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인생 후반전 선 당신, 결코 주눅 들 필요 없는 이유
결혼 시즌이어서인지 청첩이 잦다. 며칠 뒤 고향 친구 딸애가 결혼을 한다. '아재'였던 친구들이 하나 둘 '할배'가 되어가니, 예전처럼 편하게 "이눔 저눔" 하는 것도 삼가야겠다. 우리 죽마고우들 모이면 여전히 철부지지만, 혼주 코르사주를 꽂고 점잔 빼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니 문득 '어른'이 뭘까 싶다. 이 글의 소재인 재즈로 표현하자면, 어른이란 무대 위에서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연주를 해내야 하는 고독한 솔리스트가 아닐까.

부모로서의 책임, 가장으로서의 무게, 혹은 사회적 위치에 걸맞은 체면이라는 이름의 빽빽한 음표를 앞에 두고 실수 없이 연주해내야 하는 중압감. 제때 출근하고, 적당히 고개를 숙이며, 때로는 하기 싫은 연주도 밴드의 화음을 위해 묵묵히 수행하는 임무. 그것이 사회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제 몫을 다하는 어른'으로 인정받는 방법이다. 우리는 그렇게 성실하게, 남들이 정해준 '표준(Standard)'에 맞춰 인생의 전반을 연주했다.

의무의 '악보'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지는 날

재즈에는 이 '표준'과 같은 '스탠더드(Standards)'라는 것이 있다. 주로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넘버나 영화 음악들인데, 모든 재즈 연주자가 알고 있는 일종의 '공용 악보'같은 것이다. 처음 만난 연주자들이 재즈 클럽에서 눈인사만 나누고도 곧바로 합주를 시작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공유하는 이 '스탠더드'라는 공통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으로 치자면 '남들 하는 만큼은 하고 사는'사회적 규범이자, 거부하기 힘든 인생의 표준 양식인 셈이다.

하지만 진짜 '재즈 맨'들이 연주하는 스탠더드는 결코 '빤한' 음악이 아니다. 그들은 절대로 원곡과 똑같이 연주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멜로디를 정직하게 따라가며 담백한 맛을 내고, 어떤 이는 원곡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해체하고 뒤섞어 전혀 새로운 음악을 창조한다. 재즈에서 스탠더드란 반드시 지켜야 할 철칙이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최소한의 밑그림일 뿐이다. 거장들은 누구나 아는 익숙한 멜로디 위에 자신만의 독특한 박자를 얹어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그동안 우리가 연주해 온 '부모'나 '가장'이라는 역할도 사실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종의 스탠더드 넘버다. 세상 모든 아재가 비슷한 악보를 받았지만, 그 악보를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 달랐을 것이다. 누군가는 음표 하나 틀리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며 고지식한 연주를 이어왔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팍팍한 삶 속에서도 슬쩍슬쩍 자신만의 유머를 섞어 변주를 시도했을 것이다.

이제 며칠 뒤면 친구는 딸의 손을 사위에게 건네주고 자신이 쥐고 있던 '어른의 악보' 한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볼 나 역시, 이제는 그 빽빽한 의무의 악보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생 후반전은 우리에게 전무후무한 신곡을 써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평생 연주해 온 그 익숙한 삶의 멜로디 위에서, 이제는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나만의 '솔로 세션'을 즐겨보라고 권한다. "나는 평생 이렇게만 살았어"라는 말은 그간 내가 연주해 온 곡의 제목일 뿐, 남은 연주 방식까지 결정하는 족쇄가 될 수는 없다. 우리 아재들은 '남들 만큼만' 하는 스탠더드 연주에 길들여져 있다. "앞장서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앞 세대의 가르침은 개성 있는 변주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하지만 재즈는 끊임없이 묻는다. "남들이 다 아는 그 노래 말고, 당신의 진짜 소리는 무엇인가?"라고.

낡은 체면이라는 악보를 잠시 덮고,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생각보다 쑥스럽고 어색할 것이다. 하지만 재즈 거장들은 나이가 들수록 기교는 덜어내고 소리의 깊이를 더한다. 젊은 날의 화려한 속주가 사라진 자리에,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겪어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묵직한 한 음이 들어차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백전노장의 품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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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열두 번째 봄을 맞았다. 6.3 지방선거전에 들어간 경남도지사 후보들도 나란히 기억을 강조하는 내용의 추모 메시지를 공개했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 "(당시) 수학여행에 들떴을 그 마음을 생각한다. 가라앉는 배를 그저 지켜만 봐야 했던 남은 이들의 마음도 생각한다"라며 "있을 수 없는 사고보다 더 있을 수 없었던 일은 구조도 수습도 뒤처리도, 처음부터 끝까지 무책임했던 국가였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참담한 4월의 그때를 떠올린 그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 정치의 처음이자 끝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4월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며 "유가족분들의 오랜 아픔에 깊은 위로를 전한다. 아이들은 영원한 봄을 살거다. 남은 우리는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

국민의힘 주자인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4월의 무게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라고 시작하는 입장문을 언론에 전달했다. 추모를 먼저 전한 박 지사는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이날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은 다시는 이 땅에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리 모두의 준엄한 약속"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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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대전지방법원(형사5단독 구천수 판사)은 하천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보철거시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시민단체의 농성이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익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구천수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해당 환경단체는 세종보 재가동이 수질과 수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지하고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 농성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관계기관과 일반인에게 환경적 검토 의견을 전파하기 위한 공익 목적으로 볼 수 있어 행위의 동기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천막 설치에 대해서도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폭력성을 내포했다고 보기 어렵고,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상당성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특히 정부와의 소통이 부재했던 상황을 지적하며 "긴급성과 보충성도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무죄 판결을 받은 박 처장과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아래 보철거시민행동)'은 지난 2024년 4월 29일부터 세종보 상류 500m 지점에 천막을 설치하고 700일 동안 농성을 이어왔다. 이곳은 보 수문을 닫을 경우 물에 잠기는 지점으로, 4대강 사업 부활을 막기 위한 상징적인 장소로 꼽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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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6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강창일 전 의원을 임명했다.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이를 밝혔다. 그는 "(강 수석부의장은) 역사학자 출신의 4선 국회의원"이라며 "우리 근대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정파를 초월해 평화협력을 추진해 온 국가원로"라고 밝혔다. 또 "한일의원연맹 회장, 주 일본 대사 등을 통해 쌓은 외교적 경륜을 통일 담론에 담아 통합의 가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는 한국구술사학회 회장,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김귀옥 한성대 교수를 임명했다. 이 수석은 "(김 상임위원은) 한국전쟁 전후에 민간인 희생과 이산가족 문제, 약자에 대한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해 온 과거사 규명의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위원장에는 이창훈 서울대 환경대학원 특임교수가 위촉됐다. 이 수석은 "한국환경연구원 원장, 환경부 중앙환경정책위원 등을 역임하는 등 환경·에너지 분야에 대한 이론과 정책실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라며 "기후-에너지-사회를 아우르는 국가 위기 정책의 대전환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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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를 보고 사람들은 모두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흉내 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실제 모습을 모델로 연기했다. 아무도 클린트를 연기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클린트의 힘은 절제미에서 나왔다. 그는 진정으로 강한 사람들은 굳이 소란을 피우거나 과시하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줬다. 그는 그저 가만히 앉아 '해보세요'라고 말할 뿐이다. 미란다 역시 책임감이 막중한 보스로서, 긴말할 필요 없이 '그게 다야'라고 할 뿐이다." - 메릴 스트립

"1편에서 처음 연기할 때는 메릴이 저와 거리를 둬서 정말 다행이었다. 당시 22살이었던 제가 연기에 대해 뭘 알았겠나. 현장에 메릴이 나타나기만 해도 극 중 앤디의 감정을 그대로 느꼈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실수하지 말아야지' '조용히 하자, 방해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메릴이 미란다의 모습으로 제가 더 몰입할 수 있게 길을 터준 거다." - 앤 헤서웨이

15일 방송된 tvN <유퀴즈 온더블럭>에서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톱스타 여배우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함께 출연했다.

메릴과 앤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에서 20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다. 2006년 개봉한 1편은 기자가 꿈인 앤디(앤 해서웨이)가 최고의 패션 매거진 <런웨이>에 입사하여 악마로 불리는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비서가 되어 고군분투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전 세계에서 약 3억 2600만 달러(4860억 원)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패션 영화의 바이블로 남았다. 영화 속에서 미란다에 빙의한 듯한 메릴의 호연, 시대를 앞서간 앤의 스타일링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20년이라니, 나이 먹은 느낌이 든다.(웃음) 사실 수년 전부터 속편을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기다려야 했다. 인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줄 딱 적절한 순간이 와야 하니까. 생각해 보면 20년을 기다려서 참 다행이다. 앤디도 그녀만의 인생을 만들수 있었고, 미란다도 편집장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완전히 변했다. 그래서 20년 만에 돌아온 게 큰 의미가 있다." - 메릴 스트립

"메릴이 말한대로 아주 중요한 점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1편을 만들 때는 아이폰이 출시되기도 전이었다. 안정적일 것 같았던 직업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고 앤디도 다를 바가 없다. 고용 불안으로 고민하던 앤디에게 <런웨이>에 다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 처음에는 망설이지만 인생의 큰 기회라는 걸 깨닫는다. '런웨이'는 훌륭한 직장이니까." - 앤 해서웨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편은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 개봉한다. 영화는 지면 잡지의 위기 속에서 <런웨이>를 지키려는 미란다와 다시 돌아와 신임 기획 에디터가 되어 조력하는 앤디의 이야기를 담았다. 1편의 중요한 조연들이자 이제는 또 다른 톱스타가 된 에밀리 블런트(에밀리 역), 스탠리 투치(나이젤) 등도 변함없이 출연한다.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다. 세월이 흘러서 캐릭터들이 풍파를 겪어서 풍성해졌다. 이제 미란다는 안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웃음) 영화계에서 이렇게 돌아오는 건 흔치 않은데 멋진 경험이다." - 메릴 스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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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개발업자 남욱 변호사가 2022년 9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구치감에 2박 3일간 체포돼 조사를 받는 동안 대장동 수사를 이끌었던 정일권 부장검사로부터 "우리 목표는 하나다. 내려가서 잘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폭로했다.

16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 기소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의 '대장동·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위례신도시 조작기소 의혹 사건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남욱 변호사는 2022년 9월 긴급체포 이후 조사 과정에 대해 상세히 진술했다.

"그날 밤늦게 정일권 부장과 면담을 했는데 본인이 배를 갈라서 장기를 다 꺼낼 수도 있고 환부만 도려낼 수도 있다. 그게 우리 권한이다. 애들 사진을 보여주며 애들 봐야 하지 않겠냐. 여기 계속 있을 거냐. 마지막 이야기가 '우리 목표는 하나다. 내려가서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저는 혼자였고, 변호인도 없었다. (정 검사가 말한) 목표는 이해하고 있고, 제 입장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남 변호사는 정 검사가 말한 '목표가 하나다'는 의미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 기소"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 사건 재수사가 이뤄진 건 이재명 대통령 기소를 위한 것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알 거다. 어쨌든 대장동 사건은, 어떤 상황이 됐든 이재명 대통령이 기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목표를 정했다. 뭐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민간이 (이익을) 많이 가져갔다고 배임으로 기소가 된건데, 만약에 반대면, 관이 돈을 많이 가져갔으면, 제3자 뇌물이 됐을 거다. 어떤 기준이든 저희는 다 기소가 됐을 거다. 목표가 있어서."

남 변호사가 이 말을 하는 순간, 뒤쪽에 앉아 있던 정일권 검사의 고개 숙인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후 발언 기회를 얻은 정 검사는 "목표가 누구다 말한 적 없다", "일체의 편견과 고려 없이 실체 진실과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했다"면서 남 변호사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남욱 "유동규 거짓말, 검증 없이 유죄 증거로 인정"

남욱 변호사는 "긴급체포 직후 서울중앙지검 구치감에서 2박 3일 동안 혼자 있었다"며 "잠을 못 잤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남 변호사는 아래와 같이 밝혔다.

"여기 조사를 한 검사들도 계시지만, (1기 수사팀 수사 당시) 처음 공무원을 불러서 물어보지 않았던 걸 (윤석열 정권 탄생 후 만들어진 수사팀이) 2차 조사 하면서 '이재명이 시켰지?'라고 저한테도 그랬다. '잘 모른다'고 하니 '시장이니 시켰겠지', '그러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유동규(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는 마지막에 거짓말을 한다. 없었던 사실을 말한다. 그런 말들이 결국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인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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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기업이 YTN 대주주가 된 뒤 한 일이 YTN을 내란 세력을 옹호하는 방송으로 만든 겁니다. 유진 기업은 방송 독립성에 대한 이해도 개념도 없습니다. 그저 YTN 언론인들을 찍어누르고 말 듣지 않으면 징계하면 된다는 태도로 대했습니다."

YTN은 지난 2024년 유진기업이 대주주가 된 이후 끊임없는 내홍을 겪고 있다. YTN 최대 노조인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가 사측의 행위에 반발해 쟁의 행위를 벌인 지도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YTN은 사장추천위원회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해 수개 월째 사장 없는 '사장 대행' 체제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진기업 측이 YTN 이사회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는데, 노조 측이 "대주주가 보도에 직접 개입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YTN 우리사주조합이 '방송통신위원회의 YTN 최대주주 변경 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했지만, 유진 측이 항소하면서 여전히 '유진 체제'는 계속되고 있다.

현 체제를 '유진 강점기'라고 규정한 전준형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장은 유진 체제를 끝내는 것이야말로 "내란 청산"이라고 강조했다. 전 지부장은 "과거 공적 소유 구조에선 대주주가 방송 독립성을 철저히 지켜줬으나, 유진기업으로 대주주가 바뀐 이후 철저한 개입과 통제가 시작됐다, 보도를 통제하고, 내란 세력을 옹호하는 방송으로 만들었다"라면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는 유진의 대주주 자격을 조속히 취소하고 YTN을 공적 소유 구조로 회복시켜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위원장은 사장추천위원회를 비롯해 YTN 이사회가 여러 조직을 신설하는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유진기업이 사장 대신 이사회를 통해 경영과 보도를 모두 장악하겠다는 시도"라고 규정하면서 "유진 기업은 대주주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YTN 구성원들을 대화 당사자로 대한 적이 없다, 그저 찍어 누르고 강압적으로 강요해서 말 듣지 않으면 징계해버리면 된다는 태도였다"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14일 YTN사옥에서 전준형 언론노조 YTN 지부장과 나눈 일문일답

"사장 대신 이사회 통해 경영과 보도 모두 장악하겠다는 시도"

- 지난해 시작된 YTN 파업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현 상황을 설명해달라.

"지난해 5월 쟁의에 들어가 3월 14일 기준 328일째 쟁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7차 파업을 했다. 과천 방미통위 청사 앞에 가서 유진그룹 최대 주주 자격을 빨리 취소해 달라고 했고, 방미통위 청사 앞에서 출근길 1인 집회도 이어가고 있다. 방미통위 첫 전체 회의가 열렸는데, 이날 안건에서 YTN 문제는 빠졌다. 신임 방미통위 위원들이 숙지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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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와서 몇 해 되지 않아서의 일이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광고를 보는데 유명한 가수가 순백의 턱시도를 입고 순백의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며 멋지게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이 아주 진지했다. 그래서 가사를 유심히 듣다가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했다. 초콜릿 과자를 찬양하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초콜릿이나 과자는 아이들만 먹는 것으로 알면서 살았었다. 그랬기에 다 큰 어른이 초콜릿 찬가를 진지하게 부르는 모습이 좀 우스웠다. 살면서 보니 이들에게 단것은 간식이나 군것질이 아니라 식문화의 일부임을 알게 되었다. 후식을 먹기 위해 식사를 한다는 사람도 봤다. 성탄절이나 부활절에는 명절 음식보다 케이크와 과자와 초콜릿이 더 중요하다. 그런 문화 때문에 단것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단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런 문화가 만들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협박은 "후식 안 준다!"라는 말이다.

독일 사람 한 명의 연간 초콜릿 소비량이 세계 2위다. 일등은 스위스. 그리고 에스토니아, 오스트리아, 아일랜드가 공동 3위라고 한다. 독일 사람 한 명이 일 년에 평균 약 9킬로그램의 초콜릿을 먹는다. 별로 많아 보이지 않지만, 이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것이 판형의 초콜릿바인데 하나가 보통 100그램이니 한 사람이 초콜릿바 90개를 먹는 셈이다. 4일에 하나꼴이다.

초콜릿 소비량은 세계 2위지만 독일은 초콜릿 수출 1위국이다. 2위 벨기에 수출량의 거의 두 배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카카오 열매를 단 한 개도 생산하지 않는 나라의 초콜릿 연 수출 규모가 약 56억 달러 (2022년 기준)라는 점은 많은 의문을 던진다. 독일에는 2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초콜릿 제조업체가 있다. 게다가 페레로, 마즈, 몬덜리즈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독일에 공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Made in Germany"라는 품질 브랜드 — 이것이 독일을 카카오 없는 초콜릿 수출 왕국으로 만들었다.

초콜릿 왕국

베를린의 중심가의 젠다르멘마르크트 광장.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불리는 이곳에 초콜릿 백화점이 있다. 콘서트홀과 두 개의 대성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연면적 1500제곱미터, 3층에 걸쳐 1톤가량의 초콜릿을 각양각색의 형태로 만들어 전시하고 판매한다. 베를린의 명소, 브란덴부르크 문, 연방 의사당 등의 2~3미터짜리 초콜릿 모형, 초콜릿 분수 등.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영화의 장면처럼 초콜릿에 풍덩 빠질까 봐 겁나는 곳이다.

그 외에도 베를린 전역에 크고 작은 초콜릿 하우스가 수십 곳이다. 그런 곳에 가 보면 '초콜릿 문화의 전당'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는 식민지풍의 가구까지 갖춰 놓은 곳도 있다. 나름대로 카카오는 물론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설탕까지 식민주의의 산물이니 식민지풍의 진열대로 구색을 맞추려는 '갸륵한' 발상일 것이다.

원래 메소아메리카의 카카오 음료는 맵싸한 의례용 음료였으나 유럽에 들어온 뒤 설탕, 바닐라와 우유가 더해지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달콤한 초콜릿'이 되었다. 독일은 초콜릿 소비량이 급증했던 19세기 말에 비로소 식민지가 생겼다. 기대와는 달리 독일 식민지에서의 카카오 생산량이 매우 저조해서 막대한 물량을 포르투갈령 서아프리카나 남미 등 외부에서 사들여야 했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엔 죄질이 낮아 보이지만 사실은 원료 수급 외에도 대중문화 속 소비 이미지, 그리고 오늘의 글로벌 무역 구조에 이르기까지 깊고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중 소비문화에 깊이 침투한 흑인 어린이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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