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에이수스, 차세대 AMD 라이젠 프로세서 지원 메인보드 바이오스 업데이트 발표
글로벌 컴퓨팅 전문 기업 ASUS의 한국 지사인 에이수스 코리아(지사장 강인석, 이하 에이수스)가 차세대 AMD 라이젠 프로세서 지원하는 메인보드 바이오스 업데이트를 발표했다. 이번 바이오스 업데이트로 ROG CROSSHAIR, ROG STRIX, TUF GAMING, ProArt, PRIME, EX, AYW 시리즈의 AMD AM5 X670, B650 및 A620 칩셋 메인보드는 최신 AMD 라이젠 8000 시리즈 및 7000 시리즈 프로세서는 물론 차세대 라이젠 프...
지난 3월 30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난데없이 한국의 벚꽃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것도 기시다 총리의 방미(4월 8일~14일)를 코앞에 두고 말이다.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을 중심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일본산 벚나무를 토종 제주 왕벚나무로 교체해 가는 '왕벚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였다. 1면에 이어서 5면 전면에 관련 기사를 꼼꼼하게 다루고 있었다. 

벚꽃 묘목 번식을 위한 노력과 연구원들이 통계와 함께 구체적인 교체 작업 계획을 모두 직접 취재했고, 예민한 주제인 한일 벚꽃 원조 논쟁에 대해서는 양국 전문가의 의견을 모두 실었다. 조심스럽게 양국의 시선을 담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기사였지만, 한국 벚꽃이 한라산의 모계와 부계 사이의 자연종 즉 자생종이고 일본의 경우 인위적 교배에 의한 벚꽃임을 잘 전하고 있었다. 

'벚꽃 교체보다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일본 전문가의 말을 삽입하면서 벚꽃에 '민족주의 프로파간다'가 존재한다는 표현도 사용했다. 긴 내용이었지만 내게는 이런 뚜렷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한국에는 벚꽃의 자생지가 있고, 중요 장소에서부터 국산 왕벚꽃으로 교체할 것이다.' 

제주 왕벚꽃으로 한국 전역을 덮을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벚꽃과 한국을 연결시킨 <뉴욕타임스> 기사가 반가웠던 건, 오랜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무명의 '식물 전도사'로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건 중학교 역사 선생님 덕분이었다. 잡다한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역사를 다양한 정보와 연결해 가며 수업하시는 선생님과 코드가 맞았다. 선생님의 낚시성 질문에 곧잘 엉뚱한 답을 내뱉으면서도 부끄러움보다 재미가 있었다. 

당시 중학교 뒤에는 부산 원예고등학교가 있었다. 봄에는 '난 전시회'가 있었고 가을이면 꽤 큰 규모의 '국화 축제'가 열렸다. 선생님은 우리가 앉아있는 교실 뒷담 너머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식물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인 장소라고 일러 주셨다. 바이러스에 강한 튼튼한 강원도 감자, 제주 감귤과 유채꽃, 한국형 배추와 무 같은 채소들, 서양인들을 놀라게 한 겹 페튜니아꽃 등이 학교 뒷담 너머에서 연구되었다니.

교과서에서 이름 석 자만 읽고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천재적인 육종 기술 과학자 '우장춘 박사'를 선생님은 생생하게 끌어올려 주셨었다. 자립 영농을 위해 애쓰는 우 박사를 직접 방문해 지원금을 주기도 했던 이승만 대통령 이야기도 곁들어 들었다. 왜색을 싫어해 벚꽃을 찍어 없애기도 했지만, 미국 워싱턴에 피는 벚꽃이 한국산임을 알리고 싶어 했단다. 

워싱턴에 피는 한국 벚꽃이라니. 선생님의 이야기에 대한 내 기억은 거기에서 그친다. 어른이 된 후 직접 보게 될 줄, 선생님 이야기를 퍼뜨리며 살게 될 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미국으로 옮겨와 살면서 보니 벚꽃은 워싱턴 D.C.의 인공 호수 주변에만 깔린 게 아니었다. 1912년, 일본은 워싱턴 D.C.에 3020그루, 이후 뉴욕에 무려 6천 그루의 벚꽃을 기증했다. 뉴욕에 이사 와 워싱턴 못지않은 벚꽃 축제와 사방에 깔린 벚꽃 가로수를 보고 놀랐다. 버지니아주의 주화이자 주목은 도그우드(Dogwood)라는 꽃나무이다. 아이들 손바닥만한, 크고 하얀 꽃. 그런데 이 꽃보다도 벚꽃 거리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을 보고 속이 상했었다. 

처음엔 좋아라 꽃구경을 다니다가, 주변 이웃과 관광객들이 '일본 벚꽃'이라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괜한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미안하지만, '동양 벚꽃(Oriental Trees)'이야. 미국이 진주만 공격을 당한 후에 공식 명칭이 바뀌었지. 이게 다 일본 나무도 아니고 한국산도 많아"하고 일부러 말해주곤 했다. 
  
몇 년 전 워싱턴 D.C. 북쪽과 인접한 메릴랜드주에 살 때였다. 근처에 NIH(미국 국립보건원)가 있어서 한국과 일본 연구원 가족이 아파트 단지에 많이 살았다. 봄이 되면 아파트 단지에 둘린 벚꽃 나무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가을이 되면 황금빛 단풍과 낙엽이 장관을 이루었다. 일본 연구원 가족이 '사쿠라'라고 하는 건 그렇다 치고 미국인들 특히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부르는 건 참기 힘들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작문 숙제나 글짓기 대회에 나가 '한국산 제주 왕벚꽃'을 주제로 글을 쓰게 한 것이.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키려다 보니 나도 공부 아닌 공부를 하게 되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딸은, 반세기 전 자신의 생일과 같은 날 왜 워싱턴의 한 대학 교정에 벚나무를 심게 되었는지 작문을 해 유명 교육출판사 '스콜라스틱'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벚꽃' 이름을 찾아주려는 선조들의 노력 
전체 내용보기
 
내가 국어 교사로 퇴직했다고 하면, "아이고, 우리말 맞춤법 참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러니 우리말을 맞춤법에 맞게 적기는 쉽지 않다. 표준 발음법과 어법을 알아야 비로소 바르게 적을 수 있지 않겠는가.  

고등학교에서 한글 맞춤법 교육을 제대로 하면 한글 맞춤법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어들 테지만, 현행 고등학교 교육과정상 그러기는 불가능하다. 한글 맞춤법을 가르칠 수 있는 독립된 과목은 아예 없다. 중학교 교육과정에도 한글 맞춤법을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글 맞춤법 교육은 초등학교 때의 '받아쓰기'에서 멈춘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터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사람들이 우리말 맞춤법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건 당연할 일이다. 학교에서 체계적인 맞춤법 교육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말 맞춤법에서 애를 먹는 것 중 하나가 '-이' 또는 '-히'가 붙어 문장 내에서 부사어로 쓰이는 낱말들이다.

'깨끗이'라고 써야 할까 아니면 '깨끗히'라고 써야 할까? 헷갈리는 사람이 상당하리라 생각한다. '깨끗이'라고 쓰고 '[깨끄시]'라고 소리 내야 맞춤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데 '깨끗히'라고 쓰고 '[깨끄치]'라고 소리 내는 사람도 많은 실정이다. '-이' 또는 '-히'가 붙어 문장 내에서 부사어로 쓰이는 낱말들을 맞춤법에 맞게 적으려면 공부를 조금 해야 한다. 다음은 한글 맞춤법 제51항의 규정이다.

제51항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

이 규정만으로는 '-이'로 적어야 할지 '-히'로 적어야 할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 '이'로 나고 어떤 경우에 '히'로 나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글 맞춤법 제51항의 규정에서 '이'로만 소리 나는 단어의 예로 '깨끗이'를 들고 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깨끗이'의 경우 어떤 사람은 '[깨끄시]'로, 또 어떤 사람은 '[깨끄치]'로 소리 내지 않는가. '틈틈이'도 마찬가지이다. '[틈트미]'라고 소리 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틈틈히]'라고 소리 내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한글 맞춤법 제51항의 규정에 맞게 '-이'와 '-히'를 제대로 구분하여 적으려면 우리말 표준 발음법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는데 어떻게 표준 발음법을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퇴직하기 전, 학생들에게 알려주던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만들어낸 방법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이'와 '-히'를 구분해서 적는 데에 백 퍼센트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러나 알아두면 꽤 쓸모가 있다.

끝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보자

우선 '-히'로 적는 경우는 '-하다'가 붙을 수 있는 말 뒤에서라는 점을 기억하자. '급히, 속히, 엄격히, 꼼꼼히, 답답히, 도저히, 솔직히, 나른히, 상당히, 조용히, 능히' 등이 그것이다.

전체 내용보기
"저기, 제가 쓴 책인데 좀 사주시면 안 될까요?" 

일전에 만났던 한 중년남자. 처음엔 고객인 줄 알았던 그는 내가 일하는 창구 앞에 서서 책 한 권을 건넸다. 

그 책은 자신이 쓴 소설인데 직접 팔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내게도 한 권만 사달라고 부탁했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지만 그가 내민 책 제목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때 나는 돈 만 원을 주고 읽지도 않는 책을 샀었다. 글 써서 돈 버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어려워 보인다. 당시 책을 샀던 이유? 만 원으로 누군가의 꿈을 응원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간이 쉬워진 세상이다. 나를 브랜딩 하자며 책을 위한 책이 나올 정도로 책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책이 잘 팔리는 시대는 아니라고 한다. 쓰는 사람은 계획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책을 내고, 언젠가는 출간의 꿈을 가지고 있으니 책이 점점 넘쳐날지 모른다. 

나도 얼마 전 책을 냈다. 넘쳐나는 책들 속에 나 역시 일조했으니 읽는 사람에 비해 쓰는 사람이 많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관련 기사: <오마이뉴스>에 쓴 '생활기사'들로 책을 냈습니다 https://omn.kr/28ejb ).    
  
"나이 오십 넘어서 꿈을 이뤘네" 하는 소리에 " 무슨 소리! 나 아직 꿈 안 이뤘는데... 난 베스트셀러 작가가 꿈이야"라고 기어 나오는 소리라도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혹시 그가 내게 꿈 깨라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할까 봐서다. 

그래도 요즘은 '개인 브랜딩' 시대 고 꿈은 클수록 좋다니까 원대한 꿈을 품고 출판사 등록도 했었다. 초간 출판이라는 부담감에 등록한 출판사 이름을 달진 못했지만 여전히 꿈은 남아있다. 

책을 준비하면서 원고를 보내고 형식 검수에만 퇴짜를 4번이나 받았다. 플랫폼이 불편하다고 불평을 했더니 담당자가 "책 출간 하는 걸 흔히 산고에 비유하잖아요. 그만큼 힘든 작업이에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불편했던 부분은 참고해서 개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친절한 답변을 했다. 

산고라는 표현에 숙연해졌다. 돌이켜보면 플랫폼이 불편한 건 없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나의 무지로 불편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모든 책의 홀수 페이지가 우측에 자리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으니 누굴 탓하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는 것을 넓혀갈 수밖에. 책을 만들면서 단지 기술적인 것뿐 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와 마음까지 알게 되니 온 감각이 다 동원되는 것 같다. 출산 같은 출간에 쉬운 것은 없었다. 
전체 내용보기
아마 지난 2016년쯤으로 기억된다. 아이들 픽업 때문이었을까 왜 검색을 했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아무튼 우리 지역의 큰 공원인 '아이젠하워 파크(Eisenhower Park)'를 구글맵으로 찾아보고 있었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이름을 딴 공원으로 뉴욕 센트럴파크보다도 크고, 공원 내에 골프 코스는 물론 주민 여가 활동을 위한 여러 편의 시설, 대형 아이스링크와 수영장, 그리고 현충원도 있다. 공원 옆 길은 '한국전 참전 용사의 길(Korean War Veterans Memorial Drive)'로 명명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대형 주차장도 여러 곳이다.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주차 공간을 찾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사진 하나가 화면에 뜬다. 당시에는 장소를 검색하면 관련 주요 사진이 지도 화면 위에 샘플처럼 몇 장 자동으로 보였다. 소녀상이었다. 이상했다. 당시 기준으로 3~4년 전에 위안부 기림비(The "Comfort Women")가 세워지긴 했지만 소녀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눈에 익은 소녀상이 아니라 뭔가 하얀 막대기 같은 것이 보였다. 확대해 보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일본 극우의 말뚝 테러 사진이었다. 일본을 나타내는 빨강 원 아래 죽도라고 한문으로 쓰여 있고 다른 면에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글도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소녀상이 세워지고, 거기 말뚝 테러가 일어난 걸까? 얼른 채비해 공원으로 향했다. 아니다. 소녀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말뚝 테러를 당한 사진은 기림비가 있는 현충원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공원 내 소프트볼 경기장(Soft ball field)을 클릭하면 보이도록 사진 등록이 되어 있었다.
전체 내용보기
 
'어둠 속의 대화'. 

이 제목을 들으면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왜 어둠 속에서 대화하지? 상대방의 얼굴을 모르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서? 누구인지를 모르니 나이를 따질 것도 없고 다시 볼 사이도 아니니 거짓말을 해도 될 것 같기도 하다. 

딸아이와 북촌 여행을 계획했는데 많은 전시 중 유독 이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전혀 프로그램을 전혀 알지 못했고,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스포일러 당하면 재미없을 테니 후기도 읽지 않았다. 미리 인터파크 전시 예매 사이트에서 티켓을 구매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 북촌 한옥마을 숙박의 특별한 여행을 구상 중이었는데 '어둠 속의 대화'라는, 몰라서 더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기는 일정을 집어넣으니 딸도 나도 신이 났다(24.2.28.-지금도 전시 진행 중이다, 전시 사이트: http://www.dialogueinthedark.co.kr/). 

내부로 들어가자 정말 한치의 빛도 보이지 않고 까맸다. 암흑세상이라는 말이 딱 정답이다. 빛 한줄기가 뭐야, 먹물을 눈에 뿌려놓은 듯한 검을 흑의 어둠이었다.

이윽고 우리 손에는 지팡이가 놓였다. 산악용은 아닌 시각장애인이 들고 다니는 막대 말이다. 그렇게 10명 정도의 일행이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앞사람의 어깨를 잡고 바닥은 지팡이로 툭툭 두들겨가며 마치 바로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거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신중을 기하며 걸어갔다. 

그리고 그 맨 앞에는 우리의 생명줄 안내자 선생님이 방향을 알려주었다. 로드 마스터! 중여서 '로마'님이라고 부르기로 우리는 약속했다. 

"앞으로 세 걸음 가시면 기둥이 잡힐 거예요. 거기서 잠시 멈춰서 기다려 주세요. 다른 분들 도와드리고 오겠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도 세세하게 길을 안내해 주셨다. 

전체 내용보기
아이들은 가만히 있는 게 힘들다. 어른들은 움직이는 게 힘들다. 거기서 모든 어려움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놀자"고 말하고, 어른들은 "쉬자"고 말한다. 춤을 멈출 수 없는 '빨간 구두' 동화 속 주인공처럼 아이들은 끊임없이 꼼지락거린다.

게다가 아이들의 꼼지락거림은 지속성이 떨어진다. 이것 조금 하다가 바꾸고, 저것 조금 하다가 바꾼다. 아이들과 노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계속 바뀌는 아이들 변덕도 어른들에겐 참 어렵다.
 
몇 년 전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1시간짜리 실험을 진행했다. 어떠한 신호도 주지 않을 때 아이는 놀이 지속 시간이 어느 정도 될까. 아들이 네 살 때였다. 한여름 저녁 8시에 집을 나섰다. 우리 아파트엔 놀이터가 네 개다. 일단 한 놀이터에서 놀자면서 집을 나섰다. 한 놀이터에서 적당히 놀다가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들은 시소를 탔다. 시계 타이머를 눌렀다. "아빠, 나 미끄럼틀 탈래." 아직 1분이 지나지 않았다. "아빠, 나 그네 탈래." 또 1분 미만. "아빠, 나 징검다리 건널래." 또 1분 미만. "아빠, 나 철봉 매달릴래." 모두 다 1분 미만이었다. 순식간에 아파트 안에 있는 놀이터 네 개를 '클리어'하고 맞은편 아파트로 원정을 나섰다. 아들은 세발 자전거를 타고 나는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아파트 안에 있는 놀이터도 모양이나 구성이 다르고, 아파트마다 놀이기구가 또 다르다. 맞은편 아파트엔 트램펄린이 눈에 띄었다. 맞은편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를 모두 돌았는데도 1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놀랄 만한 일이다. 모두 세 개 아파트 놀이터를 한 번씩 다 맛보고서야 1시간 여행은 끝났다. 그날 시계 타이머로 확인한 결과 어른이 아무 말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을 때 놀이 지속은 모두 1분 이내였다.
 
혹시 우리 아이가 ADHD? 그렇진 않다. 내가 보기에도 아내가 보기에도, 아들을 본 주위 사람들 그 누구도 ADHD 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보기에 아들은 제법 끈기가 있는 편이다. 그런데도 모든 놀이가 1분 이내에 끝난다는 건 상상 이상이었다. 등에 서늘한 그 무엇이 훑고 지나갔다.
 
그날 사건 이후 아이가 '하자'고 하는 걸 다 따라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분짜리 놀이를 계속 따라다니며 호응해주는 건 참 힘들고 피곤한 일이다. 별로 즐겁지도 않다.

나도 즐겁고, 아이도 즐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다. 장난감으로 놀기, 그림판에 그림 그리기, 트램펄린에서 뛰기, 블록 조립하기. 아이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해도 내가 재밌지 않았다.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찾아냈다. 삽질. 군대 다녀온 사람이라면 다 아는 그 '삽질'이다. 

그렇게 시작된 삽질
전체 내용보기
며칠 전, 외출했다가 들어오면서 보니 우편함에 우편물이 꽂혀있었다. 수신인은 고3 아들이었다. 지난번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라고 아들한테 온 우편물을 아무 생각 없이 뜯어봤다. 그랬더니 아들이 자신의 우편물을 마음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한마디 했다. 내 눈에는 아직 내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아이 같은데, 주민등록증 만들 나이가 됐으니 존중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하다가 밤 열한 시가 넘어 집에 돌아온다. 아들이 올 때까지 봉투만 쳐다보며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왜냐면 발신지가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경찰서'였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 아들한테 왜 우편물을 보냈지?"

걱정이 앞서 아들이 집에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들이 이번 일은 이해해 줄 거라고 믿고,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그 안에는 두 장의 문서가 들어있었다. 제목은 '수사결과 통지서(고소인 등, 송치 등)'라 적혀있다. 죄명은 사기, 결정종류는 송치, 사기와 송치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접수일시가 3월 말이니 얼마 안 된 일이다. 아래쪽으로 범죄피해자 권리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에 대한 안내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사기, 송치, 범죄피해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주요 내용은 '별지와 같음'이라 적혀있는 걸 보고 뒷장을 살펴봤다. 뒷장에는 아들이 사기로 신고한 건에 대해 조사한 결과, 사기죄가 성립되어 그 사람을 송치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일단 아들이 사기죄라는 얘기는 아니니 안심을 했다.

'그렇다면, 아들이 누군가를 사기죄로 고소했다는 말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왜 나한테는 아무 말이 없었을까? 혼날까 봐 그랬을까?'

궁금한 걸 겨우 참으며 아들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아들, 경찰서에서 우편물이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니?"
"아, 이거 제가 인터넷 장터에서 에어팟을 샀는데, 뭔가 분위기가 싸해서 바로 신고한 거예요."


아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돈 보내고 났더니 사이트가 차단되고 이상해서 신고했어요. 신고하고 나서 돈을 바로 돌려받았고... 그래서 말씀 안 드렸어요."

"얼마에 샀는데?"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