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026 확정판결에도 '김태균 회의록' 신빙성 논란 재점화... 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송금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사건은 이미 대법원까지 올라가 유죄가 확정됐다. 지난해 6월의 일이다.
검찰은 쌍방울이 약 800만 달러를 북한에 대신 지급했고, 그 목적이 당시 경기도지사인 이재명 대통령의 방북과 연관된 비용이었다고 보고 기소했다. 실제 이 전 부지사의 1심 선고 후 닷새 뒤인 2024년 6월 12일 이 대통령과 이 전 부지사를 묶어서 대북송금 사건 제3자뇌물 혐의로 같이 기소했다.
그 연결고리를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 중 하나가 '김태균 회의록'이다. 당초 검찰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등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에 의존해 공소사실을 구성했는데, '김태균 회의록'은 '대북송금과 경기도와의 연관성'을 뒷받침 하는 직접적인 물증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김태균 회의록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유는 하나다. 유죄 판결의 결정적 증거가 된 김태균 회의록을 신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형식' 일정한 김태균 회의록, 해외 공용PC에서 작성·출력
김태균씨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으로부터 외국계 헤지펀드로부터 투자자금 조달업무를 맡았는데, 지난 2023년 5월 해당 회의록 출력물을 수원지검에 제출했다. 수원지검에서 대북송금 사건 관련 공소사실을 완성하기 위해 소위 '진술세미나'가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는 시기와도 맞물린다.
김태균씨는 해당 회의록을 일본 도쿄 하얏트 리젠시 호텔 비즈니스 센터, 미국 시애틀 브레이번 아파트 서비스센터, 홍콩과 마카오 등지의 숙소 공용PC에서 작성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현지에서 출력했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일본 현지 호텔에 직접 가서 해당 공용PC에선 한글 문서 작성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문건을 생산한 곳으로 알려진 장소 자체가 없었던 것도 드러났다. 즉, 핵심 증거의 신빙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제기된 것이다.
문제는 해당 회의록의 디지털 원본파일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회의록 작성 시점이나 문건 출력 시점이 확인되지 않는다. 법정에서 현출된 것은 김씨가 수원지검에 제출했다는 다섯 건의 종이 출력물뿐이다. 그럼에도 해당 문건은 대북송금사건의 핵심 증거로 활용됐고, 이 전 부지사 유죄 판결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검찰은 회의록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23년 6월 13일 공판에서 검찰은 증인으로 나온 김태균씨를 향해 "증인이 작성한 회의록은 수사기관에 제출하기 위해서 나중에 별도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 2019년 회의를 할 때마다 회의 내용을 그대로 기재한 것이라서 회의록에 기재된 내용은 모두 증인이 경험한 사실 그대로 기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맞냐"고 묻는다. 이에 김씨는 "맞다"라고 답한다. 이 정도 수준으로만 확인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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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026 "숱한 총성... 아이들의 죽음만은 대놓고 찍을 수 없었다"

영화 <내 이름은>의 연출 제안을 받았던 2021년 12월, 당시 일흔 중반이던 정지영 감독은 고민 끝에 이를 고사했다. 제주 4·3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보고 자신이 과거 연출한 영화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전에 <남부군>(1990)과 <남영동1985>(2012)로 이미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뤘기에 비슷한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는 점, 그리고 "소재 때문에 투자받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는 점이 이유였다.
그 직후 각색 과정을 거친 새 시나리오가 나왔다. 이야기의 원안자이자 영화 제작자인 렛츠필름 김순호 대표는 새로운 작가와 함께 두 모자가 자신들의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했던 정 감독은 김 대표의 거듭된 제안을 수락했고, 2년여간 각색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2025년 4월 3일, 제77주년 4·3 추념식에 맞춰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가 지난 15일 개봉했다. 약 일주일 만에 관객 수는 10만 8905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이다. 흥행 속도가 빠르진 않아도 관람객들 사이에선 소재 자체의 비장함보다 극적 재미와 배우들 연기를 호평하는 분위기다. CGV가 제공하는 실 관객 기반 관람 포인트 데이터에서도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적 몰입감이 다른 요소보다 강점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영화를 본 이로서, 그리고 영화를 만든 이로서 각각 인상적이었던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정지영 감독을 만났다.
[기자의 장면] 보리밭 탈주신... 비극의 전시를 비껴가다

영화는 국가 폭력의 문제를 학교 폭력과 겹쳐 보여준다. 본명을 숨기고 살아온 엄마 정순(염혜란)과 자기 이름을 싫어하던 아들 영옥(신우빈)의 관계를 통해서다. 과거의 일로 정순은 기억 일부를 잊은 채 살아왔다. 영옥은 교내 폭력 문제를 방관했다.
또래 엄마보다 다소 늙어 보이는 정순은 일종의 공황장애가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종종 혼절한다. 1949년 봄의 기억 때문이다. <내 이름은>의 중후반부, 그 원인이 묘사된다. 우익 청년집단의 소탕 작전으로 트럭에 실려 가던 마을 사람들이 잠깐의 빈틈에 보리밭으로 탈주하는 장면이다. 잠깐의 희망은 무분별한 총성 속에 곧 절망으로 바뀌고, 부모의 손을 잡고 뛰던 어린 정순은 보리밭을 뛰던 이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걸 목격하고 만다. 정순의 키만큼 자라 있던 보리밭은 어느새 사람들의 피로 물든다.
"그 장면에 나온 사람들이 전부 제주에 사는 연극배우들이다. 일반 보조 출연자분들이면 엄청 시간이 걸렸을 텐데, 그분들은 딱 알았다. (자신들이 실려 가는) 트럭에서는 이런 표정을 하고, 보리밭에선 이렇게 해보자고 얘기를 나누더라. 사실 그 보리밭을 찾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키도 커야 했고, 규모도 있어야 했거든. 시나리오엔 아름다운 유채밭에서 꽃이 휘날리는 틈에 피가 튀는 장면으로 설정했었다. 그게 더 처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당 장면을 촬영한 곳은 제주공항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인 중산간 지역이다. 메밀밭과 보리밭, 유채꽃밭이 함께 있는 사유지를 수소문해 촬영했다고 한다. 정 감독은 "유채꽃이 키가 작은 것도 있지만, 1950년대에 한국에 들어왔기에 고증으로도 맞지 않았다"며 "안타깝지만 보리밭으로 설정을 바꾸니 충분히 의도한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 탈주와 학살 장면에서 정 감독은 "찍을 땐 참 끔찍하다고 생각했는데 관객 중에선 되게 절제했다는 반응도 있더라"고 전했다. 특히 아이들이 사망하는 순간은 비록 역사적 사실이어도, "도저히 대놓고 못 찍겠더라"고 그는 고백했다. 영화를 준비하며 정 감독이 참고한 자료는 < 4·3은 말한다 > (제민일보 취재단, 총 3권), < 4·3 그 진실을 찾아서 >(양조훈 저)를 비롯, 여러 증언집과 공식 보고서 등이다.
"국민학교에 몰아넣고 죽인 일도 있고 여러 사례가 있잖나. 근데 시나리오 쓸 땐 그런 자료들이 막 섞여 들어오기에 보지 않으려 했다. 영화 속 그 장면은 결국 어떤 게 영화적으로 효과적일까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다. 내가 <남영동1985>를 찍을 땐 절제를 안 했거든. 그땐 관객들도 똑같이 아파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흥행에 실패했잖나. 중간에 나간 관객도 많았다고 들었다. 그걸 교훈 삼아서 이번엔 충분히 촬영은 하되 절제하자고 생각했지."
[감독의 장면] 정순과 영옥의 포옹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다

21.04.2026 허태정 "이장우는 '리틀 윤석열', 명확한 심판 이뤄질 것"
허태정 더불어민주당 대전광역시장 후보가 다시 맞붙을 이장우 현 시장(국민의힘)을 향해 "리틀 윤석열, 내란잔재세력"이라며 "이번 선거는 그의 모습에 대한 명확한 심판이 이뤄질 것"이라고 21일 말했다.
허 후보는 2018년 민선 7기 시장으로 당선되었으나 2022년 8기 지방선거에서 이 시장에게 단 2.39%p 차이로 석패했다. 그는 "어떤 분들은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 선전했다고 얘기하지만, 제가 좀더 잘했으면 극복 가능한 격차였는데 부족했다"면서도 이후 새롭게 대전 시정을 이끌었던 '이장우의 4년'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날 오마이TV '이병한의 상황실' 인터뷰에서 "이 시장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매우 크다"고 총평했다.
"일명 '리틀 윤석열'이라고 할 정도다. 계엄이 있던 그날 밤 이 시장은 어떤 모습도 시민들한테 보여주지 않았다. 집에서 상황을 보고 받았다는데, 과연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질 시장의 태도인가? (그가) 책임감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시민들이 의혹을 갖고 있고. 이후 윤석열 탄핵 반대집회까지 나가는 모습을 통해 '내란잔재세력'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다. 이번 선거는 그의 모습에 대한 명확한 심판이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허 시장은 자신이 당 경선에서 승리한 후 이 시장이 '축하한다'면서도 '7기 시정을 사죄하고 참회하라'는 페이스북 글을 쓴 것을 두고도 "현직 시장으로서 품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이어 "(이 시장의 지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제가 시장일 때 했던 수많은 사업들을 지금 이 시장이 테이프 끊으러 다니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 야구장 사업 등 수많은 사업을 진행했고 그 사업들이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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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026 간월호 수상태양광 놓고 충돌, "검증 우선" vs "환경보전 병행"

충남 서산 간월호 수상태양광 사업을 둘러싸고 지역 환경단체와 사업 추진 측의 의견 차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은 20일 성명을 내고 "검증되지 않은 실험을 천수만에 강요하지 말라"라며 사업 재검토를 촉구했다. 반면 한국농어촌공사 측은 설치 면적을 제한하고 철새 보전 사업과 주민참여형 소득 구조를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어촌공사에 따르면 간월호 수상태양광 사업은 500MW 규모이며, 2026년 4월 현재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제3자 제안 공고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은 이번 성명에서 천수만과 간월호를 단순한 개발 가능 수면이 아니라 철새 이동과 서식이 이뤄지는 생태적으로 민감한 공간으로 규정했다. 특히 흑두루미와 황새 등 보호 가치가 큰 조류가 찾는 지역이라는 점을 들어, 사업 추진에 앞서 조류 이용 패턴과 이동 경로, 서식 밀도, 수질 변화 등에 대한 장기적이고 정밀한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월호처럼 민감한 수역에 대규모 구조물을 설치하는 방식은 별도의 검증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은 특히 환경영향평가를 사업 정당화 절차가 아니라 사업 타당성을 검증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류 충돌과 회피 행동, 계절별 이용 변화, 동일 권역 내 누적 영향 등이 충분히 조사되지 않는다면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수상태양광 발전사업에 대해 별도의 환경성평가 협의 지침을 두고 있어, 실제 쟁점은 평가의 유무보다 어떤 범위와 기간으로 조류·수질·누적 영향을 검토할 것인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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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026 갯벌 하얗게 덮은 죽은 조개들... 새만금 살릴 방법은 있다
"우리를 물속에 묻어라. 새만금물막이 공사 중단하라!"
2006년 3월 새만금 대법원 판결 이후 새만금방조제 끝 물막이 공사 강행 현장에서 새만금 어민들이 외치던 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20년 전 2006년 4월 21은 환경을 생각하는 국민들에게 큰 아픔을 준 날이다. 이날은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난 날이었다. 1991년 11월 부안군 대항리에서 시작한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는 15년이 걸려서야 끝났다. 직선으로 둑만 쌓는데 15년이나 걸린 것이다.
15년이나 걸린 것은, 새만금 사업에 대한 반대여론이 늘어났고 재판 때문에 건설이 미루어졌기 때문이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에 대한 환경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민간공동조사기구가 꾸려졌으나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면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
결국 새만금 방조제 건설 문제는 법원의 판결로 결정하기로 했다. 2006년 3월 16일 대법원에서 매립면허 취소 행정소송이 원고(정부) 승소로 끝나 새만금방조제 공사는 마무리 될 수 있었다. 대법관 13명 중 김영란과 박시환 대법관만 반대 의견이었고 다른 대법관들은 찬성의견이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새만금은 미래식량 위기를 대비하기 위한 국책사업이고 수질 개선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정부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농지 확보라는 정부 측 토지이용 계획은 대법원 판결 이후 바뀌었다. 노무현 정부는 새만금 토지 이용계획에서 농지 100%를 70%로 줄이고 30%를 산업, 관광도시 용도로 전용하였다. 그 후 이명박 정부에서 농지는 30%, 산업 관광 도시 70%로 완전히 바뀌었다.
결국 새만금갯벌을 식량확보차원에서 매립한다는 말은 사실상 거짓말이 되었고 이를 근거로 판결을 내린 대법원은 환경문제에 커다란 짐을 지운 셈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쌀이 남아돌고 있음에도, '벼농사를 짓겠다'고 서울의 3분지 2나 되는 드넓은 갯벌을 없애겠다는 정부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알고 있었다. 새만금 사업이 농지조성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당시 유종근 전북지사는 새만금에 세계 최대 골프장을 건설하고 복합레저단지를 유치한다느니 하는 장밋빛 환상을 말했었다. 개발 계획을 향한 그들의 말들은 새만금을 농업용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쓰려는 흑심이 있었음을 의심하게 한다. 이런 사안을 모를 리 없는 대법원도 농지확보에 필요하다며 정부 손을 들어줬다. 단군이래 최대 환경 파괴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한 잘못된 판결이라고 본다.
갯벌을 땅으로 바꾸는 토목공사를 일으키려는 정부와 전북소외론으로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과 지역발전의 기대를 갖고 있던 일부 전북도민들과 법원의 합심으로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나게 된 것이다.
어떻든 정부는 대법원 판결로 공사를 강행 할 수 있는 법적인 무기를 얻었으니 끝 물막이 공사 구간 2.7km는 빠르게 연결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덤프트럭 같은 육상장비와 바지선 등 해상장비를 동원하여 바다에 흙과 바위를 쏟아 부었고, 4월 21일 마침내 방조제는 연결되었다. 그날 새만금 방조제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환호를 했지만 새만금 어민과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려야했다.
변화하는 갯벌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나서 갯벌은 어떻게 변했을까?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자 밀물과 썰물의 흐름이 끊어져서 갯벌은 말라갔다. 아래 사진은 2006년 5월에 찍은 계화도 갯벌 사진인데 물이 없어 갯골은 말랐고 갯벌에 차가 다닐 정도로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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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새만금 대법원 판결 이후 새만금방조제 끝 물막이 공사 강행 현장에서 새만금 어민들이 외치던 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20년 전 2006년 4월 21은 환경을 생각하는 국민들에게 큰 아픔을 준 날이다. 이날은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난 날이었다. 1991년 11월 부안군 대항리에서 시작한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는 15년이 걸려서야 끝났다. 직선으로 둑만 쌓는데 15년이나 걸린 것이다.
15년이나 걸린 것은, 새만금 사업에 대한 반대여론이 늘어났고 재판 때문에 건설이 미루어졌기 때문이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에 대한 환경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민간공동조사기구가 꾸려졌으나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면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
결국 새만금 방조제 건설 문제는 법원의 판결로 결정하기로 했다. 2006년 3월 16일 대법원에서 매립면허 취소 행정소송이 원고(정부) 승소로 끝나 새만금방조제 공사는 마무리 될 수 있었다. 대법관 13명 중 김영란과 박시환 대법관만 반대 의견이었고 다른 대법관들은 찬성의견이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새만금은 미래식량 위기를 대비하기 위한 국책사업이고 수질 개선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정부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농지 확보라는 정부 측 토지이용 계획은 대법원 판결 이후 바뀌었다. 노무현 정부는 새만금 토지 이용계획에서 농지 100%를 70%로 줄이고 30%를 산업, 관광도시 용도로 전용하였다. 그 후 이명박 정부에서 농지는 30%, 산업 관광 도시 70%로 완전히 바뀌었다.
결국 새만금갯벌을 식량확보차원에서 매립한다는 말은 사실상 거짓말이 되었고 이를 근거로 판결을 내린 대법원은 환경문제에 커다란 짐을 지운 셈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쌀이 남아돌고 있음에도, '벼농사를 짓겠다'고 서울의 3분지 2나 되는 드넓은 갯벌을 없애겠다는 정부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알고 있었다. 새만금 사업이 농지조성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당시 유종근 전북지사는 새만금에 세계 최대 골프장을 건설하고 복합레저단지를 유치한다느니 하는 장밋빛 환상을 말했었다. 개발 계획을 향한 그들의 말들은 새만금을 농업용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쓰려는 흑심이 있었음을 의심하게 한다. 이런 사안을 모를 리 없는 대법원도 농지확보에 필요하다며 정부 손을 들어줬다. 단군이래 최대 환경 파괴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한 잘못된 판결이라고 본다.
갯벌을 땅으로 바꾸는 토목공사를 일으키려는 정부와 전북소외론으로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과 지역발전의 기대를 갖고 있던 일부 전북도민들과 법원의 합심으로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나게 된 것이다.
어떻든 정부는 대법원 판결로 공사를 강행 할 수 있는 법적인 무기를 얻었으니 끝 물막이 공사 구간 2.7km는 빠르게 연결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덤프트럭 같은 육상장비와 바지선 등 해상장비를 동원하여 바다에 흙과 바위를 쏟아 부었고, 4월 21일 마침내 방조제는 연결되었다. 그날 새만금 방조제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환호를 했지만 새만금 어민과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려야했다.
변화하는 갯벌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나서 갯벌은 어떻게 변했을까?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자 밀물과 썰물의 흐름이 끊어져서 갯벌은 말라갔다. 아래 사진은 2006년 5월에 찍은 계화도 갯벌 사진인데 물이 없어 갯골은 말랐고 갯벌에 차가 다닐 정도로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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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026 '통일교 1억 수수' 또 부인한 권성동, 특검은 4년 구형

불법 정치자금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김건희특검(특별검사 민중기)이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권 의원은 "통일교 측으로부터 백주대낮에 1억 원을 수수한 사실이 없다"라며 무죄 선고를 요청했다.
2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형사2-1부(부장판사 백승엽·황승태·김영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특검은 1심 구형과 같이 "권 의원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1억 원을 추징해달라"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특검은 "종교단체가 대통령 선거에 개입해 민주질서를 훼손하는 등 헌법 가치가 중대하게 침해되는 일이 발생했다"라며 "피고인은 불법 정치자금을 지원 받은 것을 넘어 정교 분리라는 근간을 훼손하고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의 공정을 형해화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은 5선 중진 국회의원으로서 공적 위치에 있음에도 이를 악용해 특정 종교단체와 결탁했다"며 "피고인은 통일교로부터 1억 원의 거액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하고, 그 대가로 (2022년 치러 대선 이후) 통일교와 대통령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등 '통일교 창구'로 기능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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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026 우원식 "5·18 정신 헌법 수록, 내란 꿈도 못꾸는 개헌 완성"

우원식 국회의장은 21일 "5·18 정신을 헌법에 새겨 넣어, 내란을 꿈꿀 수 없는 헌법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 의장은 이날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것은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역사적 교훈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온 힘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헌법에 새기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39년 만의 개헌을 5·18 민주 영령과 광주시민들께 보고드리고, 남아있는 과제를 해결할 힘을 얻기 위해 이 자리를 찾았다"며 "이번 개헌은 개헌의 문을 열고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화 정신, 항쟁의 정신을 헌법에 새겨 넣어야 한다"며 "함께 내란의 시대를 끝내고 민주주의 시대로 나아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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