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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사법화, 공교육 역사상 최악 상황...학폭 학생부 기록 재고를"

교육의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좋은교사운동 등 3개 교육단체가 "현재 학교의 사법화 문제가 공교육 역사상 최악의 상황"이라면서 "학교폭력(아래 학폭) 처분 결과 학교생활기록부(아래 학생부) 기록을 재고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교육계 한쪽에서 '교권 침해 처분 결과'에 대해서도 학생부 기재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제안이어서 눈길을 끈다.

"학교 사법화로 교육활동 실종되고 있어"

22일 오전 10시 30분, 교육 3단체는 서울 용산구 교육의봄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교육 혁신을 위해 6대 영역 25개 과제'를 내놨다. '교육공동체 회복과 교육 혁신'을 목표로 지난 6개월간 공동 해법을 찾은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이날 발표에서 눈길을 끈 것은 '무너진 교육 공동체 신뢰 회복' 영역이었다. 3단체는 "현재 학교와 교육의 사법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공교육의 역사상 최악의 상황"이라면서 "교육이란 만남을 통해서 성장과 변화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행위인데, 이런 교육활동이 학교(교육)의 사법화로 인해 실종되어 가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교사들은 상처를 입어 위축되고 학부모들 역시 아동학대 방지법 등으로 법적 장벽을 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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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사의 연구 과정에서 중대한 미스테리의 하나는 전봉준·김개남·손화중 등 우두머리와 흥선대원군과의 밀약설·묵계설·암묵설·내통설 등 이른바 '연계설'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접촉'은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대원군의 교사에 의해 거사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에 힘이 쏠린다.

1636년(인조 14) 남한산성에서 주화파와 주전파가 밤을 새워 가면서 죽기로 싸울 것이냐, 치욕을 겪더라도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로부터 258년이 지난 1894년 봄 전주부에서는 전봉준·김개남·손화중 등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이 비슷한 논쟁으로 날을 새웠다.

황현의 <오하기문>에는 세 사람의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전봉준은 "지금 시세(時勢)를 보건대 왜(倭)와 청(淸)이 전쟁중인데 어느 쪽이 이기든 반드시 군사를 우리들에게 돌릴 것이다. 우리들은 비록 무리는 많지만 오합지졸이어서 쉽게 무너진다. 이 무리로서는 끝내 뜻을 이룰 수 없다. 현재의 질서 아래 각 고을에 농민군 역량을 보존 하면서 시새의 변화를 지켜보자"는 신중론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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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공장화재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일차전지업체 아리셀 박순관 대표가 항소심에서 대폭 감형받았다.

수원고법 형사1부(신현일 고법판사)는 22일 박 대표 등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산업재해치사)·파견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 항소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앞서 1심은 박 대표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기소된 사건에서 내려진 최고 형량인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 아들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에게 징역 15년 및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7년에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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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갈등이 지금처럼 격화된 것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 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의해서다. 두 사람의 집권 기간이 겹치는 2013~2020년에 양국은 센카쿠열도(조어도) 문제와 대만해협 문제 등을 놓고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렇게 아베와 씨름했던 시진핑은 '여자 아베'가 지난해 10월 21일 총리로 선출돼 자신의 카운트파트가 되자 싫은 티를 노골적으로 내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대만해협 유사시에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공격적 발언(11.7)을 통해 '아베의 부활'을 시진핑에게 신고했다.

그간 중국과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며 한국과의 갈등을 줄이고 북한에 대화 제스처를 보내온 다카이치는 중국의 신경을 건드릴 만한 조치를 이달 21일에 또 내놓았다. 그가 야스쿠니신사 춘계 예대제(정례 대제사)에 맞춰 공물을 납부한 이날, 일본 내각은 무기 수출 목적을 구난·수송·경계·감시·기뢰제거로 제한하는 기존 방침을 폐지했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이 일을 전하면서 "살상 능력이 있는 무기의 수출이 전면적으로 해금된다"라고 평했다.

살상무기 수출 허용, 어떤 의미인가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가 총리 재임 중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는 점 때문에도 아베를 멋있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이처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중시하는 그가 이 신사의 최대 행사 중 하나인 춘계 예대제 때 공물만 보내고 참배는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언제나 겁먹고 물러난다'는 타코(TACO)처럼, 다카이치도 결정적 순간에 한 발 물러서다는 '다코'라는 비아냥이 나올 수도 있었던 4월 21일이었다. 이날 다카이치는 살상무기 수출 허용이라는 강경 카드를 꺼내 중국에 자극을 가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실린 21일 자 브리핑에 따르면, 이 조치에 대한 입장을 묻는 일본 특파원 질문에 대해 궈자쿤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이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갖고 있다"라며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범죄를 "하늘에 사무칠 죄행(滔天罪行)"으로 지칭한 뒤 "일본의 신형 군국주의 망동에 대해 결연히 맞서겠다"라고 발언했다. 이런 반응이 나오게 만들 정도로 이번 조치는 중국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노동자 강제징용을 통해 방위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일본은 패망 뒤에 그 생산품 재고분의 상당 부분을 한국전쟁 때 처리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휴전이 이뤄질 무렵에는 새로운 데서 활로를 모색했다.

세종연구소가 발행한 <국가전략> 2014년 제20권 제3호에 실린 김진기 부경대 교수의 논문 '일본의 무기수출정책 변화'는 "일본의 방위산업은 한국전쟁 특수가 축소되면서 무기 수출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라며 "1953년 태국으로의 탄약 수출을 시작으로 그 후 버마·타이완·브라질·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로 수출대상 지역을 넓혀갔으며, 1962년에는 최초로 미국으로도 수출을 하였다"라고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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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미가 많은 사람이다. 필사도 하고, 문구류를 좋아하고, 식물을 키우고, 건강관리와 사진에도 마음을 쏟는다. 그러다 보니 여러 오픈채팅방에 들어가게 된다. 어떤 방은 조용하고 어떤 방은 활발하다. 그런데 어떤 방에는 유난히 부지런한 운영진이 있다. 그들은 챌린지를 만들고, 인증 이벤트를 열고, 참여를 독려한다. 처음에는 그런 열의가 고맙다. 적막하던 공간에 온기가 돌고, 혼자 하던 일이 함께하는 일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부터다. 자유롭게 드나들던 공간에 조금씩 리듬이 생기고, 그 리듬은 어느 순간 암묵적인 규칙처럼 작동한다. 인증 사진이 올라오고, 수행 목록이 쌓이고, 성실하게 따라가는 사람들의 이름이 반복해서 눈에 들어오면, 나는 어느새 취미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취미 생활의 성실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런 순간마다 비슷한 질문 앞에 선다.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까지 자발적이고, 어디서부터 타인을 압박하는 규율이 되는가. 강요는 대개 노골적인 명령의 형태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하면 좋겠다는 말,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제안, 모두를 위한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더 부드럽게 스며든다. 그래서 더 거절하기 어렵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피로를 느낀다.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그 익숙한 감각을 다시 떠올렸다. 여느 팬덤이나 그렇듯 공연과 컴백의 시기에는 가장 열성적인 움직임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어떤 이들은 음원 플랫폼에서 곡을 반복 재생하고 다운로드하며 순위를 올리는 데 힘을 보탠다. 어떤 이들은 공연을 앞두고 소속사가 올린 응원법을 숙지하며, 어느 순간에 어떤 목소리로 함께 호흡할지를 미리 익힌다. 팬들은 단지 무대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무대의 일부가 되기 위해 준비한다. 나 또한 내 상황과 역량 안에서 음원을 듣고, 응원법을 살펴보며 그 일부가 된다.

나는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안다. 한 대상을 향한 애정이 이토록 정교한 실천으로 조직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경이롭다. 하지만 나는 그 아름다움을 오래 바라볼수록, 그 안에 섞여 있는 다른 감정도 함께 보게 된다. 처음에는 사랑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의무가 되는 장면, 자발적인 참여였던 것이 점차 성실함의 기준으로 바뀌는 장면 말이다. 문제는 그 행동들이 어느 순간 '진짜 팬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처럼 여겨질 때 생긴다.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빠지면 미안해지고, 충분히 하지 못하면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마음. 바로 그때 좋아함은 조용히 성실함의 시험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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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방위군 병사가 벌인 것으로 알려진 예수상 훼손 사건은 하나의 일탈로 넘기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상징은 빠르게 복구되고 가해자는 즉각 처벌되지만, 그보다 훨씬 큰 규모의 폭력과 파괴는 왜 반복되는가. 무엇은 문제로 인식되고, 무엇은 묵인되는가. 이 간극은 우연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특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끄는 현재의 정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정의와 전쟁이 일상화된 구조를 함께 목격하고 있다. 이 글은 하나의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아, 상징의 파괴 뒤에 숨겨진 권력의 논리, 전쟁을 정치로 활용하는 위험성, 그리고 그 속에서 점차 무너져가는 인간성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상징을 파괴하는 권력의 오만

이번 사건은 군 기강 해이로 축소될 수 없다. 한 병사가 망치로 예수상을 내려치고, 또 다른 병사가 이를 촬영했다는 사실은 이 행위가 개인의 충동을 넘어 집단적 분위기 속에서 가능해졌음을 추측하게 한다. 폭력은 혼자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묵인과 방관, 그리고 보이지 않는 동조 속에서 자라난다.

예수상은 신앙과 존엄을 상징한다. 그 상징을 파괴하는 행위는 특정 종교를 겨냥한 공격을 넘어, 타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폭력이다. 이러한 파괴는 물리적 훼손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을 대상화하고, 그 존엄을 가볍게 취급하는 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스라엘 군이 이 사건에 신속히 징계를 내린 점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왜 이 사건에는 즉각 대응했는가. 왜 공습으로 무너진 삶과 공동체에 대해서는 같은 속도의 책임이 따르지 않는가. 동상의 훼손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인간의 죽음과 고통에는 둔감한 이 태도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차이는 우연이 아니다. 권력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후순위에 두는지 보여주는 기준이다.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사건에는 빠르게 대응하고, 반복되는 구조적 폭력은 '일상'으로 처리한다. 이 선택은 정치적 계산이며 권력의 판단이다.

그 중심에는 베냐민 네타냐후가 있다. 그는 국제적 비난을 관리하는 데 능숙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지속되는 군사적 긴장과 폭력의 구조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구성원들은 '보이는 문제'만이 문제이며, 보이지 않는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는 왜곡된 기준을 내면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도덕적 감수성은 마비되고, 폭력은 쉽게 정당화된다. 이 사건은 종교적 균형에도 균열을 낸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레바논에서 특정 신앙의 상징을 파괴하는 행위는 공동체 간 신뢰를 흔든다. 이는 이미 긴장된 지역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던진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상징인가, 인간인가. 상징에는 민감하고 인간의 고통에는 둔감한 권력은 이미 본질을 잃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오만뿐이다.

전쟁을 정치로 삼는 지도자의 위험성

전쟁은 비극이다. 그러나 그 전쟁이 의도적으로 유지되고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 때, 비극은 구조가 된다. 베냐민 네타냐후의 정치에서 우리는 이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안보'를 중심으로 권력을 유지해왔고, 그 안보는 점점 더 공격적인 군사 전략과 결합되어 왔다.

이 안보는 불안을 해소하기보다 확대한다. 외부의 위협을 강조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며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를 피로하게 만들고 갈등을 구조화한다. 사람들은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평화는 점점 더 멀어진다.

레바논과의 휴전 과정에서도 공습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이 정치의 본질을 드러낸다. 휴전은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그것이 전술로 활용되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상대와 국제사회 모두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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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의 세계 지배는 생산력과 군사력, 달러 체제, 제도 설계 능력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떠받친 질서였다. 그러나 그 질서가 더는 예전 같은 효능을 내지 못하게 되자, 미국이 마지막에 움켜쥔 것은 새로운 세계 구상이 아니라 트럼피즘이라는 괴물이었다.

이 괴물은 하나의 얼굴로 나타나지 않았다. 입으로는 불개입을 말했고, 표정으로는 고립주의를 흉내 냈으며, 옷차림만 보면 반신자유주의의 탈을 쓴 듯했다. 그러나 실제 몸짓은 정반대였다.

손은 더 멀리 뻗어 남의 질서를 뒤흔들었고, 발은 더 거칠게 타국의 땅을 짓밟았으며, 목소리는 동맹을 설득하기보다 충성을 다그쳤다. 물러서겠다고 말하면서 더 난폭하게 들어왔고, 부담을 줄이겠다고 외치면서 더 위험한 방식으로 개입했으며, 낡은 세계화를 비판하면서도 결국은 더 노골적인 힘의 위계만 드러냈다.

그래서 트럼피즘은 하나의 노선이라기보다, 쇠퇴하는 패권이 자기 모순을 봉합하지 못한 채 밖으로 분출한 기형적 형상에 가깝다. 그것은 사상이라기보다 증상이고, 전략이라기보다 발작이다.

이번 전쟁은 그 증상의 가장 선명한 사례다. 미국은 이란을 때렸지만, 이란을 고립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란이라는 국가를 힘으로 약화시키는 데는 성과를 거두었을지 몰라도, 이란이라는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더 외롭고 더 취약한 위치로 몰아넣는 데는 실패했다.

결과는 미국이 구상한 질서가 아니라, 미국이 통제하지 못하는 반작용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권 탄압, 비민주적 통치, 핵 불투명성으로 비판해 온 이란을 향한 국제적 시선도, 전쟁이 시작되자 선제공격의 적법성, 주권 침해, 민간인 피해, 확전 위험 쪽으로 옮겨갔다.

공습 후 달라진 국제사회 반응

전쟁 전의 이란은 분명 국제사회의 비판 한가운데에 있었다. 유엔 총회는 2024년 말 이란 인권 결의를 80대 27, 기권 68로 채택했고, 유엔인권이사회는 2025년 4월 이란 관련 감시와 조사 메커니즘을 24대 8, 기권 15로 연장했다.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도 전쟁 하루 전인 2025년 6월 12일 이란의 핵 안전 조치 불이행을 19대 3, 기권 11로 판단했다. 유럽연합 역시 2025년 4월 기준으로 232명, 44개 기관에 인권 제재를 적용하고 있었다. 이 수치들은 전쟁 전 이란의 위치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란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제도화된 비판과 압박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공습이 시작되자 국제사회의 반응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2025년 6월 16일, 카타르 외교부가 공개한 공동성명에서 20개 아랍·이슬람권 국가는 6월 13일 이후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을 "단호히 거부하고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제법 위반,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 침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 훼손을 함께 거론했다.

다음 날인 6월 17일에는 걸프협력회의가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 회기에서 이스라엘의 이란 영토 공격을 규탄했다. 이어 6월 24일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을 주축으로 한 신흥 경제국 연합체)는 공식 공동성명에서 6월 13일 이후 이란 영토에 가해진 군사 공격이 "국제법과 유엔헌장 위반"이라고 못 박았다.

전쟁 전까지 이란을 문제 국가로 지목하던 외교 언어가 전쟁 후에는 공격 중지와 주권 침해 비판의 언어로 옮겨간 것이다. 이 변화는 비서방 국가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서방도 이란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공세적으로 비판하기보다, 우선 자제와 민간인 보호, 외교 복귀를 강조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여론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전쟁 개시일에 이란을 우호적으로 본 응답이 6%에 그쳤다. 그런데 같은 날,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영국이 어느 편도 들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50%였고,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19%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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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방,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운동 좀 해."

얼마 전부터 장모님이 나를 볼 때마다 하는 말이다. 장모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다. 얼굴이 핼쑥해 보인다, 허벅지가 너무 가늘어 보인다, 전체적으로 많이 야위었다는 식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 하게 된다. 체중계 숫자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무게는 그대로인데 남들 눈에는 내가 많이 수척해 보이는 걸까.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말이다. 나이가 들면 원래 조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보는 사람의 느낌이 다소 과한 것일 수도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지난 4월 초, 윗배 통증으로 며칠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우면 속이 쓰리고, 안쪽을 누가 움켜쥔 듯 묵직하게 아팠다. 똑바로 누워도 불편했고, 옆으로 돌아누워도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새벽녘이면 몇 번이나 잠에서 깼고, 손으로 명치 부근을 눌러보며 가만히 숨을 고르곤 했다.

약국 약으로 이틀 쯤 버텨봤지만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병원을 찾았고, 위염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은 뒤 5일치 약을 처방 받아 복용하면서 잠다운 잠을 잘 수 있었다. 통증이 조금 가라앉은 뒤에야 지난 2월에 했던 건강 검진 결과를 들여다봤다. 이메일로 받아두고도 차일피일 미뤄두었던 위내시경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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