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치사율 최대 75% '니파 바이러스' 인도 확진, 동남아 경계 강화
인도 서벵골주에서 니파 바이러스(Nipah virus) 감염 사례가 잇따라 확인되면서 동남아시아 각국 보건 당국이 긴급 방역 조치에 나섰다. 현지 보건 당국에 따르면 니파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최대 75%에 달할 수 있는 고위험 인수공통감염병으로, 박쥐와 돼지 등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전파되거나 감염자의 비말 등을 통해 사람 간 전염이 가능하다. 잠복기는 통상 4~14일이며, 초기에는 감기 유사 증상으로 시작하지만 급성 뇌염으로 진행될 경우 24~48시간 내 혼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월 26일, 인도 서벵골주 바라싯 지역 병원에서 보건의료 종사자 2명이 니파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인도 국가국제보건규정(IHR) 연락사무소를 통해 공식 발표했다. 두 환자는 동일 병원 소속 간호사로, 한 명은 기계호흡 상태이고, 다른 한 명은 중증 신경학적 질환에서 회복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WHO는 부검과 PCR 검사를 통해 감염을 확정했으며, 190명 이상의 접촉자 전원에 대해 모니터링과 검사를 실시한 결과 모두 음성으로 확인됐다. 현재까지 추가 확진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이번 의료진 확진 사례는 사람 간 전파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WHO 공식 문서에 따르면, 과거 일부 유행에서는 보건의료 시설 내 밀접 접촉자 사이에서 2차 전파가 문서화된 사례가 있으며, 이에 따라 병원 내 감염 예방 통제가 코로나19 이상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WHO는 니파 바이러스 감염병이 특이한 임상 경과를 보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일반적인 발열과 호흡기 증상만 나타나 정확한 인지와 조기 대응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심각한 경우에는 뇌염, 발작, 호흡곤란 등이 발생하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과거 동남아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행 사례는 특히 치명적이었다.

대표적으로 1998~1999년 말레이시아에서는 약 265명이 감염돼 105명이 사망했고, 2014년 필리핀에서는 17명 중 9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감염은 박쥐에서 중간 숙주인 돼지로 전파된 뒤, 돼지와의 접촉을 통해 사람에게 옮겨진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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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넘어 '정책 축제'였다. 세계 혁신도시의 해법을 시민과 나누는 장이었고, 5천 명이 넘는 인파로 재선을 향한 민심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올해 6·3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의 출판기념회는 '준비된 혁신가 이재준'의 정치적 비전과 실행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현장이었다.

1일 오전 출판기념회가 열린 경기아트센터 도움관은 행사 시작 한참 전부터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재준 수원시장이 펴낸 <수원의 새빛, 세계로 가다>(라의눈, 2026)의 출판기념회였지만, 시민들은 책이 아니라 '수원의 다음 4년'을 보기 위해 모였다.

프랑스 뚜르와 브라질 꾸리찌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도시 혁신 사례가 전시장에 펼쳐졌고, 연단에 선 이재준 수원시장은 "이제 수원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책이 아니라 '정책'을 꺼냈다… 세계 혁신도시 해법 공유

이날 행사는 통상적인 출판기념회의 형식을 과감히 벗어났다. 단순한 저서 소개나 정치적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세계 9개 도시의 혁신 사례를 전시·토론·공유하는 '정책 축제'로 기획됐다.


행사장에는 프랑스 뚜르의 창의적 플랫폼 사례, 브라질 꾸리찌바의 BRT 구축 사례, 멕시코 톨루카의 문화 육성 전략,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에너지 자립 모델 등이 대형 패널과 영상으로 전시됐다.

이재준 시장의 <수원의 새빛, 세계로 가다>는 이 같은 세계 혁신 도시들의 사례를 '인프라, 문화, 포용적 복지'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를 수원시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책이다. 이 시장은 프랑스, 브라질 등 세계 9개 도시를 직접 답사하며 확인한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의 기초자치단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안한다.

특히 프랑스 뚜르의 창의적 플랫폼 사례는 지역 산업과 문화가 결합한 도시 재생의 가능성을, 브라질 꾸리찌바의 BRT 사례는 대중교통 중심 도시 전환의 실효성을, 멕시코 톨루카의 문화 전략은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성장 모델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재준 시장은 이들 사례를 수원의 현실과 연결하며 '수원 대전환'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세계 도시들의 지혜는 실전 지침서"… 30년 도시설계 전문가의 통찰

북토크에 나선 이재준 시장은 자신의 책을 단순한 정책 제안서가 아닌, '현장에서 검증된 실전 보고서'라고 설명했다. "책에 담긴 세계 도시들의 지혜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수원의 미래를 위한 실전 지침서"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수원의 미래 비전을 "'새로운 빛, 다채로운 빛, 따사로운 빛'으로 요약되는 3색 비전"이라고 설명하며, "세계 혁신 도시들의 지혜를 수원에 녹여내어 시민의 삶이 가장 빛나는 도시를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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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 유형원(1622~1673)은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다. 진사과에 급제했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농촌사회의 현실과 사회문제를 연구하는데 몰두했다. 그가 연구한 학문분야는 정치·경제·천문·지리·군사·언어 등 광범위했지만 당시 심각해져가고 있던 여러 가지 사회모순을 완화하기 위한 구체적 개혁안을 제시하고, 실사구시의 학문태도를 주장함으로써 이후의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반계수록> 등 국정개혁을 논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기는 한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화답하는 글>과 같은 정갈한 산문을 썼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화답하는 글

돌아가자
해가 저문데 어찌 아니 돌아가랴.
진실로 자득하여 성실하면, 어찌 외물(外物) 때문에 슬퍼할까.
옛날 내 처음 앓이 있을 때, 오직 성인만을 기약했지.
경수(涇水) 위수(渭水)로 맑고 흐림 살피고,
조금이라도 혹시 잘못할까 두려워,
늘 바둥바둥 해 보내며, 아침밥 겨울옷도 잊었지.
어지러이 많고 많은 사물,
드러나건 숨어 있건 이치는 매한가지.
그 사이 밝게 드러나면, 나는 것도 있고 달리는 것도 있지.
경(敬)과 의(義) 붙잡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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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최초 여성시의장이자 3선 시의원인 백인숙 여수시의회 의장이 시민 앞에서 정치의 방향을 다시 물었다.

백 의장은 1일 오후 2시 여수시민회관에서 열린 저서 <여수의 길을 묻다> 북콘서트에서 여수의 현재와 미래를 화두로 시민과의 동행을 선언하며, 정치의 중심을 다시 시민에게 돌려놓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출판 기념을 넘어, 정치에 나선 이유와 여수의 오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시민과 함께 묻고 답하는 소통의 장으로 진행됐다.

이번 북콘서트는 여수 최초 여성 시의장이자 3선 시의원으로서 백 의장이 시민과 함께 걸어온 현장의 기록과 여수가 직면한 구조적 과제들을 시민의 언어로 풀어내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박수와 공감으로 북콘서트의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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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지향인으로 살아온 지 8년 차다. 채식을 지향하는 데는 환경, 동물, 건강, 종교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필자는 동물과 함께 살고 동물권을 고민하다가 채식을 시작했다. 엄격한 비건을 지향하고 싶으나 직장 생활을 할 때나 여행할 때는 덩어리 고기만 먹지 않는 '비덩주의자(덩어리로 된 동물성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가 된다.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채식의 종류를 달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유연하게 조절한다고 하더라도 사골 국물과 같은 육수 향이 진하게 나는 음식은 먹지 못한다.

"홍콩은 좀 걱정되는데.."

아내와 홍콩을 여행지 후보로 논하던 중이었다. 10년 전에 홍콩으로 이미 여행을 다녀왔던 아내가 우려를 표했다. 아내에게 홍콩은 '육식 도시'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기억에 남는 요리 대부분이 동물성 재료 기반"이라고 했다. 사전 조사를 시작했다. '홍콩 채식', '홍콩 비건'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채식식당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홍콩 내 채식 식당을 확인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음식점이 검색되었다. 전문 채식 음식점은 아닐지라도 일반 음식점에서 채식 옵션을 제공하는 음식점이 많았다. 인도네시아 발리, 길리 여행만큼 채식이 편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채식 지향인의 눈으로 바라본 홍콩

필자는 두 가지 렌즈로 홍콩을 바라봤다. 첫째, 채식 지향인의 눈이다. 홍콩이라는 도시는 채식 지향인에게 친절한가? 제공하는 채식 음식의 종류는 다양한가? 홍콩은 미식의 도시다. 먹거리가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길거리까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홍콩에 여행하러 가는 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까.

과연 채식 지향인에게도 미식의 도시가 될 수 있을까?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옥토퍼스 카드(홍콩 전역 대중 교통 및 편의점과 자판기 등에서 사용하는 선불 충전식 IC카드)를 구입하기 위해 지하철역에 갔다. 국내 지하철역과 비슷한 풍경이다.

편의점과 일본식 삼각김밥 판매점도 있었다. 편의점에서는 채식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지만 삼각김밥 판매점에서는 쉽게 채식 음식을 찾을 수 있었다. 상품명 옆에 귀여운 초록색 마크가 보였는데 영어로 쓰인 상품명을 보니 'plant-based', 채식 상품이다. 첫인상이 좋다. 홍콩 물가 때문에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지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채식 메뉴가 있어서 반가웠다.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을 하나 꼽아보라면 '딤섬'이다. 길 가다가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딤섬집이다. 국내에서 분식집을 쉽게 찾을 수 있듯 말이다. 딤섬은 '점심(點心)'의 광둥식 발음이다. 광둥에서는 간단하게 먹는 음식을 뜻하는데, 만두피 안에 고기나 야채를 속으로 넣어 만든 음식이다. 다행히 많은 딤섬 전문점에 채식 딤섬이 있었다. 광둥어에 익숙하지 않지만, 채식 메뉴 옆에는 그림이 표기되어 있다.

'오늘은 어느 딤섬을 맛보게 될까?'


느긋하게 홍콩 거리를 걸으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음식점을 가더라도 맛있었던 '채식 딤섬' 덕분이었다. 채식 딤섬에는 음식점별로 재료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버섯이 들어가고 당근, 파와 같은 채소가 들어간다.

공통적인 특징은 딤섬피에 전분이 들어가서 그런지 쫄깃하다. 가장 맛있다고 생각했던 딤섬 전문점은 특히 쫄깃했고 속에 들어있는 고수 향이 다른 채소와 잘 어우러졌다. 사장님 말로는 다른 딤섬 집이 냉동 딤섬을 판매하는 반면 해당 딤섬집은 매일 딤섬을 직접 찐다고 하셨다.

홍두고와 비건 베이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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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에 꽂혀 살지만, 노벨상의 꽃은 아무래도 노벨물리학상이다. 42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지 않았다면 이휘소(1935~1977) 박사도 이 상을 탔을 가능성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광복 70주년에 발행한 <과학기술 대표성과 70선>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었다면 노벨물리학상 수상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학자"였다며 '소립자 물리학의 표준 모형을 확립한 학자'라는 세계 학계의 평가를 전한다.

"수상 반열에 오를 수 있는"이라는 표현은 다소 부족한 느낌을 준다. 이휘소 평전인 이은유 작가의 <현대 물리학의 별 이휘소>는 그가 물리학계 내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말한다.

파키스탄 물리학자인 압두스 살람은 한동안 세계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이휘소를 찾아가 자기 이론을 설명했고, 이휘소는 당신 이론이 맞다고 인정했다. 이휘소가 인정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세계 학계가 살람을 주목했고, 살람은 1979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됐다.

스티븐 와인버그는 이휘소의 연구로 인해 그의 주장이 증명된 덕분에 살람과 함께 공동 수상을 했다. 위 책은 "이뿐만 아니라 훗날 토프트와 벨트만도 이휘소의 도움이 있었기에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고, 리히터와 팅 등도 마찬가지였다"라고 기술한다.

이휘소는 세계 물리학계뿐 아니라 한국 학계에도 기여했다. 위의 <과학기술 대표성과 70선>은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의 진흥에도 크게 기여"했다며 "1974년 미국 AID 차관자금에 의한 서울대학교의 이공계 교육증진계획을 적극 지원했고, 이를 통해 국내 대학교육용 기자재를 구입하고 실험시설을 확충하여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원의 교육 및 연구 수준을 향상시켰다"라고 평한다. 또 "우리나라가 고에너지 국제공동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했다"라고도 말한다.

이휘소의 성공 신화


이휘소의 출생 연도는 해방 10년 전인 1935년이다. 고향은 서울 원효로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의사였고, 딸과 아들이 넷인 가정에서 장남이었다. 공붓벌레였던 그는 경기중학교와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수석 합격했다. 그는 부모님의 병원 2층에 차려진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실험에 몰두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간 1952년만 해도 화학공학과의 인기가 높았다. 이 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주로 가는 곳은 화장품 회사였다. 그런데 화학공학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 와중에 할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병원이 불에 탔다.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한 데는 이런 사정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그는 물리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다. 또다시 대입시험을 치를 여력은 없어 주한미군이 주관하는 유학생 선발시험으로 눈을 돌렸다. 이런 경로를 밟아 스무 살 때인 1955년 1월에 마이애미대학 물리학과 편입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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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중순, 거뭇한 성벽이 이채롭다. 역시 제주다. 높은 온도의 용암이 급격히 식어 굳어진 현무암으로 쌓아서다. 현무암은 가볍다. 따라서 재료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높이보다 더 두껍게 성벽을 쌓았다. 쉬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궁여지책이다. 가공하지 않은 크고 작은 현무암을 적절하게 뒤섞고, 엇갈리기를 반복해 쌓았다.

안타깝게도 성곽은 부분만 남았다. 다섯 현인을 기리는 '오현단' 부근에 겨우 170여 미터다. 그래서 오현단은 여전히 성 안에 자리한다. 그 단을 지켜내려는 듯, 읍성을 이룬 성 돌이 꿋꿋하다. 현인의 정신을 받들 듯 작은 비석 다섯이 시립 했다. 서로 간 존중일까. 단과 성벽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다. 유배의 섬이다. 제주가 품은 정(情)으로 이어진 '괸당'의 본성이, 여기 단에도 오롯이 드러났다.


관리였거나 권력에 밀려 제주에 온 다섯 현인이다. 학문 뿐 아니라, 꺼지지 않는 정신의 불씨를 남겼다. 남은 성벽과 제단이, 각기 경계와 뜻으로 제주의 과거를 붙들어 미래를 말하고 있다.

복원된 제주목관아가 유별나다. 한양 권력은 제주를 늘 서얼처럼 취급했다. 왕명으로 파견된 목사가 한양의 왕처럼, 섬의 법을 대리했다. 한양의 시선은 한결같았다. 섬에 난리가 나 생지옥으로 변할망정, 그 불길이 육지로 번지는 것만 저어했다.

그런 차별과 멸시 속에서 제주 사람들은 침묵으로 자존을 지켜냈다. 육지로는 나갈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옛 탐라의 피가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제주목관아 건물들이 유난한 위용을 드러낸다. 육지의 그것들보다 더 크고 웅장하다.


이는 한양을 의식한 과시가 아니라 스스로 변방임을 선언하는, 조용하나 옹골찬 의지다. 화려한 단청과 기단의 격식이 곧 침묵하는 제주의 언어다. 조선의 질서 아래 세워진 건축물이지만, 그 바탕에는 '우리도 왕조다'는 자긍심이 단단히 깔려 있다.

산지천을 끼고 동쪽으로

성벽 터 아래로 물이 흐른다. 한라산 중산간에서 발원해 돌들을 적시며 읍성을 관통해 바다로 빠져나간다. 산지천이다. 한라가 흘려보낸 젖줄이다. 성 안 백성의 우물을 채웠고, 다시 성을 축축이 적셨다. 읍성의 물길이자, 뭍으로 나갈 수 없는 섬이 바깥 세상과 잇는 유일한 숨 구멍이었다.


한양이 섬 사람들 발은 묶었다지만, 물의 길까지 막지는 못했다. 물이 닿는 곳마다, 뭍을 그리워하는 제주의 마음이 조용히 함께했다. 한때 이 물은 제주읍성 밖에서 흘렀다. 오래도록 읍성에서 비켜나 있었다. 좁던 옛 성곽의 품이 산지천을 끌어안지 못해서다.

목사 이형상(李衡祥)이 물길을 품기 위해, 1702년 성벽을 다시 쌓았다. 읍성이 넓어져 산지천을 끌어 안았다. 물은 곧 길이요, 유사시 갇히게 되면 바로 생명이었다. 따라서 성 안은 물이 풍부할수록 좋았다. 이형상은 산지천을 끌어들여, 물을 얻었다. 동시에 동쪽 높다란 구릉에서 성안이 훤히 내려다 보이던 약점까지 보완해냈다.

그의 생각이 읍성을 더 넓고 두텁게 만들었다. 물은 성 안을 적셨고, 성벽은 멀리 바깥으로 돌아나갔다. 이제 성은 단순한 방어벽이 아니었다. 섬의 생명을 보듬고 지켜내는 둥지요, 울타리가 되었다. 물이 흐르고, 바깥 시선을 막고, 섬의 자존을 다시 세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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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느덧 5년입니다. 요즘처럼 차가운 바람이 매섭고 기온이 뚝 떨어질 때면, 사자 갈기 같은 흰 머리칼을 휘날리며 새하얀 잠바를 입고 새하얀 목도리를 두르셨던 선생님의 멋스런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제가 "선생님, 앙드레 김 스타일 같습니다"라고 농을 건네면, 멋쩍어하면서도 그 멋을 즐기시던 선생님의 호방한 미소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선생님은 평생을 길 위의 혁명가로 사셨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독재의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그 기개는 하늘을 찔렀고, 장준하 선생님의 아우를 자임하며 시대의 어둠을 온몸으로 뚫고 오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도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들의 맨 앞줄을 지키셨던 선생님.

"나는 민중의 벗이 아니라 민중 그 자체다"라고 온몸으로 웅변하시던 그 모습은 거리의 등불이자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자존심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호연지기와 배포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백두산 호랑이 같은 큰 어른이셨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선생님께서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다정한 스승이셨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여주교도소에 갇혀 있을 때 특별면회를 오셨던 날입니다. 헤어지는 복도 끝에서 제 손을 꼭 잡으시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말씀하셨지요. "곽감, 내가 자네를 여기서 빼내 주지 못해 미안해." 감옥에 온 사람에게 빼내 주지 못해 미안하다니요. 세상 천지에 그런 인사를 건네는 분은 선생님밖에 없으셨습니다. 저는 울컥 치솟는 눈물을 삼키면서도, 선생님의 그 엉뚱하고도 순수한 마음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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