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정체불명이라도 맛있다, 새학기 초간단 아침 메뉴

길었던 겨울방학이 끝났다. 아이는 학교로 갔고, 집안은 다시 일상의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새해는 1월에 시작되지만 방학과 연휴의 여파 때문일까. 진짜 한 해의 시작은 3월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다시 규칙적인 일상이 시작됐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이런 생활이 이어질 것이다.
학생은 학교로, 직장인은 직장으로 향하는 바쁜 아침. 분 단위로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이 부족하다. 아침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걸까. 눈을 뜨고 간단히 씻고 나면 아이가 일어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머리 스타일이 중요하다며 아침마다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바쁜 아침인데 온 가족이 줄줄이 샤워를 하니 화장실은 그야말로 '웨이팅 맛집'이 되어버렸다.
서양식 동양식도 아닌, 우리 집 아침밥

그렇게 다들 출근과 등교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나도 간단히 먹고 갈 아침을 준비한다. 요청 사항도 제법 많다. 전날 저녁에 먹고 남은 음식은 아침에 먹기엔 너무 무겁다며, 가볍고 산뜻한 음식을 원한다. 그래서 우리 집 아침 식탁은 서양식도 동양식도 아닌 어딘가 그 중간 쯤이다. 이도 저도 아닌 퓨전이라고 해야 할까. 그날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후다닥 만들어 내는 아침 식사다.
자주 등장하는 메뉴는 국수, 샐러드, 파스타, 달걀 요리, 빵, 샌드위치, 스프, 죽, 볶음밥, 시리얼 등 다양하다. 다행히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엄마라 부담스럽지 않고 즐겁게 만들 수 있다. 빵은 가끔 한 번에 많이 구워 냉동실에 얼려 두고, 파스타 면도 삶아 얼려 둔다. 흰 죽도 가끔 만들어 소분해 두면 큰 시간을 들이지 않고 금세 준비할 수 있다.
이번에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정체불명의 음식을 만들었다. 전날 장을 보면서 돈까스 용으로 사 둔 돼지고기 등심이 있었고, 한 단에 1500원에 팔길래 별생각 없이 집어 온 시금치도 있었다. 두 가지 재료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계 없는 돼지고기 등심이면 닭가슴살 대신 쓰면 괜찮겠는데?'
고기를 얇게 썰어 전분을 묻혀 팬에 볶으면 바삭하면서도 기름을 많이 쓰지 않아 아이가 튀김처럼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문득 시금치도 넣고 달걀도 넣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중식의 요리법에 양식이 합쳐진 국적 없는 짬뽕 같은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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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026 이정후·김혜성 활약도 부족... 일본의 '완전체' 앞에 무릎

한국이 C조 일본을 상대로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야구 대표팀은 7일 일본 도쿄의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일본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홈런 1방을 포함해 장단 9안타를 때려내고도 6-8로 역전패를 당했다.
앞서 열린 대만과 체코의 경기에서는 호주, 일본을 상대로 16이닝 무득점을 기록했던 대만이 장단 11안타를 터트리며 14-0, 7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며 한국전을 앞두고 경기력을 끌어 올렸다.
한국은 이정후가 선제 타점을 포함해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좋은 타격감을 뽐냈고 김혜성이 4회 동점 투런포를 터트리며 메이저리거의 위용을 뽐냈지만 일본에게 홈런 4개와 6개의 사사구를 허용한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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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026 인천공항서 시작된 새로운 세상, 내가 한국을 좋아하는 7가지 이유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서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동안 내가 성장했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시작점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상상했다. 그날 나는 세상은 넓고 꿈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나는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강남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수학했다. 강남대학교는 나에게 새로운 환경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지난 다섯 달 동안 한국에서 경험한 잊을 수 없는 순간들과 나를 진심으로 놀라게 했던 장면들, 그리고 내가 한국을 좋아하게 된 일곱 가지 이유를 여기에 이야기하고자 한다.
안전과 질서 문화
한국에서 유학하며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안전과 질서, 배려의 문화였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개인 소지의 물건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그대로 남아 있었고, 거리 곳곳에 설치된 CCTV와 낮은 범죄 율 덕분에 밤에도 낮처럼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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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강남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수학했다. 강남대학교는 나에게 새로운 환경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지난 다섯 달 동안 한국에서 경험한 잊을 수 없는 순간들과 나를 진심으로 놀라게 했던 장면들, 그리고 내가 한국을 좋아하게 된 일곱 가지 이유를 여기에 이야기하고자 한다.
안전과 질서 문화
한국에서 유학하며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안전과 질서, 배려의 문화였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개인 소지의 물건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그대로 남아 있었고, 거리 곳곳에 설치된 CCTV와 낮은 범죄 율 덕분에 밤에도 낮처럼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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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026 운동회, 수학여행, 봄소풍... 학교 행사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찬 바람이 한풀 꺾이면 우리는 봄을 떠올립니다. 봄은 시작입니다. 가정도, 회사도 새해가 되면 새 출발을 다짐하지만, 가장 선명한 시작은 역시 학교에서 이루어집니다. 교문을 들어서는 새내기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긴장이 함께 묻어 있습니다. 새로운 교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시간. 봄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이 어떠냐고 물으면 대답은 의외로 건조합니다. 입학의 설렘은 잠시,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지루함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반복되는 수업과 시험, 수행평가와 입시 준비 속에서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기보다 더 버텨야 할 공간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40여 년 전을 떠올려 보면 학교의 풍경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학기가 조금 느슨해질 즈음이면 봄소풍이 있었습니다. 가을이면 운동회가 열려 온 교정이 들썩였습니다. 수학여행은 학창 시절의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스승의 날, 어버이날, 식목일 같은 기념일마다 교내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운동장은 오히려 더 시끄러웠습니다. 두세 팀이 한 골대를 나눠 축구하고, 한쪽에서는 고무줄놀이하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학교는 수업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왜 달라졌을까요. 학생 수는 눈에 띄게 줄었고, 안전에 대한 기준은 훨씬 엄격해졌습니다. 학교는 작은 사고에도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학사 일정은 촘촘해졌고, 기록과 평가 중심의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생 모두를 바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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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이 어떠냐고 물으면 대답은 의외로 건조합니다. 입학의 설렘은 잠시,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지루함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반복되는 수업과 시험, 수행평가와 입시 준비 속에서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기보다 더 버텨야 할 공간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40여 년 전을 떠올려 보면 학교의 풍경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학기가 조금 느슨해질 즈음이면 봄소풍이 있었습니다. 가을이면 운동회가 열려 온 교정이 들썩였습니다. 수학여행은 학창 시절의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스승의 날, 어버이날, 식목일 같은 기념일마다 교내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운동장은 오히려 더 시끄러웠습니다. 두세 팀이 한 골대를 나눠 축구하고, 한쪽에서는 고무줄놀이하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학교는 수업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왜 달라졌을까요. 학생 수는 눈에 띄게 줄었고, 안전에 대한 기준은 훨씬 엄격해졌습니다. 학교는 작은 사고에도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학사 일정은 촘촘해졌고, 기록과 평가 중심의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생 모두를 바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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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026 오타니 쇼헤이가 보여준 '최고 슈퍼스타'의 품격

적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본 야구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압도적인 실력만큼이나 품격 있는 태도로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7일(현지시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일본과 접전을 벌인 끝에 6-8으로 석패했다.
이날 1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한 오타니는 2타수 2안타(1홈런) 2사사구로 100% 출루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선보이며 일본의 역전승에 힘을 보탰다. 오타니가 기록한 4번의 출루 중 3번이 모두 일본의 득점으로 이어질 만큼 경기 흐름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00% 출루 맹활약... 경기 흐름 바꾼 오타니
오타니는 팀이 0-3으로 밀리고 있는 1회 말 선두타자로 나서 한국 선발 고영표를 상대로 볼넷을 골라내며 일본 공격의 물꼬를 텄다. 이후 스즈키 세이야의 투런포가 터지면서 오타니도 홈을 밟았다. 1회 초 한국에 먼저 3점을 내주며 고전했던 일본으로서는 오타니의 출루에서 시작된 빠른 만회 득점으로 추격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었다.
이어 오타니는 3회 말 두 번째 타석에서는 다시 고영표의 커브를 정확하게 받아쳐 우중간을 가르는 솔로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일본은 3회에만 오타니의 홈런에 이어 스즈키의 연타석 홈런, 요시다 마사타카의 백투백 홈런까지 터지며 1이닝 3방의 대포를 폭발시키고 5-3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한국이 김혜성의 동점 투런포로 다시 5-5로 균형을 맞춘 상황에서, 세 번째 타석에서 들어선 오타니는 한국의 구원투수 손주영을 풀카운트 승부 끝에 다시 우전안타를 뽑아냈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어떻게든 볼을 컨택해내는 오타니의 집중력은, 그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자유자재로 타격 패턴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오타니의 네 번째 타석은 7회 말 2사 3루에 찾아왔다. 실점 위기에서 한국 벤치는 오타니와의 정면승부를 피하여 고의사구를 선택했다. 하지만 구원투수 김영규가 후속 타자들에게 2연속 볼넷을 내주며 밀어내기 점수를 허용했고, 계속된 만루 위기에서 요시다의 2타점 적시타까지 내줬다. 결국 경기 내내 오타니를 한번도 잡아내지 못한 것이 너무 큰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현존 최고 슈퍼스타, 경력으로 증명된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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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026 목각 인형 명인은 왜 '큰 코'를 좋아하는가

하얀 먼지가 눈처럼 내려앉은 작업실, 나무를 깎는 공구 소리가 쉼 없이 공간을 채운다. 마스크 위로 눈만 내민 채 한 남자가 묵묵히 나무와 씨름한다. 칼끝이 스치는 자리마다 거친 나뭇결 속에서 새로운 얼굴이 드러난다. 유난히 코가 큰 목각 인형들. 작업실은 마치 '코 크기 자랑'이라도 하듯 큼지막한 코를 가진 인형들로 가득하다.
50여 년 동안 그는 같은 자리에서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문지르며 사람의 얼굴을 빚어왔다. 거친 나뭇결에서 표정을 찾아내고, 큼직한 코에 웃음과 해학 그리고 자신의 시간을 담아 넣는다. 손끝에 켜켜이 쌓인 세월은 그대로 인형의 얼굴이 된다. 봄비가 내리던 3월 3일, 나무 향 가득한 작업실에서 목각 인형 장인을 만났다.
코에서 시작되는 생명

작업대 위에는 마치 해부된 신체처럼 조각난 나무 형체들이 놓여 있다. 아직 얼굴이 되지 못한 나무토막, 막 다듬기 시작한 다리, 형태를 갖춰가는 손. 그는 얼굴을 먼저 만들고 이어 다리와 손을 깎아낸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부분은 '코'다. 칼끝이 오가는 만큼 코에는 표정과 성격이 깃든단다.
작업실 안은 드릴 소리와 나무 가루로 가득하다. 기계음에 몰두한 그는 방문객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다. 한참 뒤 기계가 멈추고 돌아선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코가 참 잘 생겼습니다."
권오복(67세) 작가의 첫 인사다. 그는 얼굴에서 코를 제일 먼저 본다. 그의 세계에서 코는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얼굴의 중심이자 인형의 생명이며, 어쩌면 자신을 닮은 또 하나의 자화상이다.
긴 코가 빚어낸 또 하나의 세계

강릉 노암동의 막국숫집 겸 전시장에는 나무의 은은한 향이 감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긴 코를 지닌 목각 인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얼굴과 표정은 모두 다르지만,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드는 것은 언제나 도드라진 코다.
공간을 가득 채운 인형들은 수줍게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당당히 서서 코를 내세우기도 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건네기도 한다. 서로 다른 몸짓과 분위기를 지녔지만 '코'라는 공통된 특징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벽과 바닥, 스탠드 위에 자리한 형상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은 채 조용히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나뭇결을 살린 작품들은 앉거나 서 있는 자세도, 코의 각도도, 표정도 모두 다르다.
작가는 "손 가는 대로, 나무 생긴 대로 만든다"라고 말한다. 억지로 형태를 끼워 맞추기보다 나무가 지닌 결을 따르다 보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피노키오가 태어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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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026 이 작은 팝업식 플래시로 담아낸 을지로의 귀여움
2월 거의 마지막날 을지로 망우삼림에 벨에어 6×12를 맡겨두고 나오던 순간, 마음 한켠이 가벼워졌다. 가장 거대한 판형을 수리대에 올려두고 돌아서는 길. 압도적인 파노라마를 잠시 내려놓은 대신, 주머니 속 작은 금속의 감촉이 또렷해졌다. 로모그래피 Tiger CN200을 머금은 Fujica 350 Flash.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을 교차하며 즐기는 여행은 묘한 해방감을 준다. 6×12가 공간을 압도하며 풍경의 숨결을 길게 펼쳐낸다면, 110 규격의 작은 카트리지 필름은 시간을 아주 밀도 있게 압축한다. 그날 나에게 주어진 것은 거대한 장면이 아니라 단 한 시간의 여유였다. 24번의 셔터,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프레임. 한 시간의 산책으론 충분한 분량이다.
Fujica 350 Flash는 요란하지 않다. Fujinon 렌즈와 셀레늄 노출계 기반의 자동 노출, 그리고 기계식 셔터. 배터리 없이도 빛이 닿는 순간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셀레늄 노출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지기 마련이지만, 내 손안의 개체는 여전히 성실하게 바늘을 움직인다.
이 카메라는 사용자를 시험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담백하게 묻는다. "빛은 충분한가?" 35mm 필름을 반으로 쪼개 쓰는 하프프레임 카메라들이 세로 프레임을 강요하는 것과 달리, 110 필름을 쓰는 이 녀석은 태생부터 가로로 길쭉한 시선을 가졌다. 작지만 당당한 가로 프레임. 나는 오히려 이 작은 창으로 거리의 단면을 수평하게 쌓아 올리는 감각이 즐겁다.
한 시간의 을지로 산책
망우삼림을 나서자 익숙한 계단이 보였다. 아래로 내려가는 사선의 벽, 열려 있는 유리문, 그리고 분주히 지나가는 누군가의 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발끝의 방향과 보폭의 속도가 그 사람의 하루를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셀레늄이 빛을 읽고 기계가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려 셔터를 누른다. 찰칵.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소리. 이 카메라는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그저 지나가는 행인과 같은 속도로 걷고, 같은 리듬으로 숨 쉬며 을지로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골목 깊숙이 들어서자 구수하고 달콤한 간장 냄새가 흘러왔다. 오래된 오뎅집이다. 이미 순대국밥에 소주 한 잔을 걸친 뒤였지만, 후각은 무심하게 또 다른 욕망을 부추긴다.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빨간 플라스틱 의자, 바랜 간판, 손때 묻은 냉장고. 로모 타이거 CN200 필름은 이 풍경을 과장 없이 따뜻하게 받아낸다. 빛이 부족한 골목이라 플래시를 켰다. 펑, 하는 섬광과 함께 빨간 의자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피어오른다. 필름은 솔직하다. 빛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닿으면 닿는 대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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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jica 350 Flash는 요란하지 않다. Fujinon 렌즈와 셀레늄 노출계 기반의 자동 노출, 그리고 기계식 셔터. 배터리 없이도 빛이 닿는 순간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셀레늄 노출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지기 마련이지만, 내 손안의 개체는 여전히 성실하게 바늘을 움직인다.
이 카메라는 사용자를 시험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담백하게 묻는다. "빛은 충분한가?" 35mm 필름을 반으로 쪼개 쓰는 하프프레임 카메라들이 세로 프레임을 강요하는 것과 달리, 110 필름을 쓰는 이 녀석은 태생부터 가로로 길쭉한 시선을 가졌다. 작지만 당당한 가로 프레임. 나는 오히려 이 작은 창으로 거리의 단면을 수평하게 쌓아 올리는 감각이 즐겁다.
한 시간의 을지로 산책
망우삼림을 나서자 익숙한 계단이 보였다. 아래로 내려가는 사선의 벽, 열려 있는 유리문, 그리고 분주히 지나가는 누군가의 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발끝의 방향과 보폭의 속도가 그 사람의 하루를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셀레늄이 빛을 읽고 기계가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려 셔터를 누른다. 찰칵.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소리. 이 카메라는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그저 지나가는 행인과 같은 속도로 걷고, 같은 리듬으로 숨 쉬며 을지로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골목 깊숙이 들어서자 구수하고 달콤한 간장 냄새가 흘러왔다. 오래된 오뎅집이다. 이미 순대국밥에 소주 한 잔을 걸친 뒤였지만, 후각은 무심하게 또 다른 욕망을 부추긴다.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빨간 플라스틱 의자, 바랜 간판, 손때 묻은 냉장고. 로모 타이거 CN200 필름은 이 풍경을 과장 없이 따뜻하게 받아낸다. 빛이 부족한 골목이라 플래시를 켰다. 펑, 하는 섬광과 함께 빨간 의자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피어오른다. 필름은 솔직하다. 빛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닿으면 닿는 대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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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026 서울 도심 한복판에, 아픔으로 이식된 길이 있습니다
인왕산을 타고 온 성벽이, 여기서 끊겨 버렸다. 산을 내려 온 성벽의 관성으로 경교장에 든다. 하마터면 잊고 지날 뻔했다. 돈의문 터 아래이니, 분명 성 밖이다. 금광으로 거부가 된 친일파가, 치부를 가리고 죽음을 모면하려 백범 김구에게 거처로 내주었을까.
예스러운 파사드(Fasad, 정면)의 집이 번다한 병원에 갇혀 무척 퀭한 표정이다. 백범을 바라며 들끓었던 그 많던 애국청년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2층 유리창, 총탄이 뚫은 구멍만 선연하다.
돈의문 터가 마냥 허전하다. 문이 없어서가 아니다. 억지로 사라진 이유가 떠올라서다. 성곽이 헐린 도성이다. 방어를 포기했다기 보다, 다른 힘에 밀려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 자리다. 이식된 근대는 그처럼 태풍보다 드셌다.
문은 자리를 고집할 수 없었고, 침탈의 파고는 빈자리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낯선 힘은 언제나 가장 느슨한 곳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법이다. 경교장도 그중 하나다. 길 건너 정동길에 들면 느슨한 틈을 파고든 힘의 흔적이 지천이다. 공간에는 종교와 학교, 병원을 앞세우며 밀려든 근대화가, 경교장 파사드 마냥 곳곳에 박혀있다.
정동은 헐린 성벽의 흔적조차 더듬기 어려운 공간이다. 사라진 성벽이 섬처럼 고적하다. 갇힌 담장 안, 근대화라는 드센 파고가 이젠 고요로 머문다. 정적이 오히려 재빠른 현재에 맞서 저항하는 듯하다. 경운궁과 외국 공관들, 학교와 남은 교회. 시대는 지나갔어도, 공간은 아직도 긴장된 자세를 풀지 못했다.
인의예지 중 서대문은 의(義)다. 경복궁 영추문이 가을이듯, 돈의문도 그렇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양도성을 돌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가을에서 여름 숭례문을 향해 걷는다. 계절을 거스를 재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에도 계절을 붙인 지혜가 새삼스럽다. 그러면서 문득 '그대는 지금 생의 어느 계절을 걷고 있는가?'라며 묻는다.
성벽이 사라진 자리
새문안로에선 도무지 성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정동길로 접어들면 그러나 걷기엔 즐겁다. 근대 건축물이나 당시 이야기가 구석구석 서려 있어서다. 그랬어도 성벽 대신 온통 가두고 막은 담장 일색이라니.
정동길 초입, 연이은 건물군 뒤편의 한성중화기독교회 자리로 성곽이 지났다. 이어진 창덕여중 뒤쪽 담장에 희미하게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교 담장 너머의 운동장이 옛 프랑스 공사관 자리다. 예스러운 공사관이 사라진 대신, 충정로에 제비처럼 유려하고 날렵한 멋진 대사관이 서 있다.
오로지 가톨릭을 위해 조선과 수교한 그들의 열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처럼 당시 프랑스는 외교나 이익보다, 가톨릭이 우선이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제국이 아니었단 말인가. 모호하다. 성벽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그 무엇도 아닌, 오래된 사진 속에 아름다운 공사관의 기억뿐이다.
성벽이 없다는 건 침입을 용인했다기보다, 작은 몸부림으로라도 맞섰다고 읽고 싶다. 조선은, 도성 중심이 아닌 이 좁은 서쪽 공간에서 가장 먼저 제국을 '맞아야 하는' 홍역을 치렀다. 방어선이 사라진 자리로 조약문서와 외교문서가 밀고 들어왔다. 성 돌이 사라진 자리를 붉은 도장이 찍힌 종이가 대신 채웠다.
등나무 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성곽은 분명 그 경계로 지났다. 이화외고와 이화여고 사이다. 들어가 보기 어려운 학교 안 길이 평온해 보여, 여기 학생들만큼이나 어여뻐 보인다. 이화여고 교정엔 유관순의 이름 또한 뚜렷하다. 기념관은 물론 재학 당시 손수 빨래했다는 소담한 우물터도 남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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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러운 파사드(Fasad, 정면)의 집이 번다한 병원에 갇혀 무척 퀭한 표정이다. 백범을 바라며 들끓었던 그 많던 애국청년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2층 유리창, 총탄이 뚫은 구멍만 선연하다.
돈의문 터가 마냥 허전하다. 문이 없어서가 아니다. 억지로 사라진 이유가 떠올라서다. 성곽이 헐린 도성이다. 방어를 포기했다기 보다, 다른 힘에 밀려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 자리다. 이식된 근대는 그처럼 태풍보다 드셌다.
문은 자리를 고집할 수 없었고, 침탈의 파고는 빈자리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낯선 힘은 언제나 가장 느슨한 곳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법이다. 경교장도 그중 하나다. 길 건너 정동길에 들면 느슨한 틈을 파고든 힘의 흔적이 지천이다. 공간에는 종교와 학교, 병원을 앞세우며 밀려든 근대화가, 경교장 파사드 마냥 곳곳에 박혀있다.

정동은 헐린 성벽의 흔적조차 더듬기 어려운 공간이다. 사라진 성벽이 섬처럼 고적하다. 갇힌 담장 안, 근대화라는 드센 파고가 이젠 고요로 머문다. 정적이 오히려 재빠른 현재에 맞서 저항하는 듯하다. 경운궁과 외국 공관들, 학교와 남은 교회. 시대는 지나갔어도, 공간은 아직도 긴장된 자세를 풀지 못했다.
인의예지 중 서대문은 의(義)다. 경복궁 영추문이 가을이듯, 돈의문도 그렇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양도성을 돌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가을에서 여름 숭례문을 향해 걷는다. 계절을 거스를 재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에도 계절을 붙인 지혜가 새삼스럽다. 그러면서 문득 '그대는 지금 생의 어느 계절을 걷고 있는가?'라며 묻는다.
성벽이 사라진 자리
새문안로에선 도무지 성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정동길로 접어들면 그러나 걷기엔 즐겁다. 근대 건축물이나 당시 이야기가 구석구석 서려 있어서다. 그랬어도 성벽 대신 온통 가두고 막은 담장 일색이라니.

정동길 초입, 연이은 건물군 뒤편의 한성중화기독교회 자리로 성곽이 지났다. 이어진 창덕여중 뒤쪽 담장에 희미하게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교 담장 너머의 운동장이 옛 프랑스 공사관 자리다. 예스러운 공사관이 사라진 대신, 충정로에 제비처럼 유려하고 날렵한 멋진 대사관이 서 있다.
오로지 가톨릭을 위해 조선과 수교한 그들의 열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처럼 당시 프랑스는 외교나 이익보다, 가톨릭이 우선이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제국이 아니었단 말인가. 모호하다. 성벽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그 무엇도 아닌, 오래된 사진 속에 아름다운 공사관의 기억뿐이다.
성벽이 없다는 건 침입을 용인했다기보다, 작은 몸부림으로라도 맞섰다고 읽고 싶다. 조선은, 도성 중심이 아닌 이 좁은 서쪽 공간에서 가장 먼저 제국을 '맞아야 하는' 홍역을 치렀다. 방어선이 사라진 자리로 조약문서와 외교문서가 밀고 들어왔다. 성 돌이 사라진 자리를 붉은 도장이 찍힌 종이가 대신 채웠다.
등나무 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성곽은 분명 그 경계로 지났다. 이화외고와 이화여고 사이다. 들어가 보기 어려운 학교 안 길이 평온해 보여, 여기 학생들만큼이나 어여뻐 보인다. 이화여고 교정엔 유관순의 이름 또한 뚜렷하다. 기념관은 물론 재학 당시 손수 빨래했다는 소담한 우물터도 남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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