내면의 우울,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어요.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존감 회복'을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도 마음의 건강을 얻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던 중 글 초반부에 밝혔듯 블로그에서 한 이웃이 감사일기를 쓴다는 글을 읽게 된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아니라, 100억대 자산가가 아니라, 평범한 내 이웃이 감사일기를 쓴 다는 그 글이 오히려 제 마음을 움직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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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23 회의가 얼어붙는 순간 "한 명씩 말해봅시다"
영화 <그래비티>를 봤는지 모르겠다. 간단히 얘기하면 우주에서 혼자 살아남은 주인공이 지구로 귀환하는 이야기인데, 집중하다보면 무서운 장면 하나 없이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우주 파편에 의해 동료를 잃고 우주를 떠돌게 되는데, 직장에서 그녀의 심정을 10분의 1쯤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의견을 모으는 회의 시간이다. 여기서 리더의 발언 하나가 우주 파편쯤 되는데 그건 바로...
"돌아가면서 한 명씩 말해 봅시다."
순간 회의실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마치 엄청난 속도로 지구를 돌고 있던 우주 파편이 우주 정거장을 휩쓸고 지나가듯 순식간에 위기 상황이 만들어진다. 가히 가공할 만한 위력이다. 사자후도 아닌 것이 한순간에 모두를 제압한다.
이런 회의는 괜찮지 않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은 우주를 떠도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게 된다. 막막함과 걱정, 떨리는 눈빛과 바짝 긴장한 자세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빠른 속도로 주위를 둘러보며 다들 괜찮은지, 누구라도 자신을 구해 줄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것도 비슷하다.
개중에는 반쯤 포기한 자세를 보이는 이도 있는데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유유히 우주로 사라져갔던 남자 배우가 오버랩 되어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느꼈던 안쓰러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회의는 필요하다. 작은 일 하나를 처리할 때도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다보면 더 좋은 방법이 나오기도 하고 예상되는 걸림돌을 발견하여 사전에 조치하기도 한다. 더 나은 방향을 가늠하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는 일은 빨리 시작하자면서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보다 훨씬 건설적이다. 하지만 반드시 모두의 입이 필요하진 않다.
어떻게든 말을 하게 하려는 회의가 있다. 리더의 입장에서 빨리 많은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싶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 리더는 리더만의 남다른 압박감이 있기에 구성원이 그 압박감을 덜어주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강제된 분위기는 좀 곤란하다.
"누구부터 말해볼까?"
아직 남아 있던 파편이 뒤늦게 들이닥친다. 결정타다. 눈이 내리깔린다. 이젠 주변을 살펴볼 여유도 없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위기를 직면하게 될 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외면부터 해야 한다. 다행히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누군가가 입을 연다. 됐다. 이제 중언부언의 시간이다.
"OOO 책임이 말한 것처럼, 이러저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러이러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러저러가 나은 것 같네요."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만, 이래저래는 어떨까 싶습니다."
아무도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배려가 이런 회의를 만들기도 한다. 사람의 기질이 모두 다른 탓에 멍석이 깔려야만 비로소 활약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깔린 멍석은 너무 작다. 모두를 위한 사이즈가 아니다.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제대로 뛰놀지도 못한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강제하지도 않으면서 모두의 의견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모두가 뛰어놀 수 있는 멍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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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우주 파편에 의해 동료를 잃고 우주를 떠돌게 되는데, 직장에서 그녀의 심정을 10분의 1쯤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의견을 모으는 회의 시간이다. 여기서 리더의 발언 하나가 우주 파편쯤 되는데 그건 바로...
"돌아가면서 한 명씩 말해 봅시다."
순간 회의실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마치 엄청난 속도로 지구를 돌고 있던 우주 파편이 우주 정거장을 휩쓸고 지나가듯 순식간에 위기 상황이 만들어진다. 가히 가공할 만한 위력이다. 사자후도 아닌 것이 한순간에 모두를 제압한다.
이런 회의는 괜찮지 않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은 우주를 떠도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게 된다. 막막함과 걱정, 떨리는 눈빛과 바짝 긴장한 자세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빠른 속도로 주위를 둘러보며 다들 괜찮은지, 누구라도 자신을 구해 줄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것도 비슷하다.
개중에는 반쯤 포기한 자세를 보이는 이도 있는데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유유히 우주로 사라져갔던 남자 배우가 오버랩 되어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느꼈던 안쓰러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회의는 필요하다. 작은 일 하나를 처리할 때도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다보면 더 좋은 방법이 나오기도 하고 예상되는 걸림돌을 발견하여 사전에 조치하기도 한다. 더 나은 방향을 가늠하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는 일은 빨리 시작하자면서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보다 훨씬 건설적이다. 하지만 반드시 모두의 입이 필요하진 않다.
어떻게든 말을 하게 하려는 회의가 있다. 리더의 입장에서 빨리 많은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싶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 리더는 리더만의 남다른 압박감이 있기에 구성원이 그 압박감을 덜어주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강제된 분위기는 좀 곤란하다.
"누구부터 말해볼까?"
아직 남아 있던 파편이 뒤늦게 들이닥친다. 결정타다. 눈이 내리깔린다. 이젠 주변을 살펴볼 여유도 없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위기를 직면하게 될 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외면부터 해야 한다. 다행히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누군가가 입을 연다. 됐다. 이제 중언부언의 시간이다.
"OOO 책임이 말한 것처럼, 이러저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러이러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러저러가 나은 것 같네요."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만, 이래저래는 어떨까 싶습니다."
아무도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배려가 이런 회의를 만들기도 한다. 사람의 기질이 모두 다른 탓에 멍석이 깔려야만 비로소 활약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깔린 멍석은 너무 작다. 모두를 위한 사이즈가 아니다.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제대로 뛰놀지도 못한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강제하지도 않으면서 모두의 의견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모두가 뛰어놀 수 있는 멍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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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23 25년간 숨어 있던 인정욕구가 다시 꿈틀거립니다
잔잔하게 깔리는 음악에 중저음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별이 빛나는 밤에~" 하면 하루가 끝나고 나만의 밤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듯 나즈막하게 속삭여주는 DJ의 목소리는 입시를 준비하느라 힘들고 불안했던 고교 시절에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책상 위에 잔뜩 펼쳐놓은 문제집은 뒷전이고, 머리 속으로는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녹음실에서 헤드셋을 쓰고 마이크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극현실주의에 결정장애까지 있는 내가 보자마자 고민없이 '서대문 FM라디오 만들기' 수업을 신청한 건 아마도 그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 수업이 있던 날, 센터까지의 교통편과 소요시간을 몇 번씩 검색하고 여유있게 출발했는데 센터의 입구를 못 찾고 헤매느라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낯선 동네, 낯선 건물, 낯선 방송실에 낯선 사람들까지, 역시나 이번에도 낯가림은 만만치않은 첫 번째 난관이었다. 우리집 작은 방 만한 크기의 좁은 방송실에 수강생은 고작 6명, 그것도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으니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했다.
집 밖을 나서며 이제까지와는 다른 나를 만들어보리라 결심했기에 용기를 내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서 어색하기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다행히도 모두 반갑게 내 인사를 받아주었고, 먼저 인사를 건넨 것만으로도 첫날의 미션을 완수한 것 같아 긴장이 좀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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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잔뜩 펼쳐놓은 문제집은 뒷전이고, 머리 속으로는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녹음실에서 헤드셋을 쓰고 마이크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극현실주의에 결정장애까지 있는 내가 보자마자 고민없이 '서대문 FM라디오 만들기' 수업을 신청한 건 아마도 그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 수업이 있던 날, 센터까지의 교통편과 소요시간을 몇 번씩 검색하고 여유있게 출발했는데 센터의 입구를 못 찾고 헤매느라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낯선 동네, 낯선 건물, 낯선 방송실에 낯선 사람들까지, 역시나 이번에도 낯가림은 만만치않은 첫 번째 난관이었다. 우리집 작은 방 만한 크기의 좁은 방송실에 수강생은 고작 6명, 그것도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으니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했다.


집 밖을 나서며 이제까지와는 다른 나를 만들어보리라 결심했기에 용기를 내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서 어색하기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다행히도 모두 반갑게 내 인사를 받아주었고, 먼저 인사를 건넨 것만으로도 첫날의 미션을 완수한 것 같아 긴장이 좀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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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23 문과 남편과 이과 아내의 대화... 남편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의 불화·반목·갈등을 토대로 만들어진, 막장 드라마나 다름없는 흙벽은 간신히 완성됐고, 남편은 24개의 서까래와 서까래가 모이는 원통도 모두 만들었다. 이제 흙벽 위에다 서까래를 거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흙집이 원형이다 보니 서까래를 거는 게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남편이 읽은 흙집 관련 책이 아무리 상세하게 시공 방법을 설명한다고 해도, 책만 읽고 직접 흙집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흙벽을 쌓는 것은 우리 둘의 몸을 갈아 넣어서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었지만, 나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시작되자 남편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은 집 짓는 현장에서 책을 펼치고 서까래와 관련된 부분을 몇 번이나 읽었는데, 고개만 저으며 책에 도돌이표라도 찍힌 것처럼 그 부분만 반복해서 거듭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건축이나 흙집에 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없는 남편에게 책이 답을 줄 수는 없었다. 책에 적히지 않은 공백들이 남편을 괴롭히는 듯했다.
"뭐 해? 진도 안 나가? 기술이 없어서 못 하겠으면, 포기하고 흙벽 위에다 지붕 대신 그냥 비닐이나 가빠, 거적때기 같은 거로 덮으면 되겠네."
남편이 흙벽만 덩그러니 세운 채 흙집 짓기를 그만두지 않을까 속으로 걱정했지만, 일부러 독하게 말을 뱉었다. 이 남자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옆에서 같이 걱정하고 위로해 주면 안 된다. 그냥 막 강하게 밀어붙이고 조롱도 섞어 줘야 제정신을 차린다. 그게 이 남자를 조련하는 방법이다.
"아니, 진도만 막 치고 나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이제부터는 좀 고민을 해서 정교하게 작업을 하려고 뜸을 들이는 거지, 기술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남편이 반복해서 읽고 있는 책을 빼앗아 서까래와 관련된 내용을 한번 훑어봤다. 24개의 서까래 끝을 원통 안에 판 홈에다 집어넣어야 한다. 그러면 원이 360도 이고, 360도 ÷ 서까래 24개=15도 아닌가.
'아니, 무슨 굉장히 어려운 기술적 난관에 직면한 줄 알았더니만, 이깟 산수 문제였다고?'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책에는 이 내용도 모두 적혀 있었는데, 남편은 이해를 못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강하게 밀어붙이면 남편은 저기 멀리 읍내 술집으로 튕겨 나갈 것이다. 조련사의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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