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화성 시민사회, '매향리평화시민협의회' 공식 출범

경기 화성 매향리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시민 주도의 협의기구, '매향리평화시민협의회'(상임대표 오세욱)가 23일 오후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매향리는 1951년부터 2005년까지 미 공군 폭격 훈련장으로 사용되며 주민들이 오랜 기간 심각한 피해를 겪은 지역이다. 주민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투쟁 끝에 폭격장이 폐쇄되며 세계적인 평화운동의 상징적 현장으로 기록됐지만, 폐쇄 이후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상처 치유와 역사 계승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어져 왔다.
이날 상임대표로 선출된 가온교회 오세욱 목사는 취임사를 통해 "매향리는 제국주의 군사폭력으로 사람과 자연 모두가 깊은 상처를 입은 곳"이라며 "폭격장 폐쇄 이후에도 치유와 회복, 역사 계승은 지연된 채 새로운 갈등이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사회가 중심이 돼 갈등을 종식하고, 치유와 회복, 반전·평화의 가치를 확산하는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협의회 창립은 2025년 8월부터 시작된 10여 차례의 TF 모임과 시민사회 논의를 거쳐 성사됐다. 이날 총회에는 24명의 창립회원이 참석해 정관을 확정하고, 협의회 운영 방향과 조직 구성을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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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026 동학정신의 '수호자들'
유엔산하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2023년 5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대한민국의 4.19혁명 기록물과 함께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다고 결정하였다.
전봉준장군 심문기록, 동학군의 편지, 전라도 각 고을 관아에 설치한 집강소 기록 등은 19세기 당시 세계 어디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사료들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불법 상륙한 일본군의 현대식 무력으로 좌절되었지만, 이후 동학은 천도교로 명칭을 바꾸면서 1919년 3.1혁명을 주도하였고, 3.1혁명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모태역할을 하였다. 고난의 과정에서 동학 정신의 수호자를 살펴본다.
'만세보' 사장 등 지낸 오세창
오세창(1864~1953)은 3·1혁명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서예가·언론인 출신이다. <한성순보> 기자를 거쳐 우정국 통신원국장 등을 지냈다. <만세보사>·<대한민보사> 사장을 역임하고 대한서화협회를 창립하여 예술운동에 진력하였다.
오세창은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886년 박문국(博文局) 주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한성순보> 기자를 겸하다가 1894년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농상공부참의·우정국통신원국장을 역임하였다. 1897년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외국어학교 조선어 교사로 초청받아 1년간 교편을 잡았다. 귀국 후 1902년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 그곳에서 손병희의 권유로 천도교 신도가 되었다.
1906년 귀국하여 천도교의 <만세보사(萬歲報社)>와 <대한민보사>의 사장, 대한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1919년 3·1혁명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 후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그 후 서화가의 친목기관인 대한서화협회를 창립, 예술운동에 진력하였다. 전서(篆書)와 예서(隷書)에 뛰어났으며 옛날 서화(書畫)의 감식에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다.
8·15광복 후 <서울신문사>의 명예사장, 민주의원(民主議院) 의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회장, 전국애국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6·25전쟁 중 대구에서 별세,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졌다.저서에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근역인수(槿域印藪)>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독립선언서 인쇄한 이종일
이종일(1858~1925)은 독립운동가, <제국신문> 사장, <천도교회월보> 월보과장, 인쇄소 보성사 사장 등을 지냈다. 3·1혁명 때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여 투옥되었다. 출감 후 조선국문연구회 회장을 지내고 한글맞춤법 연구에 공헌했다.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고 15세에 상경, 김윤식·이상재 등으로부터 개화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882년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와 정3품의 위계를 받았다. 1898년 대한제국민력회(大韓帝國民力會) 회장, <제국신문> 사장이 되었다가, 이듬해 고종황제 탄신일 기사에 '성수만세(聖壽萬歲)'를 '성수망세(聖壽亡歲)'로 오식, 불경죄로 투옥되었으나 그를 중상하는 측의 고의적인 행위로 판명되어 석방되었다.
1906년 천도교에 입교하여 <천도교회월보>의 월보과장을 지내고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3·1독립혁명 때는 자신이 직접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이어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2년 반 만에 가출옥하였다. 출옥 후 조선국문연구회 회장에 취임, 한글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양한묵
양한묵(1862~1919)은 한말 이준 등과 함께 헌정연구회를 조직하였고 서울에 천도교 중앙총부를 결성하여 법도사·직무도사 등으로 활약하였다. 3·1혁명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고 체포되어 이 옥고를 치르다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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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장군 심문기록, 동학군의 편지, 전라도 각 고을 관아에 설치한 집강소 기록 등은 19세기 당시 세계 어디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사료들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불법 상륙한 일본군의 현대식 무력으로 좌절되었지만, 이후 동학은 천도교로 명칭을 바꾸면서 1919년 3.1혁명을 주도하였고, 3.1혁명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모태역할을 하였다. 고난의 과정에서 동학 정신의 수호자를 살펴본다.

'만세보' 사장 등 지낸 오세창
오세창(1864~1953)은 3·1혁명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서예가·언론인 출신이다. <한성순보> 기자를 거쳐 우정국 통신원국장 등을 지냈다. <만세보사>·<대한민보사> 사장을 역임하고 대한서화협회를 창립하여 예술운동에 진력하였다.
오세창은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886년 박문국(博文局) 주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한성순보> 기자를 겸하다가 1894년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농상공부참의·우정국통신원국장을 역임하였다. 1897년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외국어학교 조선어 교사로 초청받아 1년간 교편을 잡았다. 귀국 후 1902년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 그곳에서 손병희의 권유로 천도교 신도가 되었다.
1906년 귀국하여 천도교의 <만세보사(萬歲報社)>와 <대한민보사>의 사장, 대한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1919년 3·1혁명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 후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그 후 서화가의 친목기관인 대한서화협회를 창립, 예술운동에 진력하였다. 전서(篆書)와 예서(隷書)에 뛰어났으며 옛날 서화(書畫)의 감식에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다.
8·15광복 후 <서울신문사>의 명예사장, 민주의원(民主議院) 의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회장, 전국애국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6·25전쟁 중 대구에서 별세,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졌다.저서에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근역인수(槿域印藪)>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독립선언서 인쇄한 이종일
이종일(1858~1925)은 독립운동가, <제국신문> 사장, <천도교회월보> 월보과장, 인쇄소 보성사 사장 등을 지냈다. 3·1혁명 때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여 투옥되었다. 출감 후 조선국문연구회 회장을 지내고 한글맞춤법 연구에 공헌했다.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고 15세에 상경, 김윤식·이상재 등으로부터 개화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882년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와 정3품의 위계를 받았다. 1898년 대한제국민력회(大韓帝國民力會) 회장, <제국신문> 사장이 되었다가, 이듬해 고종황제 탄신일 기사에 '성수만세(聖壽萬歲)'를 '성수망세(聖壽亡歲)'로 오식, 불경죄로 투옥되었으나 그를 중상하는 측의 고의적인 행위로 판명되어 석방되었다.
1906년 천도교에 입교하여 <천도교회월보>의 월보과장을 지내고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3·1독립혁명 때는 자신이 직접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이어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2년 반 만에 가출옥하였다. 출옥 후 조선국문연구회 회장에 취임, 한글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양한묵
양한묵(1862~1919)은 한말 이준 등과 함께 헌정연구회를 조직하였고 서울에 천도교 중앙총부를 결성하여 법도사·직무도사 등으로 활약하였다. 3·1혁명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고 체포되어 이 옥고를 치르다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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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026 '멘토' 이해찬 별세에 이 대통령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 잃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별세에 "대한민국은 오늘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을 잃었다. 고인의 별세 소식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애도를 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본인 페이스북에 "이 부의장님은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셨다"며 고인의 생을 돌아봤다.
이 대통령은 먼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청년의 기개는 국정의 중심에서 정교한 정책으로 승화됐다"며 "시대적 과제 앞에서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안정과 개혁을 조화롭게 이끌어내는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주셨다"고 했다.
또 "특히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며 수도권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혁신적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셨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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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026 인천시, '인공지능(AI) 인천육아코디' 챗봇 서비스 추진

인천시(시장 유정복)는 가정에서 영유아를 양육하는 부모들이 육아 정보를 보다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AI) 인천육아코디'(가칭) 챗봇 서비스를 추진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서비스는 가정양육 영유아 부모를 대상으로 발달단계별 성장 정보부터 각종 지원금, 지역별 부모교육 및 행사, 장난감 대여 정보까지 흩어져 있는 육아 정보를 하나로 통합해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이나 누리집 구축하지 않고 카카오톡 챗봇을 자체 제작해 비용 부담을 최소화했다.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체 영유아 중 가정양육 아동 비율은 25.3%이며, 특히 0세 영아의 경우 가정양육 비율이 75.1%에 달해 초기 양육 단계에서 부모들의 정보 접근성 제고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현재 육아정보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포털, 기관별 누리집 등에 분산돼 있어 부모들이 필요한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인천시는 카카오톡 기반 챗봇을 활용해 행정 절차와 예산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연령과 거주 지역에 따른 맞춤형 육아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제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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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026 통합단체 명칭 '광주전남특별시'... 통합교육감 6월 선출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시·도 교육감, 지역 국회의원들이 25일 광주·전남 행정 통합으로 생겨날 지방자치단체 명칭을 광주전남특별시로 잠정 합의했다.
청사는 광주시청과 전남도청(무안) 및 전남도 동부청사(순천) 등 3곳을 균형 있게 사용하되, 주청사는 전남에 두기로 했다.
통합교육감은 통합단체장과 마찬가지로 오는 6·3 지방선거에서 선출하기로 사실상 결정했다.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 이정선 광주교육감과 김대중 전남교육감, 지역 국회의원들은 이날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전남 통합 특별법 검토를 위한 3차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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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026 진주 촉석루에서 바람맞고, 진양호에서 말린 마음

지난 8일 진주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에서 바람을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촉석루입니다. 그 바람을 천천히 돌려보내는 곳은 진양호입니다.
추운 날이었습니다. 진주성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마음도 함께 굳은 듯했습니다. 그래도 촉석루에 오르면, 바람이 먼저 말을 걸어올 줄 알았습니다. 사람보다 먼저 도착한 바람이 반길 줄 알았습니다.
성문 앞마당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하늘은 모든 구름을 몰아내고 해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촉석루 기와 위에는 겨울 햇살이 얇게 걸려 있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소리가 또렷해집니다. 깃발이 흔들리는 소리. 그 소리를 따라 바람이 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촉석루,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지 않은 바람

촉석루에 올랐습니다. 단청 아래 기둥들이 차례로 서서 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기둥 사이로 남강이 흘렀습니다. 물 위에는 햇빛이 낮게 앉아 있었습니다.
잠시 서서 바람과 인사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제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말을 걸기도 전에 떠나버렸습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바람 맞았다"라는 말이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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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026 민주주의 50년 산증인... 민주진영 선봉장 자처한 '투사' 이해찬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25일 별세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섰던 투사이자 7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대한민국 민주 진영의 산증인이었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 유신 체제에 맞선 민주화 운동을 시작으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정부와 당 주요 보직을 맡으며 민주 진영을 지켰던 반세기의 역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중 학생운동에 투신한 뒤 1974년 유신체제에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고인이 내란음모 사건 재판에서 "이 목숨 다 바쳐 이 땅이 민주화될 때까지 싸워나가겠다.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적 범죄를 결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일갈한 일화로 유명하다.
모진 고문과 수감 생활도 고인의 민주화 의지는 꺾지 못했다. 육군교도소 수감 중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익환 목사 등 재야 지도자들과 만나며 민주화 열망을 더욱 키웠고, 1982년 성탄절 특사로 석방된 뒤 재야 운동을 이어갔다.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끌어낸 고인은 이후 정치 여정 2막을 시작했다.
고인은 1987년까지는 민주화의 꿈을 향해 달렸고, 이후에는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이 목표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낙선한 후 평화민주당에 입당했고,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해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관악을 지역에서만 17대 총선까지 내리 5선을 했다.
1988년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계엄군의 광주시민에 대한 살상 행위를 낱낱이 밝혀내면서 '면도날'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노동 분야 입법 활동에도 주력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이상수 전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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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026 한여름에 나타났던 그 새, 이번엔 겨울 두루미 천국 한가운데에 서다
국내에서는 매우 희귀한 겨울철새로, 통상 몇 개체만 관찰되는 캐나다두루미가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만났다. 지난 23일 진행된 대전환경운동연합 주남 탐조에서 캐나다두루미 3개체가 재두루미 무리 속에서 확인됐다.
캐나다두루미는 국내에서 겨울에도 쉽게 볼 수 없는 희귀 조류다. 1995년 철원에서 처음 확인된 이후 지금까지 알려진 주요 관찰지는 철원, 천수만, 순천만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2022년 여름, 경남 창원 진해의 농경지에서 단독 개체로 확인되며 이례적인 사례로 주목받은 적도 있다. 당시 관찰된 개체는 한여름 동안 농경지에 머물며 먹이활동을 이어갔고, 국내에서 여름철 캐나다두루미가 확인된 첫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 캐나다두루미는 서식과 관찰 자체가 뉴스가 되는 매우 특이한 종이다.
캐나다두루미는 북아메리카 북부와 시베리아 북동부에서 번식하고, 북아메리카 중·남부에서 월동하는 종이다.검은목두루미와 같이 초식을 주로 하는 잡식성이다. 양서 파충류와 곤충, 열매와 씨앗을 먹는다. 몸길이 약 86cm 이상인 대형 조류지만 다른 두루미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한때 서식지 감소로 개체수가 급감했으나, 보호 정책과 환경 회복으로 현재는 멸종위기 지위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알려진 종이다.
이번에 확인된 캐나다두루미 3개체는 주남저수지에 월동 중인 재두루미 무리와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현재 주남에는 재두루미 약 1000마리, 흑두루미 약 50여 개체가 월동 중이다. 여기에 캐나다두루미까지 더해지면서, 주남저수지는 말 그대로 '두루미의 공간'이 되고 있다. 조금만 걷다 보면 '두룩 두룩'하는 고유의 두루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겨울 아침, 저수지 일대에는 두루미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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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두루미는 국내에서 겨울에도 쉽게 볼 수 없는 희귀 조류다. 1995년 철원에서 처음 확인된 이후 지금까지 알려진 주요 관찰지는 철원, 천수만, 순천만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2022년 여름, 경남 창원 진해의 농경지에서 단독 개체로 확인되며 이례적인 사례로 주목받은 적도 있다. 당시 관찰된 개체는 한여름 동안 농경지에 머물며 먹이활동을 이어갔고, 국내에서 여름철 캐나다두루미가 확인된 첫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 캐나다두루미는 서식과 관찰 자체가 뉴스가 되는 매우 특이한 종이다.

캐나다두루미는 북아메리카 북부와 시베리아 북동부에서 번식하고, 북아메리카 중·남부에서 월동하는 종이다.검은목두루미와 같이 초식을 주로 하는 잡식성이다. 양서 파충류와 곤충, 열매와 씨앗을 먹는다. 몸길이 약 86cm 이상인 대형 조류지만 다른 두루미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한때 서식지 감소로 개체수가 급감했으나, 보호 정책과 환경 회복으로 현재는 멸종위기 지위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알려진 종이다.
이번에 확인된 캐나다두루미 3개체는 주남저수지에 월동 중인 재두루미 무리와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현재 주남에는 재두루미 약 1000마리, 흑두루미 약 50여 개체가 월동 중이다. 여기에 캐나다두루미까지 더해지면서, 주남저수지는 말 그대로 '두루미의 공간'이 되고 있다. 조금만 걷다 보면 '두룩 두룩'하는 고유의 두루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겨울 아침, 저수지 일대에는 두루미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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