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강민정 "현장 아는 교육감, 실패해도 두렵지 않은 학교 만들 것"

지난 6일 강민정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교육감 출마를 선언했다. 평교사 출신인 강 전 의원은 학교를 퇴직한 뒤 교육 시민단체 활동을 했고, 국회의원 활동 동안 4년 내내 교육위를 맡아 교육 현안을 다뤘다.

강 전 의원은 출마 선언에서 "서울형 교육 평등 지표로 교육 격차 없는 서울교육을 만들겠다"라며, "통역이 필요한 교육감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지난 20일 서울 프레스센터 내 커피숍에서 강 전 의원을 만났다. 다음은 강 전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지난 6일 서울 교육감 선거 출마선언을 하셨습니다. 어땠나요?
"출마 선언을 실외에서 했잖아요. 겨울이니까 걱정했는데 한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온 거예요. 서울교육과 교육감 선거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단 생각에 날씨는 추웠지만 따뜻한 출마 선언을 했어요."

- 21대 총선 출마하셨지만, 그땐 비례대표였죠. 그래서 이번 선거는 느낌이 다르지 않나요?
"많이 다르죠. 비례대표는 선거 운동 하지만 사실 정당의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 운동이잖아요. 그런데 이번 선거는 나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인 점에서 비례대표 선거와 다른 것 같아요."

"34년 동안 교육 현장에 있었다"

- 서울 교육감 선거 출마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2024년 10월 조희연 교육감 대법원 판결로 갑자기 보궐 선거를 하게 됐어요. 선거 준비와 운동 기간이 무척 짧았어요. 후보에 대한 검증이 꼭 필요한데 지난 보궐 선거에서는 그런 걸 차분하게 할 여건도 안 됐고, 보수 쪽에서 조전혁 후보가 나오게 되면서 진보 교육의 진지를 지키는 게 절박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진보 단일 후보로 뽑힌 정근식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저도 열심히 유세했거든요. 그런데 한 1년 지나고 보니까 서울교육 리더십에 대해 여러 문제를 느끼게 되었죠.

우리나라 교육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상태고 단순한 혁신 이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리더십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 했어요. 그런데, 정근식 교육감님 같은 경우 지난 1년 동안 개혁 의지도 잘 안 보이고, 문제의식도 별로 없는 듯하고, 무엇보다 교육 현장과 교육 문제의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과 행정을 하신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한 마디로 교육 현장 경험도, 교육철학도, 교육개혁 의지도 없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교사 정치 기본권 보장이 최근에 교육계 커다란 현안이었잖아요. 근데 그 문제에 대해 상당히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든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민전 의원이 교육감 직선제 없애도 되지 않냐고 질문했을 때 '국회의원님들이 결정해 주시면 우리는 따르는 선수입니다'라고 답변하는 걸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죠. 한 마디로 개혁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교육 자치 수장으로서 갖춰야 될 태도나 철학 이런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대로 앞으로 4년 더 가면 안 되겠구나 싶었죠."

- 직접 교육감이 되겠다고 나온 거잖아요. 왜일까요?
"일단 저는 34~35년 동안 계속 교육 현장에 있었잖아요. 어디에 있든 모두 교육과 관련된 그 중심에 항상 있었어요. 또 우리나라 78년 국회 역사에서 교사 출신 국회의원이 거의 없었어요. 뒤집어 얘기하면 교사 출신들이 정치적 경험이나 훈련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교육 현장의 맥락을 잘 알고, 일관된 교육철학 가지고 30년 이상 살아온 경험과 정치 세계에서 단련된 저의 특별한 조건이 우리나라 교육 문제 해결 위해 개인 차원을 넘어 뭔가 사회적 기여에 의미 있게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 정치인 출신이 교육감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죠.
"그렇게 볼 수도 있죠. 근데 전 사실 정치를 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간 건 아니었어요. 국회에 들어간 가장 큰 이유도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그래서 다른 국회의원들과 달리 4년 내내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일반적인 국회의원하고 다른 정치 활동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정치인 정체성보다 정치를 경험한 교육 현장 출신 혹은 평교사 출신 교육감 후보라는 정체성이 더 정확한 게 아닌가 싶어요."

- 출마 선언할 때 "서울형 교육 평등 지표로 교육격차 없는 서울교육을 만들겠다"며 "통역이 필요한 교육감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그동안 교사 출신 교육감들이 있었지만, 서울은 다 교수 출신이었어요. 요즘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나 정부 업무 보고를 생중계하는데, 그럴 때 사람들이 기초 자치단체장부터 광역 단체 단체장에 국회의원도 한 대통령이 구체적인 현장경험이 있기 때문에 관료들이 보고할 때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얘기하지 않는 것까지도 파악해서 찾아내고 지시하는 걸 보면서 효능감을 많이 느끼고 있잖아요. 새로운 리더형을 보고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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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부처님이 '가시굴 산'에서 정사(精舍)로 돌아오시다 길에 떨어져 있는 묵은 종이를 보시고, 비구를 시켜 그것을 줍게 하시고, 그것은 어떤 종이냐고 물으셨다.

비구는 아뢰었다. "이것은 향을 쌌던 종이입니다. 향기가 아직 남아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다시 나아가시다가 다시 길에 떨어져 있는 새끼를 보시고 그것을 줍게 하여 그것은 어떤 새끼냐? 물으셨다. 제자는 다시 여쭈었다. "이것은 생선을 꿰었던 것입니다. 비린내가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에 말씀하였다. "사람은 원래 깨끗한 것이지만, 모두 인연을 따라 죄와 복을 부르는 것이다. 저 종이는 향을 가까이 해서 향기가 나고, 저 새끼는 생선을 꿰어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은 다 조금씩 물들어 그것을 익히지마는 스스로 그렇게 되는 줄을 모를 뿐이다."(<법구경>, '쌍서품')

사람은 누구나 사람과 인연을 맺고 산다. 선연도 있고 악연도 있다. 진정한 만남이 있고 허위도 있다. 우리 현대사의 우뚝한 인물 함석헌은 1947년 7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를 지었다. 이 시문은 서울 대학로의 시비에 새겨져 있다.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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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해양경찰서는 24일 오후 3시 40분께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해수욕장 앞 갯바위에 고립된 외국인 1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태안해경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40분께 파도리해수욕장 앞 갯바위에 고립된 사람이 있다고 인근에 있던 어민이 태안해경 모항파출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신고를 접수한 태안해경은 즉시 모항파출소 연안구조정, 구조대를 급파했다.

구조대는 오후 4시 22분, 오후 4시 27분께 현장에 도착, 동력 서프보드를 이용해 오후 4시 38분께 고립자 1명을 안전하게 구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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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베트남 출장 중 건강 악화로 위독 상태에 빠진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치료 중인 현지 병원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속속 도착, 병세를 살펴보며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현지에 급파한 조정식 정무특별보좌관은 24일 오후(현지시간) 이 수석부의장이 입원한 호찌민 시내 떰아인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긴장한 표정의 조 특보는 특별한 발언 없이 곧바로 이 수석부의장이 입원 중인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조 특보와 별도로 같은 당의 김태년·이해식·이재정·최민희 의원도 이날 오전 병원에 도착, 중환자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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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광주·전남 교육행정통합을 둘러싸고 간담회와 토론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외형만 놓고 보면 '소통'의 장이 확대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숙의의 과정이라기보다 형식만 갖춘 행사에 가깝다.

특히 1월 23일 광주광역시교육청 본청 주관으로 열린 대토론회는 질문자가 사전에 내정된 채 진행되었고, 시민의 다양한 문제 제기와 대안을 담아내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만들어내는 절차에 머물렀다. 공론화를 가장한 이러한 방식은 교육행정통합 논의 전반에 대한 불신만 키우고 있다.

행정통합 공론화의 핵심은 '효율'이나 '속도'가 아니다. 예산과 권한을 누구를 위해, 어떤 원칙 아래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숙의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 과정에서는 통합 이후 교육자치가 어떻게 보장될 것인지, 교육 불평등을 완화할 실질적 장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현재 준비 중이라고 언론 보도되는 광주·전남 교육행정통합 특별법안(아래 특별법안) 어디에도 이에 대한 명확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공청회와 토론회에서는 원론적 설명만 반복될 뿐, 이미 설정된 시나리오를 점검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충분한 정보 제공, 다양한 대안 제시, 시민 의견에 대한 책임 있는 피드백이라는 숙의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는 실종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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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숨을 고르고 싶었습니다. 1월 9일, 통영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차를 세우고 원문공원으로 들어섰습니다. 어디를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 멈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공원은 통영 시내로 오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자리이지만, 한번 발을 들이면 걸음이 느려집니다. 이곳은 늘 목적지가 아니라 일상 속 쉼표입니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낮추고, 호국 충혼의 넋을 기리는 자리. 겨울의 공기는 차분했고 햇빛은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도심의 입구에서 만나는 기억


차를 세운 자리에서 바라본 언덕 위는 고요했습니다. 해병대 상륙작전을 기리는 전적비는 계절이 바뀌어도 같은 자세로 서 있었고, 그 아래에 새겨진 사람들의 형상은 여전히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장면은 끝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지난해 유월, 호국보훈의 달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공기가 달랐습니다. 초여름의 빛은 또렷했고 녹음은 무거웠습니다. 그때는 기억해야 할 달이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겨울의 원문공원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기억하라는 말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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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 자신이 추종하던 스타나 한 시대를 상징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 개인의 감정이나 삶이 크게 동요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의 비극적인 선택을 뒤따랐던 당시의 시대적 증후군에서 나온 말이다.

나에게도 그런 인물들이 있었다. 영원한 마왕 신해철, 그가 영면했을 때, 난 침묵 속에 밤새 홀로 술을 기울였다. 리영희 선생, 신영복 선생, 정운영 선생처럼 젊은 시절의 정신적 스승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헛헛한 상실감에 빠지곤 했다.

얼마 전, 안성기 배우가 69년의 연기 인생을 마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뉴스 속 영정 사진에 담긴 그의 얼굴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순간 가슴 한쪽이 텅 빈 듯 허전함이 밀려왔다. 그의 열렬한 팬도 아니고 그의 영화를 특별히 챙겨보는 편도 아니었는데, 왜 헛헛하고 먹먹한 감정이 든 것일까?

잠시 상념에 잠긴 채 그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그러자 툭 <고래사냥> 속 히피가 튀어나왔다. 오래된 영화라 내용도 역할도 기억나지 않지만, 벙거지 모자에 추레한 옷을 입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안성기가 잔상처럼 그려졌다.

모르겠다. 왜 하필 <고래사냥>이었는지. 철들기 전이라 극장이 아닌, 주말의 명화 같은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봤을 텐데. 아마 자유로운 그의 연기가 어린 나에게도 무척 인상적이었나 보다.

안성기라는 배우를 나의 머릿속에 각인시킨 영화는 <투캅스>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 부패한 경찰을 그렇게 능글맞게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안성기 밖에 없다. 박중훈 배우와 보여준 최고의 브로맨스도 그였기에 가능했으리라.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안성기의 캐릭터 중 가장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준 영화였다. 인자한 미소로 커피 향을 전하던 부드러운 남자가 서늘한 눈빛을 가진 킬러가 되어 등장했을 때, 그 낯선 공포가 안겨준 전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바바리코트에 선글라스를 쓴 안성기가 내뿜는 차가운 눈빛은 가히 한국 영화 최고의 장면이었다. 투캅스 동료 박중훈 배우와 적이 되어 빗속을 나뒹구는 엔딩 신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사진처럼 뚜렷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고래사냥>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 밖에 다른 영화를 본 적이 있나? 그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난 꽤 많은 영화를 통해 안성기란 배우와 숨 쉬고 있었다.

<외인구단> <남부군> <그대 안의 블루> <하얀 전쟁> <태백산맥> <영원한 제국> <퇴마록> <취화선> <실미도> <아라한 장풍 대작전> <라디오 스타> <화려한 휴가> <부러진 화살> <한산>...

'천의 얼굴이라는 표현이 진짜 안성기를 두고 생겨난 것이었네'라는 식상한 혼잣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안성기 배우가 가장 사랑한 영화, <라디오 스타>

잠시 뒤 무언가에 이끌리듯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들고 OTT 화면을 켰다. 이날은 그의 영화를 보며 조용한 추모를 하고 싶었다. 검색 창에 '안성기'라는 이름을 넣자 수많은 작품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유독 한 작품에 시선이 멈추었다. 그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작품, <라디오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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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1974년에 체포되고 1976년에 사형집행당한 고 강을성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19일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강민호)는 1976년 2월 10일 확정된 강을성 사형선고의 효력을 소멸시켰다.

1974년 11월의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강을성은 40세의 육군본부 3급 군무원이었다. 서울 용산기지에서 근무하던 그 군무원이 관련된 이 사건의 밑바탕에는 재일교포사회와 박정희 정권의 반목이 깔려 있었다. 조총련과 박 정권의 문제가 아닌, 재일거류민단과 박 정권의 갈등이 저변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강을성 사건에 나오는 통혁당은 1968년의 중앙정보부 발표를 통해 우리 사회에 깊이 각인됐다. 경북·대구 지역 사회운동가인 김종태 등 158명으로 조직된 간첩단이 북한 대남사업총국 지령에 따라 통혁당을 조직하고 청년·학생·지식인 등을 포섭해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종태 등 4인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훗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집필하게 될 27세의 경제학자 신영복(1941~2016)은 이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형을 받았다가 1988년 광복절 때 석방됐다. 서울대 재학 중에 통혁당에 포섭됐다는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은 고 박경호에 대한 서울고등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는 보도가 2021년 7월 20일에 있었다. 징역 15년형을 받고 13년간 복역한 뒤 석방된 박성준(한명숙 전 총리 남편) 전 성공회대 교수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는 보도는 2022년 1월 28일에 있었다.

군무원이었던 강을성을 간첩으로 조작한 육군 보안사

통혁당 사건이 발표된 지 3년 뒤인 1971년에는 통혁당 재건위(일본거점 국내침투 간첩단) 사건이 발표됐다. 호남 지방에 암약하는 친북세력이 지하당을 조직해 적화통일을 기도했다고 발표된 이 사건으로 인해 11명이 검거됐다. 그러고 나서 3년 뒤에 육군보안사령부(국군방첩사령부의 전신)가 발표한 것이 강을성 재심에서 거론된 통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중앙정보부나 육군보안사 같은 공안기관들의 입장에서는 1968년 통혁당 사건이 일종의 '히트작'이었다. 이전에 '대통령 각하'의 주목을 끌었던 것과 동일한 명칭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일이 1971년에도 있었고 1974년에도 있었다. 애초에 중앙정보부가 발표했던 사건을 경쟁 기관인 육군보안사가 1974년에 '리바이벌'한 셈이다.

물론 1974년 사건이 1968년 사건과 완전히 똑같은 양상을 띤 것은 아니다. 1974년 사건에는 1970년대 공안사건의 패턴이 반영됐다. 이 사건에는 일본 땅과 재일교포 사회가 북한 대남활동의 루트로 등장했다. 1974년 11월 5일 자 <경향신문> 톱기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육군보안사령부는 5일 일본을 거점으로 거류민단을 이용, 국내의 정치·경제·사회·학원·군수·산업 분야에 침투를 기도한 재일거류민단 동경도(都) 본부 부단장 진두현(46)을 주범으로 한 대규모 간첩단 일당 18명을 지난달 10일 서울·광주 등지에서 일망타진, 이 중 간첩 8명을 포함한 13명을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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