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이거 요즘 뜨는 거야" 한 마디에 가족 눈빛이 달라졌다

요즘 우리 집 냉장고에서는 풀냄새가 난다. 최신 냉장고가 나왔냐고? 아무리 AI가 발달했다지만 냄새까지는 무리다. 하지만 내 코에는 분명 풀냄새가 느껴진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육식가족의 입맛이 슬금슬금 밭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이, 청경채, 당근 사재기는 기본이고 멀쩡한 양배추 한 통이 있는데도 또 사 온다. 그 시작은 뜻밖에도 초등학교 교실이었다.

첫 독서논술 수업에 나타난 귀인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즐겁게 독서논술 수업을 해 보아요."

지난달 20일, 두근두근 내 인생 첫 수업 날이었다. '독서논술' 이름부터 딱딱하고 맛없어 보인다. 딱딱한 수업을 말랑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는 첫 수업에 과감히 모든 교재를 덮고, 근황 토크로 몸풀기 겸 글감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주 가장 기억에 나는 일이나 사건은 무엇이 있었나요?"
"........"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그냥 재미있었던 일이나 속상했던 일은 없었나요?"

1교시였던 1학년 학생들은 난리가 났었다. 서로 손을 들고, 손을 막고, 심지어 발도 들었다. 참여율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막상 발표 순서가 되면 동문서답이나, 질문이 무엇이었냐고 묻기도 했지만. 지금은 2교시, 3학년 학생들이다. 확실히 성숙하고 조심스럽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에서 낯가림과 눈치가 레이저로 나왔다. 1초가 1분 같은 침묵 속에서 한 남학생이 손을 슬그머니 든다. 귀인이다.

"어제 저녁에 누나가 봄동비빔밥을 만들어줬는데 맛있었어요."
"봄동비빔밥의 킥은 달걀 프라이인데, 몇 개 올려서 먹었어요?"
"달걀프라이를 할 때는 엄마가 도와주셨는데요. 냉장고를 열었더니 달걀이 3개밖에 없는 거예요. 내가 졸라서 나는 2개, 누나가 1개를 먹었어요. 그리고..."

소심하게 입을 뗐던 남학생이 칙칙폭폭 시동을 걸더니 속도를 올린다. 옆자리 앞자리 친구들까지 호흡이 같이 올라간다. 서로 발표하겠다고 손을 들고, 급한 마음은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온다.

"봄동비빔밥 나도 먹었는데."
"우리 집은 몇 번 먹었는지 셀 수도 없다."
"달걀 프라이는 두 개가 기본이다. 노른자는 안 익혀야 한다."

꼬꼬무 토크가 이어졌다. 낯설고 어색했던 분위기는 봄동비빔밥 하나로 대동단결이 되었다. 이쯤 되니 귀인은 남학생이 아니라 봄동비빔밥 같았다.

최근 나는 1년 4개월의 비영리 프리랜서를 마치고 영리 프리랜서로 소속을 옮겼다. 말하자면 취직을 한 것이다. 방과후 태리쌤을 닮고 싶은 현주쌤이 되었다. 국어국문학 전공과 방송작가 경력이 있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새로운 도전의 첫 관문을 '봄동비빔밥'님 덕분에 훈훈하게 넘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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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성남시장 후보가 21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 등과 함께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이번 방문은 지방자치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탄탄한 지방정부를 완성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해 마련됐다.

김병욱 후보는 이날 묘역 참배를 진행하며 조용히 노 전 대통령의 뜻을 기렸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정원오, 추미애,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들과 권양숙 여사를 예방하고 따뜻한 격려와 덕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김병욱 후보는 참배 후 "과거 한국증권업협회 노동조합 위원장 시절 노무현 대통령님을 처음 만나 뵙고 깊은 영감을 받았던 기억이 선명하게 스쳐 지나간다"며 남다른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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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 쥐라, 젖소를 충실히 길러 얻은 우유로 치즈를 만들어 먹고산다. 열여덟 살 소년 토톤은 절친 둘과 함께 매일 밤 춤추고 술을 마시며 여자를 꼬실 생각만 한다. 운이 좋으면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엄마 없이 아빠와 일곱 살 여동생 클레르가 가족의 전부다.

어김없이 친구들과 춤추고 술을 마시던 토톤은,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며 진상을 피우는 아빠를 발견하곤 집으로 보낸다. 문제는 그가 직접 운전을 했다는 것.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졸지에 고아가 된 토톤과 클레르, 토톤은 동생을 건사하려 치즈 공장에 취직하지만 오래지 않아 쫓겨난다.

와중에 알게 된 '콩테 치즈 경연 대회'. 우승하면 3만 유로를 준다기에 출전하고자 고군분투를 이어간다. 하지만 치즈를 만들려면 우유가 있어야 하는데, 잠깐 취직했던 치즈 공장 주인 딸을 통해 우유를 훔친다. 그녀가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걸 이용한 것이다. 과연 토톤은 콩테 치즈 경연 대회에 출전해 우승까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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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여러분, 뒤로 밀려나던 장애인이 이제 서울을 앞으로 밀고 가겠습니다."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몸으로 살아왔다던 그가, 이날만은 맨 앞에 서 있었다.

'우리를 가두지 마십시오'라는 슬로건과 함께 주먹을 치켜든 그는 조상지 탈시설장애인당(當) 서울시의원 예비후보(종로구 제2선거구, 탈시설장애인당(當)은 정식 정당이 아니라 무소속 표기)이다. 조 예비후보는 지난 20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6·3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조 예비후보는 태어난 지 8개월째 고열로 뇌병변장애인이 됐다. 15살이 되던 해 강원도의 요양시설에 입소해 15년간 시설에 갇혀 살았다. 2008년 어머니의 도움으로 시설에서 나와 탈시설 장애 활동가로서의 서문을 썼다. 노들장애인야학에 입학해 공부했고, 철거에 내몰린 어머니의 여관을 지키고자 고공농성을 했고, 영화감독으로 <함께 먹자 밥!>(2025) 등을 찍기도 했다.

그는 '활동가'에서 '정치인'으로 삶의 부제를 바꾸려 한다. 조 예비후보는 "거리의 투쟁을 정치 공간으로 밀어 넣고 장애인에게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의원 출마를 결심했다. 쉽게 나아간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멈춘 적도 없다던 그의 삶. 휠체어를 타다 덜컹거려도 다시 중심을 잡는 그의 출근길을 <오마이뉴스>가 따라가 봤다(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서면 인터뷰를 병행했습니다. - 기자 주).

조상지표 '선거텐트'를 소개합니다


"후보님 원래 이렇게 빠르세요?"
"뭐든 준비하는 데는 오래 걸리셔도 막상 출발하면 저희들보다 훨씬 빠르세요."

아침 8시, 순식간에 조 예비후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뜀박질하고 나서야 겨우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매일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공부하러 학교에 갈 때도, 투쟁하러 갈 때도 지하철을 이용한다. 언덕이 있거나 홈이 팬 곳을 지날 때는 바퀴가 걸려 잠시 멈췄지만, 노란색 손잡이를 이리저리 굴리며 금세 방향을 찾았다. 그렇게 홀로 사라졌다.

조 예비후보와 같이 출근하는 활동 지원사 이수경(54)씨는 "걱정할 필요 없다"며 "역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조 예비후보는 밝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출입문 앞에 있었다. 처음 만난 조 예비후보의 언어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는 눈으로, 표정으로, 여러 소리로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는 누구보다 그의 언어를 알았다. 7년간 함께한 시간은 서로를 이해하게 했고, 동시에 성장하게 했다.

중증 장애로 손을 폈다 쥐는 게 쉽지 않은 조 예비후보가 휠체어에 익숙해지는 데는 3년이 걸렸다. 휠체어를 조금만 타지 않으면, 손이 금세 사용법을 잊었다. 그래서 매일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 탈시설 이후 마주한 세상은 낯설기도, 타인을 경계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는 동료들과 함께 싸우며 자신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며, '사회적 주체'임을 분명히 외쳤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이씨는 이제 안다. 조 예비후보가 준비 시간은 걸려도, "뭐든 빠르고 거침없이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탑승객으로 빼곡한 4호선 칸에서 조 예비후보는 이어폰을 꽂고 ACC(보완대체의사소통) 목소리로 출마 선언문을 듣고 또 들었다.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도, 지나가는 탑승객과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들고 찬찬히 얼굴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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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살 된 김대중은 한국전쟁 때 집단학살 피해자가 될 뻔했다. 그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과의 대담록인 <김대중 회고록>에서 "우리 집은 장인, 나, 동생까지 3명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어요"라며 그때의 악몽을 떠올렸다.

전남에서 두세 번째 가는 대형 인쇄소 사업가인 장인은 우파로 분류돼 처형장으로 끌려갔다가 총소리에 기절해 쓰러졌다. 일일이 확인 사살을 하던 인민군은 멀쩡히 누워 있는 그를 내려다보더니, 욕설을 하면서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인민군은 자리를 옮겼고, 총알은 장인의 귀 옆에 꽂혔다.

김대중과 동생 김대의(해군 방첩대 문관)도 우파로 분류돼 체포됐다. 이들은 1950년 9·28 서울 수복 직후에 총살을 기다리다가 대기 순번이 늦어 목숨을 구했다. 처형 도중에 인민군이 사라진 뒤 목포형무소로 복귀한 두 형제는 분위기가 바뀐 틈을 타서 옥문을 부수고 탈출했다.

김대중은 왜 이승만을 증오하게 되었나


그런데 인민군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김대중이 그 뒤 증오하게 된 대상은 이승만이다. 이 증오는 김대중이 정치에 뛰어드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남한 사람들을 죽이는 북한 정권에도 분노했지만, 남한 사람들을 죽이거나 죽게 만드는 남한 정권에 더 분노했다. 2024년에 발행된 위 회고록에서 그는 정계 입문 동기를 이렇게 언급했다. 아래의 "그 전부터"는 1952년 이전부터다.

"나는 그 전부터 이승만 정권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국민방위군 사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청년이 죽었습니까? 이 사람들을 위한 국고와 군수품을 횡령하고 빼돌려서 아까운 우리의 청년들이 길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그랬어요.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거창양민학살 사건에서도 아무런 잘못 없는 우리 국민이 공비로 몰려서 비참하게 학살당했어요. 아무리 전쟁통이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법도 없고 상식도 없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시대였습니다."

국민방위군은 1950년 3월 15일 편성된 청년방위대의 후신이다. 국군과 별도로 조직된 청년방위대는 이승만의 사병부대였다. <역사학연구> 2021년 제82집에 실린 유상수 순천대 교수의 논문 '한국전쟁 전후 이승만의 사적 통치기반 형성과 변화'는 "반대세력의 간섭에서 최대한 벗어나 자신의 대표적인 통치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었다고 평한다.

그렇게 조직된 국민방위군의 병사들은 간부들의 보급품 횡령 때문에 1951년 상반기에 일대 수난을 겪었다. 한미연합군 대 북중연합군의 공방전이 치열한 가운데 1·4 후퇴와 서울 재탈환(3.4) 등이 있었던 이 시기에, 국민방위군 병사 9만여 명이 굶어 죽거나 얼어 죽었다. 대통령의 사병부대를 만들어 놓고 추운 겨울에 음식과 옷을 제대로 주지 않아 이런 비극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거창양민학살도 이 시기의 사건이다. 인민군 패잔병과 빨치산을 일망타진한다는 빌미로 육군 제11사단 제9연대가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 주민 719명을 학살하고 가옥과 재산을 파괴했다. 이 만행이 2월 9일에서 11일까지 자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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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집 냉장고에서는 풀냄새가 난다. 최신 냉장고가 나왔냐고? 아무리 AI가 발달했다지만 냄새까지는 무리다. 하지만 내 코에는 분명 풀냄새가 느껴진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육식가족의 입맛이 슬금슬금 밭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이, 청경채, 당근 사재기는 기본이고 멀쩡한 양배추 한 통이 있는데도 또 사 온다. 그 시작은 뜻밖에도 초등학교 교실이었다.

첫 독서논술 수업에 나타난 귀인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즐겁게 독서논술 수업을 해 보아요."

지난달 20일, 두근두근 내 인생 첫 수업 날이었다. '독서논술' 이름부터 딱딱하고 맛없어 보인다. 딱딱한 수업을 말랑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는 첫 수업에 과감히 모든 교재를 덮고, 근황 토크로 몸풀기 겸 글감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주 가장 기억에 나는 일이나 사건은 무엇이 있었나요?"
"........"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그냥 재미있었던 일이나 속상했던 일은 없었나요?"

1교시였던 1학년 학생들은 난리가 났었다. 서로 손을 들고, 손을 막고, 심지어 발도 들었다. 참여율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막상 발표 순서가 되면 동문서답이나, 질문이 무엇이었냐고 묻기도 했지만. 지금은 2교시, 3학년 학생들이다. 확실히 성숙하고 조심스럽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에서 낯가림과 눈치가 레이저로 나왔다. 1초가 1분 같은 침묵 속에서 한 남학생이 손을 슬그머니 든다. 귀인이다.

"어제 저녁에 누나가 봄동비빔밥을 만들어줬는데 맛있었어요."
"봄동비빔밥의 킥은 달걀 프라이인데, 몇 개 올려서 먹었어요?"
"달걀프라이를 할 때는 엄마가 도와주셨는데요. 냉장고를 열었더니 달걀이 3개밖에 없는 거예요. 내가 졸라서 나는 2개, 누나가 1개를 먹었어요. 그리고..."

소심하게 입을 뗐던 남학생이 칙칙폭폭 시동을 걸더니 속도를 올린다. 옆자리 앞자리 친구들까지 호흡이 같이 올라간다. 서로 발표하겠다고 손을 들고, 급한 마음은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온다.

"봄동비빔밥 나도 먹었는데."
"우리 집은 몇 번 먹었는지 셀 수도 없다."
"달걀 프라이는 두 개가 기본이다. 노른자는 안 익혀야 한다."

꼬꼬무 토크가 이어졌다. 낯설고 어색했던 분위기는 봄동비빔밥 하나로 대동단결이 되었다. 이쯤 되니 귀인은 남학생이 아니라 봄동비빔밥 같았다.

최근 나는 1년 4개월의 비영리 프리랜서를 마치고 영리 프리랜서로 소속을 옮겼다. 말하자면 취직을 한 것이다. 방과후 태리쌤을 닮고 싶은 현주쌤이 되었다. 국어국문학 전공과 방송작가 경력이 있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새로운 도전의 첫 관문을 '봄동비빔밥'님 덕분에 훈훈하게 넘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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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의 2차 종전협상을 위해 미국 부통령이 파키스탄으로 출발할 거라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이란에서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레자 아미리 모가담 파키스탄 주재 이란 대사는 파키스탄 시각으로 오전 10시 5분 X에 "커다란 문명을 가진 단일 국가가 위협과 무력 하에서 협상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진리"라면서 "이것은 실질적이고 이슬람적이며 신학적인 원리"라고 썼다. 그는 "미국이 인식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보다 앞서 미국의 < AP통신 > 은 2명의 파키스탄 당국자를 인용해 "이란 당국이 이번 주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릴 2차 협상에 대표단을 파견할 의향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인터넷신문 <악시오스>도 미국 소식통 세 명을 인용해 "밴스 부통령이 전쟁 종식을 위한 잠재적 합의를 논의하기 위해 화요일 오전까지 이슬라마바드로 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또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2차 협상 대표단 파견을 승인했다고도 보도했다.

하지만, 2차 협상이 열린다면 이를 준비하고 있어야 할 파키스탄 주재 이란 대사가 '위협과 무력 하에서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 단순히 미국이나 파키스탄에서 나오는 언급처럼 21~22일 사이 2차 종전협상이 열리기 어렵다는 점을 알린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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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사장 김동철, 이하 한전)가 추진 중인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전북 순창군 금과면 생활체육관에서 지난 16일 '제3차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설명회에는 1, 2차 설명회와 달리 한전에서 고위급 인사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1차 설명회에 참석한 다수의 주민이 '처장급 인사의 설명회 참석'을 요구한 이후, 한전 측이 드디어 응답한 것이다.

현장에 참석한 한전 전력망입지처 이광직 처장은 "한전이 추진하는 사업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게 하는 게 송구스러워서 순창을 찾았다"며 "성실하게 답변하고 소중한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후보 경과 대역 결정 과정' '송전선로 지중화'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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