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인천 주요 뉴스] '교통사고 사망자 증가세'…인천시 사고 줄이기 '총력'
◇ '교통사고 사망자 증가세'…인천시 사고 줄이기 '총력' 인천시는 인천지방경찰청과 한국교통안전공단 인천본부, 도로교통공단 인천본부 등 교통안전 기관 등과 '교통사고 사망자 30% 줄이기'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부부는 애들이 초등학생에 입학하면 용돈을 주기로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매주 월요일 1000원입니다. 한 학년씩 올라가면 1000원씩 올리기로 했습니다.

현재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니까 3000원을 받습니다. 아들에게 적은지 많은지 물으니 고민없이 적당하다고 합니다. 사소한 잉어(붕어)빵부터 웬만한 장난감까지 다 사주니 부족함이 없는 듯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규칙적으로 용돈 받는 것은 언감생심인데 말입니다. 

아들에게 용돈을 줄 때 아껴쓰라고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필요할 때 반드시 쓰라고 말합니다. 맘껏 써도 된다고 했습니다. 일절 부모님이 관여하지 않을 테니 모아서 장난감을 사든지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든지 스스로 판단해서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용돈을 넘어서는 물건이 있으면 아빠나 엄마에게 부탁하면 특별히 보태 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용돈을 아껴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할 때 제때 쓸 수 있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생활에 불편이 없는 한 나눔과 기부를 실천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그냥 책상 위에 올려뒀는데, 작년부터인가 용돈에 메모를 붙이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란 책을 읽고 곰곰이 생각했지요. 용돈을 그냥 주는 것보다 교육적으로 뭔가를 보태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작은 메모(포스트잇)였어요. 편지가 아닌 간략한 메모를 남기기로. 앞으로 용돈에 메모를 남길 테니 "아들아, 부담없이 읽어보렴" 하고 말했습니다.

첫 용돈 메모지를 본 아들은 "아빠 상자 하나 줘"라고 하더군요. 메모지를 모으겠다고 하더군요. 큰 일 났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 저녁이면 어떤 말을 아들에게 들려 줄까 고민합니다. 거창하지 않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끔 월요일 아침에 부랴부랴 작은 메모지에 글을 남기기 바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사랑으로 충만하답니다. 한 번도 거른 일이 없답니다. 화요일날 쓴 경우가 몇 번 있지만은요. 메모(포스트잇)에는 앞 주의 일이나 이번 주에 있을 일 또는 격려의 글 등을 짧게 씁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림을 하나 그립니다. 물론 수준 이하의 그림이지만요.  
 
  
이 글을 쓰기 위해 몰래 상자를 열어봤습니다. 첫 메모가 2018.6.4일이라고 적혀 있으니 1년은 훌쩍 넘었네요. 정성스런 글씨도 보이고 바빠서 휘날려 쓴 글도 보이네요.

아들이 3학년이니까 아빠의 사랑을 담은 메모를 지폐에 붙여 3000원을 올려 둡니다. 조심스럽게 아빠가 쓴 글 읽어보냐고 물으보면 아들은 "당연히 읽지, 그걸 물어봐"라고 귀엽게 말한답니다. 기특하게도 그 메모를 읽고는 일주일간 테이블 위 아이비 화분에 붙입니다. 

아내는 월요일 저녁 밥을 먹으며 한 번 쓱 읽어봅니다. "으슥대며 잘 썼지?" 하고 물으면 "응" 하고 짧게 돌아오지만요. 우리 딸은 5살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들에게 한 것처럼 딸에게 할 계획입니다(여보, 딸은 자기가 하면 안 되겠니? 같이 하자?).
 
  
이 용돈 메모를 쓴 계기는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저의 아버지입니다. 작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버지께서는 손자, 손녀들에게 명절날, 어린이날, 생일날 항상 봉투에 짧게 한 마디 써서 주셨답니다. 스승의 날에는 우리 부부에게도 봉투에 스승의 날을 축하하며 외식하라고 금일봉을 주셨으니 멋진 분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엄격하셔서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결혼하고 차츰 그 간격을 줄여 아버지와 함께 여름에 세 번 가족여행도 갔습니다. 그러나 입원 한 번 한 적 없고 건강하게 산을 오가던 아버지도 갑자기 찾아온 병마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낙엽이었나 봅니다.

한시의 한 구절이자 한자성어인 '풍수지탄'이 저를 두고 한 말 같습니다. 기다려주지 않는 것. 오히려 앞서 나가야 한다는 것.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에게 못다한 사랑, 제가 더욱 열심히 사랑을 베풀테니 하늘 나라에 계신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었으면 합니다. 다음 주제는 가벼운 것으로 쓸까 합니다. '박스의 변신. 장난감 되다'로 정해 봤습니다.
2019년 8월부터 다시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9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로 일합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 - 기자말
 

 
매력적인 프로그램은 기획할 때부터 다르다. "재밌겠다!"는 느낌이 팍 온다. 당연히 모객 걱정도 하지 않는다. 웹 포스터를 만들어서 SNS에 올리기만 하면 신청전화가 폭주한다. 한길문고에서 하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가 그렇다.
 
1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최저시급 상품권을 주는 대회, 의자에서 엉덩이를 5초 이상 떼지 않아야 하는 대회, 한 번이라도 참가한 적 있는 사람들의 무용담이 두고두고 전해 내려오는 대회. 지난해 12월부터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열었던 한길문고는 네 번째 대회를 앞두고 있었다.
 
"11월 16일에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한다는 소식 들었는데요, 지금 신청해도 되나요?"
 
10월 말부터 한길문고로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점에서는"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채로 이 유쾌한 대회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중하게 접수 날짜를 조율했다. 
 


대회 열흘을 남겨두고 한길문고 문지영 대표님이 페이스북에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연다는 글을 올렸다. 나는 한길문고에 와서 책 읽고 에세이를 쓰는 선생님들에게만 알렸다. 그리고 한 명 더, 11월부터 '군산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권나윤님에게 소식을 전했다. 밤 9시 넘어서였다.
 
"내일 한길문고 가서 직접 접수할게요."
 
태평하게 대답한 나윤님. 다음 날 오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경솔했는지를 깨달았다. 한길문고 김우섭 점장님은 몹시 미안해 하면서 "마감 됐어요"라고 했다. 맙소사! 몇 시간 만에 신청자 100명이 다 찬 거였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한길문고 작가 강연회와 북클럽, 에세이 쓰기에 참여하는 김유림, 이은미 선생님도 참가 자격을 얻지 못했다. 셋째 아이가 어려서 책 읽기에 도전 못하는 박효영 선생님까지 이 세 명은 자원봉사를 자처했다.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입기로 하고, '안내'라는 자원봉사자 목걸이를 스스로 마련했다.
 

  
대학 수업 받듯이 한길문고 강연회에 다니는 독자 몇 명은 치밀하게 '노쇼'까지 예상했다. 늦었지만 신청을 받아달라고 졸랐다. 대학 합격도 아닌데,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행스럽게도 "사정이 생겨서 대회에 참석 못합니다"라는 사람들이 생기긴 했다.
 
11월 16일 오후 1시 40분. 진열된 책을 치우고, 테이블과 의자 100개를 놓는 사이에 참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남학생들은 무대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여럿이 온 사람들도, 혼자 와서 주뼛거리는 사람도 함께 어울려 앉았다.
 
"이번에는 진짜 엄격하게 진행할 거예요. 의자에서 5초 이상 엉덩이를 떼면 탈락이에요. 자원봉사자가 어깨를 두드리면 울지 말고 책을 챙겨서 나가야 합니다. 당 떨어졌다고 책 읽다가 과자를 먹어서도 안 되고요, 몇 분 남았냐고 저한테 계속 물어봐도 안 됩니다. 오줌 마려운 것도 참아야 하니까 화장실은 지금 다녀오세요."
 
나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세 번이나 진행했던 사람. 네 번째는 진짜로 봐주는 거 없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오후 2시. 여전히 목이 마르고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2시 8분에 타이머를 눌렀다. 서점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가져온 책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자세히 보아야 엉덩이의 들썩거림을 감지한다. 오래 보아야 고개를 숙이고 조는 걸 알아챈다. 팬티가 자꾸 엉덩이에 끼는 건가. 살살 몸부림치는 아이들은 테이블마다 있었다. '은파소년소녀합창단' 옷을 입은 어린이 한 명은 졸다가 아예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책 읽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 지났을 때였다.
 
나는 발소리를 내지 않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같이 온, 옆자리에 앉은 어린이들이 내 얼굴을 봤다. 차마 "탈락!"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아침 9시부터 금강중학교에서 공연하고 온 그 아이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아이는 눈을 비비고 다시 책을 읽었다.
 
15분!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한다. 2시 20분 넘어가자 몸을 배배 꼬는 어린이들이 몇 명이나 보였다. 책을 보는 시간하고 내 얼굴을 보는 시간이 비슷했다. 그때가 2시 25분. "몇 분 지났어요?"라고 간절하게 묻는 게 느껴졌다. 나도 덩달아 초조해졌다.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목이 탔다. 책 읽기 시작한 지 30분 째. 분위기를 감지한 문지영 대표님은 생수 100병을 사왔다. 테이블마다 사람 수 대로 물병이 놓였다. 물 뚜껑을 돌려서 따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렸다. 물을 마신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었다. 그러지 못하고 흐트러진 사람들은 온 몸으로 묻는 게 있었다. 졌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타이머를 보여주었다.
 
한 손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남은 시간은 5분. 나는 무대 앞에서 한 손을 쫙 폈다. 책에 시선을 두지 못한 아이들 몇은 소리 내지 않고 내 눈을 보며 크게 웃었다. 여전히 책에 빠져서 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4분 남았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접었다. 3분 남았다. 검지손가락을 접었다. 2분 남았다. 중지손가락을 접었다. 1분 남았다. 새끼손가락만 남았다. 아이들 몇은 호들갑을 떨 때처럼 두 주먹을 쥐고 기쁘게 흔들었다. 남은 시간은 2초. 나는 타이머 종료 벨 소리가 크게 들리도록 스마트폰에 마이크를 갖다 댔다.
 
"뜨르르르! 뜨르르르!"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터졌다. 모두가 1등인 대회. 2등은 아예 없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는 끝났다. 1시간이 얼마나 긴지를 생생하게 체험한 참가자들은 후련해 보였다. 문지영 대표님은 장한 일을 해낸 사람들에게 8350원짜리 상품권을 선물로 줬다.
 
수십 명의 아이들과 어른들은 각자 신중한 자세로 서가와 문구점 앞에 서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독자들의 숨결을 느끼는 한길문고는 생물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눈길과 손길을 받으면서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舞姬처럼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그에게 묻고 싶었다
죽음을 주고 또 무엇을 얻었는지
지층으로 걸어들어간
그날들은 다 어찌할 건지∙∙∙
- 허연 디카시 '무희'
 
시인은 무희처럼 떨어지는 눈을 보며 묻고 싶었다. 그 질문은 이렇다. "죽음을 주고 또 무엇을 얻었는지?" "지층으로 걸어들어간 그날들은 다 어찌할 건지"이다. 이 질문은 생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다. 생은 무희처럼 떨어지는 눈의 메타포이다. 참으로 짧은 것이 생이다. 하늘에서 화려하게 떨어지는 그 순간이 생이라는 것이 아닌가.
 
영원이라는 시간에 견주어 보면 생은 한 순간과 같다. 하늘에서 잠시 떨어지는 눈의 시간에 불과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죽기 위해 떨어진다. 눈의 주검은 녹아서 물이 되어 지층으로 스며든다. 사람의 몸도 생기가 떠나면 눈이 녹 듯이 몸도 그렇게 흙으로 돌아간다. 생은 짧지만 참으로 화려하게 내리는 눈처럼 눈부시다.
 
생이 만들어낸 오늘의 찬란한 문명을 보라. 너무나 대단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은 곧 소멸된다. 시인은 "죽음을 주고 또 무엇을 얻었는지"를 묻고 있다. 그런데 그 물음에 대한 대답처럼 무수한 눈을 딛고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짧은 생이, 죽은 몸으로 흩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라면 얼마나 허무한 귀결인가. 시인은 생이 허무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죽음을 주고 또 무엇인가를 얻어야 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인은 눈에게 묻고, 눈은 자신의 죽음을 딛고 서 있는 큰 나무 한 그루를 답으로 제시한 포즈이다.
 
지층으로 들어간 그날들이 나무를 키워내었던 것이다. 생명은 영원한 순환이 맞다. 눈의 몸은 죽어 나무의 몸이 되었다.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강물처럼 흘러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뿐이다. 눈의 몸이 나무의 몸으로 바뀌듯이 말이다.
 
생은 무대 위에서 한 번 잠시 펼쳐지는 무희의 공연 같은 것일지라도 결코 거기서 멈춰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를 키우고 또 나무는 죽어서 흙이 되어 또 다른 나무를 키운다. 몸이 죽어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몸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생이라고 시인은 말하는 것이다.   
 
디카시 '무희'는 시인이 무희처럼 내리는 눈에게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시인이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영상 속의 커다란 나무로 답하고 있는 것이다. 질문은 문자로 드러내고 대답은 영상으로 제시한 자문자답의 디카시다.
몇 해 전부터였나. 엄마가(1936년생, 만83세) 당신의 지난 시절을 자꾸 들먹이기 시작한 게. 당신의 어릴 적 얘기를 자주 꺼내기 시작한 게. 어쩌다 찾아와 삐죽 인색하게 얼굴을 보여주는 맏딸(만56세)을 붙들고 앉아, 어릴 때 살았다는 집을 그리기도 했다. 묵은 달력 뒷면에다 삐뚤빼뚤.
 
 
해가 갈수록, 지나간 어떤 시간들이 엄마를 그리움으로 사무치게 만드는 걸까, 회한에 젖게 만드는 걸까. 엄마는 자꾸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어 한다. 얼마 전에도, 모처럼 집에 들른 내 앞으로 또 묵은 달력과 몽당연필을 들고 나왔다. 나는 얼른 캠코더를 꺼내왔다. 그 삐뚤빼뚤한 평면도와 엄마의 늙은 목소리를 영상으로 담았다.
 
"은경아, 있잖니. 집이 이렇게 생겼잖냐... 여기는 부엌... 여기는 찬광... 여기는 나무로 깎아서 이렇게 만든 창이 있어. 옛날에는 유리가 없었으니까... 여기는 또 들마루 이렇게... 나무광이 있고... 요기 안방으로 들어가는 미닫이문이 있었어... 아버지 하고 어머니는 건넛방, 언니하고 나하고는 윗방, 안방에는 할머니 주무시고 남동생 둘이랑 여동생은..."
  
 
엄마는 미닫이문 한 짝까지 빠트리지 않고 꼼꼼하게 그렸다. 본채와 사랑채, 헛간과 뒷간까지 건물을 다 그리고는 빙 둘러 나무와 꽃을 심었다.
 
"여기 주욱 복숭아나무가 있었어. 참죽나무 몇 그루가 여기에 섰었어. 여기는 봉숭아니 채송화니 꽃들이... 여기에 또 큰 살구나무가 있었어. 복숭아나무들이 있고, 여긴 큰 배나무가 있었어. 독배라고... 사과나무, 매화꽃나무, 모과나무가 여기 있었고. 함박꽃나무가 있고, 여기다가는 더덕을 심었는디 더덕이 썩어서 읍써지면 그때는 으른들이 더덕이 동자 돼서 도망갔다고 했어. 여긴 오야나무, 지끔은 자두라고 하지? 여긴 감나무... 하여튼 내가 잊어버려서 그렇지 나무들이 더 많았어. 여긴 불두화, 저기 저 백일홍나문가? 배롱나무, 그 전엔 간지럼나무라고 했어. 어! 토방을 안 그렸네. 여긴 댓돌..."
 
"엄마, 이 집이 어디에 있었어?"
"운산면 용연리 1구... 지금은 동네가 다 읍써졌지."
 
"여기서 살 때가 엄마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어?"
"그랬지. 좋았지. 우리 어렸을 때 아버지는 노래 가르쳐주고 엄마는 유희 가르쳐주고... "
 
"엄마, 거기 가볼까? 멀지 않잖아. 오늘 날씨도 좋고."
"그래 가보자. 가서 엄마 울면 어떡할래? 엄마 아빠 생각하고 울면..."

엄마의 눈시울이 벌써 살짝 붉어졌다. 여든 줄의 늙은 엄마가 어린아이처럼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운다면.

"같이 울지 뭐... 가자, 엄마!"
 
나는 캠코더를 챙겨들었다. 그렇게 노부모와 특별한 나들이를 나서게 됐다. 날씨 화창한 초가을 어느 날. 그때까지 나는 엄마의 고향이 정확히 어딘지 몰랐다. 지척에 있었음에도.

아버지가 (1934년생, 만85세) 운전대를 극구 잡았다. 아무래도 위험한 동행이다. '운전 그만 할 때다'하면, 아버지는 진정 모욕당한 사람처럼 인상을 쓰신다. 그래, 마지막으로 타드리자.

당진 시내를 빠져나가 647번 지방도로를 탔다. 차창 우측으론 황금빛 평야가 스쳐갔다. 좌측으론 상왕산과 일락산이 가야산으로 이어지며, 초지 능선이 굽이굽이 뻗어갔다. 평화롭게 풀을 뜯는 누런 소떼들도 지나갔다. 이국적인 목장의 풍광과 마을을 지나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가는 내내 차안에서 옛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고향을 생각하면 마음이 울적하다 하시지만, 딸이 어느 때보다도 얘기를 잘 들어주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 지식인이었고 진실하고 곧고, 하여튼 내가 아버지를 생각하면 참 좋으신 분이셨어. 우리들 키울 적에도 한번 이년 저년 소리를 안 하셨어. 잘못하면 사매로 안 때리고 네가 이거 이거 잘못했고... 그래서 나도 니들 그렇게 키웠잖니..."
 
엄마가 15살 때까지 살았다는 산골 고향마을. 도착해보니 50여 가구가 살았다는 엄마의 고향은 수몰지였다. 저수지로 향해 언덕길을 내려가며 아버지가 물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휘청휘청 노인 걸음을 떼며.
 
"저 아래에 동네가 있는 겨?"
"동네는 읎지. 저수지 됐잖어."
 
엄마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듣지 못했다.
 
"저 물 위에서 살았다는 얘기여?"

내가 목청껏 소리 지르며 끼어들었다.
 
"아니, 물에 잠겼다고!"

아버지는 귀가 많이 깜깜해지셨다. 의사소통이 불편하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보청기 착용은커녕 청력 검사조차 손사래를 치신다. '노인네처럼 무슨 보청기는...' 라며. 당신 마음은 '만년청년'이시다. 인생의 막바지 단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걸까. 그 시기엔 몸과 정신이 모래섬마냥, 산들바람만 스쳐도 사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나, 애써 인정하고 싶지 않나. 고집이 보통 아니시다.
 
"그거 고지 안 들린다! 집 한 채도 읍써 지금?"
 
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물었다. 농담을 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곧바로 걱정 섞인 엄마의 타박이 이어졌다.
 
"읎지. 아이구~ 우리 할아버지, 그런 것도 이해 못 허고 어떡헌댜?"
 
나는 두 분을 향해 들고 있던 캠코더 렌즈를 아래쪽으로 휙 돌렸다. 백발이 성성한 노부모의 모습이 프레임 안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 진달래, 산벚꽃, 자작나무 같은 교목과 잡목들로 에워싸인 저수지가 들어왔다. 한 계절 끝에서 푸른 기운을 떨치고 있는 나뭇잎들과 저수지의 수면이 뿌옇게 흔들렸다. 제대로 초점이 잡히지 않는 피사체들. 마치 먼 과거의 아련한 기억들처럼. 아직 조작법이 서툰 '디지털 4K 비디오 캠코더'. 아버지가 지난봄에 내게 넘겨준 고가의 기기다.

저수지 주변을 서성이면서 엄마는 옛날이야기들을 계속 쏟아놓았다.
 
" ... 산으로 버찌 따러 다니고 밤에는 광솔 불 켜 갔고서 내로 고기 잡으러 다니고... 여기, 여기에 가재가 깔렸었는데..."
 
엄마는 늑대와 여우가 마을을 어슬렁대던 그 시절의 흔적들을 찾고 싶어 했다.

"저기, 추석 때면 올라가 놀았는데 바위가 안 보이네... 저기, 저기가 집 있던 자린디... 거기서 운산 국민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마을(저수지)은 사방 야트막한 구릉과 숲으로 폭 에워싸여 있었다. 세상 아늑하고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도 한국전쟁 때도 큰 변고를 치르지 않았다는 마을. 50여 가구의 주민들이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중중 땋은 머리에 댕기를 매고 무명한복을 입고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는 엄마 모습도 환영처럼...
 
"엄마, 여기서 살던 때 일들을 다 기억해?"
"옛날 거는 다 생각나지. 아주 생생하지. 눈에 선해. 지금 거가 왔다갔다 하지. 지금 일들이 깜박깜박 하지..."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목장 언덕길을 올라가며 엄마는 노래를 불렀다.
 
"나의 ~ 살던 고향은~ 꽃피는 ~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그 특별한 나들이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지리산 집으로 돌아와 그날 찍은 영상을 편집했다. 영상을 보며 왠지 가슴이 미어져내려 자꾸 눈물이 났다.
 
 
엄마는 정말 그 고향마을에서 살았던 15살 때까지가 가장 행복했겠다. 그러니까 해방 후 사회주의 운동을 하셨다는 엄마의 아버지(나의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한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게 됐다. 19살 때까지 식모살이(가정부)로, 26살 때까지는 방직공장에서 잠 안자며 뼈 빠지게 돈을 벌었다.

한 가족 생활비와 동생들 학비를 전부 책임졌다. 그리곤 가진 것 없는 남자와 결혼했다. 셋방살이 전전하며 사남매를 키웠다. 별별 막노동을 다 하며 안 먹고 안 써, 가까스로 1만여 평의 야산을 마련했다. 사과나무를 심었다. 사과밭으로 동 트자마자 나가 날이 어둡게, 발바닥이 다 터지도록 일했다. 그러면서 하루 세 끼 식구들 조석을 빠짐없이 차렸다.

무겁고 고단하고 신산했을 엄마의 일생을, 나는 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 했을까. 내 삶이 너무 피곤하고 고생스러웠나. 자기연민에 빠져 징징거리느라 눈가가 짓물러 엄마의 시간을 거들떠보지 못했나. 그런데 이제 대단할 것 없어 보였던 그 한 사람의 일생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근현대사 속의 그 어떤 역사적인 기록보다도 더 위대하게 느껴지는지. 한참 영상 편집에 빠져 있는데, 아버지 전화를 받았다.
 

"은경아, 네가 왔다가니 많이 허전하다... 밥 잘 먹고, 운동 꼭 하고..."
 
그러면서 아버지가 우셨다. 나는 깜짝 놀라 그저 목청만 빽빽 높였다. 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지금도 새벽이면 매일 조깅을 나가고, 고혈압이니 당뇨니 하는 성인병 하나 없는 분이지만... 마음이, 정신이 먼저 심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세 편으로 나눠 편집한 영상을 유튜브 '은경씨 놀다'에 올렸다. 지난 8월 초에 시작한 유튜브. 아버지의 '디지털 4K 비디오 캠코더' 때문에 본격적으로 빠진 새로운 작업이었다. '나는 더 이상 못 하겠다. 네가 잘 써봐라. 최신형이야. 새 거로 바꿔 몇 번 안 썼다'라며 건네준 물건. 더는 기기조작법을 익힐 수 없고, 컴퓨터까지 사양 높은 거로 바꿔봤지만 더는 이미지를 다운받고 CD로 저장하는 방법도 어려워 도저히 못하겠다며.
 
 
30년 넘게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는 영상 촬영이었다. 무슨 행사 때나 나들이 길이나 빠트리지 않고 캠코더를 들고 나갔다. 물론 그 보다 주로 집에서 식구들을 찍었다. 먹고 자고 떠들고 웃고 울고... 별 것 아닌 일상의 모습들을.

아버지는 무엇을 기록하고 싶었던 걸까, 기억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 식구들의 그 일상이 당신에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었나. 가장 예쁘고 기쁜 장면들이었나. 다음에 집에 가면 오래된 아버지의 테이프와 CD를 꺼내 같이 봐야겠다. 아무튼 나는 아버지의 캠코더 때문에 유튜브 라는 '창작놀이'에 빠졌다. 편집을 어렵게 배우고... 주로 나의 소소한 일상을 찍어 올렸다.
 
'결국 인생의 목적이란 최대한 경험하고, 보다 새롭고 다양한 일에 두려움 없이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 엘리너 루스벨트'
 

그러나 나의 노부모처럼 하던 일마저 하나하나 내려놓아야 할 그 나이가 되면, 사는 게 그저 내적 외적으로 망가져가는 일만 남은 것 같은 시간이 오면, 나는 나의 지나간 삶 속에서 무엇을 가장 그리워하게 될까. 무엇을 그리워하며 위안을 받게 될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유튜브 올렸어."
"아이구, 딸 때문에 내가 유명해지겠네. 호호호!"
 
"아니, 그건... 엄마, 날 많이 추워졌어. 새벽예배 갈 때 목장갑 꼭 끼고 가. (엄마는 새벽예배 오가는 길에 길거리 쓰레기들을 줍는다.) 엄마, 벚꽃 피는 봄이 오면 다시 엄마 고향에 같이 가요. 꽃비 맡으며 걸어요. 그러니까 건강하셔야 돼요."
"그래. 고맙다!"
남편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 원작 소설과 더불어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 줄거리나 내 감상평은 따로 적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다만 영화를 보는 동안 내 마음속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 대상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바로 지영의 엄마였다.
 
김지영과 언니 김은영은 내가 살았던 것처럼 '여자로서, 여자니까'라는 수식어가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삶을 살았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녀들이 또 나도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항상은 아니지만 때로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는 것.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모든 가정에 지영의 남편처럼 신식 남편(시어머니 표현)이 있지는 않지만 미세하게라도 남편들은 변하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지영의 엄마와 같은 희생과 노력이 필수불가결한 점이 무척 아쉽다. 회사나 더 큰 사회 집단에서는 그 변화가 더디지만 나는 여자들을 믿는다.
 
 
나는 이 영화를 두 번 보았다. 두 번째는 친정엄마와 보았다. 지영이 아프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지영의 엄마가 "엄마가 금방 정리하고 니 근처로 와서 아영이 봐 줄게. 일해. 엄마가 도와줄게. 너 하고픈 거 해"라고 말하자, 지영은 외할머니로 빙의되어 엄마에게 이런 대답을 해준다.
 
"미숙아, 그러지마. 니가 그 꽃다운 나이에 오빠들 뒷바라지 한다고 청계천에서 미싱 돌리고 얼굴 핼쑥해져서 월급 따박 따박 받아올 때마다 엄마 가슴이 찢어졌었어. 너 미싱에 손 그리되서 왔을 때 엄마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몰라. 그때 마음껏 안아주지도 못하고 고맙단 말도 못했다. 미숙아. 미안하다."
 
이 대사가 내 죄책감을 건드렸다. 나는 엄마도 지영이 외할머니의 대사에 감동을 받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일하는 동안 쌍둥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엄마에게 지금까지의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할까 내심 고민하며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엄마는 그 부분에서는 오히려 지영을 걱정했다. 지영이 엄마와 같은 심정으로.

친정엄마의 버킷리스트 만들기
 
"선생님, 저는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가끔은 행복하기도 해요. 그런데 또 어떤 때는 어딘가 갇혀 있는 기분이 들어요. 이 벽을 돌면 출구가 나올 것 같은데 다시 벽이고 다른 길로 가도 벽이고 그냥 처음부터 출구가 없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요."
 
지영이 본인의 이상을 알고 난 후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상담하면서 말하는 내용이다. 영화 보는 내내 훌쩍이던 엄마는 이 부분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휴지를 건네주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엄마에게 물었다.
 
"내 얘기인 것 같아서. 아직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엄마의 대답이다. 엄마는 예전에 했던 몸 고생은 다 잊었다고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영화 속의 지영처럼 순간 아주 짧은 찰나에 그런 허무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엄마의 허무함을 사라지게 할 순 없겠지만 줄여줄 수 있지는 않을까. 영화 속의 지영처럼 글을 써 보라고하면 너무 직접적인 것 같다. 나는 '할머니의 꿈'이라고 검색을 해보았다. '꿈에 할머니가 나와서 좋은 일이 생겼다. 길몽이다'라는 대답이 전부였다. 혹시라도 참신한 생각이 나올까 싶어 강물이와 마이산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 : "할머니랑 영화를 봤는데."
강물 : "무슨 영화?"
나 : "82년생 김지영."
강물 : "엄마 책상에서 그 책 봤는데, 영화도 있어?"
 
영화 내용을 이야기 해주고, 할머니가 왜 울었는지도 설명을 해주었다. 강물이와 마이산은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하지만 대충은 이해하는 듯 했다.
 
마이산 : "할머니도 소확행이 있어야겠는데."
강물 :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면 어떨까? 유튜브에서 봤는데, 104세 할머니가 감옥에 가는 게 버킷리스트 목록에 있어서 경찰이 그 소원을 들어주고 할머니는 수갑 차고 웃고 있었어."
 
젊은 감각을 이어받고 나는 유튜브에서 할머니의 버킷리스트를 검색해 보았다.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어느 노인정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굽은 허리가 펴지면 좋겠다, 도통 어디를 다녀보지 않아서 어디로든지 여행을 가고 싶다, 팔순 생일에 제주도에 가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해외에도 가고 싶다 등 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엄마의 건강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지, 소확행, 버킷리스트는 떠올리지도 못했다. 청년과 노인을 가르는 내 고정관념을 먼저 깨야겠다. 나는 강물이와 마이산과 같이 주말에 예쁜 수첩을 하나 샀다. 표지만 봐도 소원이 이뤄진다는 생각이 드는 예쁜 수첩으로. 엄마의 수첩에 어떤 버킷리스트가 쓰여질지 기대가 된다.
15일 등굣길, 수능을 끝낸 아이들의 발걸음이 예전보다 아주 가벼워 보였다. 조회를 위해 조용히 교실 문을 열었다. 평소와 달리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전날 치른 수능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불수능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이들의 표정은 그다지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우선 아이들에게 가집계표를 나눠주고 난 뒤, 이미 발표된 정답을 확인하여 가채점을 해보도록 하였다. 일찌감치 가채점을 마친 일부 아이들은 입시 학원에서 발표한 예상 등급을 확인하며 자신이 갈 수 있는 대학을 가늠해 보기도 하였다.
 
수시모집에 최종 합격한 일부 아이들을 제외하고 아이들 대부분은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왔다며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느끼는 수능 체감은 각각 달랐고 희비 또한 엇갈렸다.
 
우선 수시모집 최저 학력이 있는 아이들의 예상 등급이 궁금했다. 아이들 대부분이 수능 최저를 맞춰 남아있는 대학별 고사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반면, 최저를 맞추지 못한 아이들은 앞으로 있을 대학별 고사(면접, 논술, 적성 등)가 무의미해졌다며 낙담하기도 했다.
 
모의고사 때보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는 한 아이는 2교시 수학에서 고친 문제가 다 틀렸다며 순간의 판단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부족하여 정답을 적어오지 않은 일부 아이들은 성적표가 나올 때까지 자신의 점수를 기다려야만 했다.
 
매번 모의고사 때 영어 점수를 5등급 이상 맞춰본 적이 없는 한 남학생은 가채점 결과 2등급이 나왔다며 영어 선생님인 내게 자랑했다. 그런데 다른 영역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그 안타까움이 더욱 컸다.
 
지난 수시모집에 원서를 내지 않고 오직 정시를 위해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해 온 한 여학생은 사회탐구를 제외한 모든 영역이 모의고사 때보다 훨씬 더 점수가 잘 나왔다며 정시에 한 가닥을 희망을 걸 수 있다며 좋아했다.
 
평소 모의고사 때, 1, 2등급이 나올 정도로 수학만큼 자신 있어 했던 한 아이는 몇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해 3등급이 되었다며 울먹였다. 그리고 늘 '재수는 없다'라며 모의고사에 자신만만했던 어떤 아이는 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내년에 재수해야 할 것 같다며 허탈해했다.
 
탐구영역 선택과목 2과목 중 1과목에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한 아이는 수능 원서 접수 마지막 날 선택과목을 바꾼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5교시 아랍어를 선택한 한 여학생은 가채점 결과 1등급이 나왔다며 탐구영역 1과목과 대체할 수 있어 좋아했다.
 
아직 수능 성적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은 만큼 수능 성적에 너무 낙담하지 말 것을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남아있는 대학별 고사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주문했다. 무엇보다 수시모집에 한 군데라도 합격(전문대 포함)하면, 정시모집에 지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수능이 끝난 오늘. 오랜만에 아이들의 밝은 표정을 대하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더는 우리 아이들이 수능 후유증으로 고통받지 않기를 내심 기도했다. 그리고 아직 정확하게 나오지도 않은 수능 결과에 지레짐작 겁먹고 대학 입시를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파주연천축협 하나로마트 주차장에서
 

경기도 파주시에서는 15일 오후 5시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으 로 희생된 11만여 마리의 돼지와 멧돼지를 위한 첫 '축혼제(畜魂祭)'를 거행했다.
 

파주시는 지난 9월 17일 연다산동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 발생한 이후 10월 3일 문산읍 마정리를 마지막으로 총 111개 축산농가 11만538두를 살처분했다.
 

이날 행사는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과 사전 매수로 희생당한 파주 전역의 돼지들과 파주 양돈 농가와 시민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였다.
 

파주연천축협 하나로마트 주차장에서 진행된 축혼제 행사는 양지희 술이홀예술단  단장의 살풀이춤과 김순현 파주신문 대표의 인사말에 이어 축혼제, 축산인들의 분향, 가축 전염병 같은 위험으로부터 파주 축산업을 지켜달라는 축혼사, 가축을 위한 헌잔 순으로 진행되었다. 2부 행사로는 파주지역 가수들이 출연해 상실감에 빠진 축산인과 생명존중 일탈에 따른 '힐링의 장'을 마련했다.
 

한편 이날 희생된 가축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제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단이 참여했으며 축산인, 시민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축혼제는 파주연천축협, 북파주농협, 한돈협회파주시지부가 후원하고 파주언론사협회(파주신문·파주시대·파주인·파주에서·파주일보)가 주최,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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