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김상욱 자유총연맹 총재 "정치 관여와 영구적으로 결별하겠다"

한국자유총연맹(이하 연맹)이 정치 편향성과 회계 투명성 논란을 완전히 끊어내기 위한 대대적인 '쇄신 독립선언'에 나서 주목된다.
한국자유총연맹(김상욱 총재 직무대리, 이하 총재)는 6일 정치적 중립을 강화하고 국고보조금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정치 관여와 영구적으로 결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조치는 과거 제기돼 온 정치 편향 논란과 회계 불투명성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직 개편의 성격을 갖는다.
쇄신의 핵심은 연맹 내부에 상시 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연맹은 감사실을 재개설하고 그 산하에 '정치중립 관리센터'를 신설해 내부 직원의 정치 관여 활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워치독(Watchdog)'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김상욱 총재(職)는 "앞으로 연맹에 성역은 없다"며 "정치적 중립이라는 금단의 선을 넘는 행위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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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026 박찬운 검찰개혁 자문위원장 사퇴... "보완수사 폐지 반대 소신"

박찬운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장(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9일 위원장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박찬운 위원장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검찰개혁 입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성실하고 책임 있는 자문을 제공하고자 최선을 다해 왔으나, 아직 입법이 완결되지 않은 시점에서 사임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위촉 이전부터 보완수사 폐지에 반대하고 전건송치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며 "이러한 분명한 소신을 가진 제가 중립적 입장에서 법안 준비를 요구받는 추진단에 자문을 맡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보완수사권 존폐 여부를 비롯한 검찰개혁 논의 구조에 우려를 표명했다. "형사사법 절차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사안임에도 충분한 숙의와 균형 잡힌 토론보다 감정적 접근이 앞서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교한 검토와 합리적 토론 없이 '개혁'이라는 이름만으로 체계가 급격히 개편된다면, 그 부담과 위험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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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026 끔찍한 고문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단종의 충신들
(이전 기사 : '달빛에 빼든 철퇴, 한밤 중에 발생한 쿠데타'에서 이어집니다.)
세조는 즉위 이후 지속적으로 왕권 강화를 추구했다. 그는 의정부서사제를 폐지했고, 6조 직계제를 실시했다. 이는 대신들을 배제한 채 국왕 중심 체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실시하면서 세조는 "의정부서사제는 임금이 죽은 제도이다. 너희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어려서 정치를 재결(裁決)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했다. 아울러 종친, 공신 등을 대거 발탁해 의정부, 6조, 승정원, 고위 군직에 포진시켰다(종친의 정치 참여는 원래 금지됐다). 이를 통해 친위 그룹을 만듦으로써 왕권 강화를 도모했다. 세조는 신하들과 함께 논쟁하는 경연 및 대간의 활동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에 따라 대간에 대한 탄압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모습에 집현전 유학자들의 반감은 높아졌다. 이들은 세종, 문종대에 대간을 통해 조정에 진출했고, 신권이 중심이 된 유교정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조가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것에 대한 반감도 상당했다. 집현전 유학자들은 신하인 세조가 함부로 충의를 저버린 역적이라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인물들은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등이었다(무신인 유응부까지 포함해 '사육신'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자연스레 세조를 폐위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한 거사를 모의하게 된다.
사육신 사건
무신인 성승(성삼문 아버지), 유응부 등은 자신들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규합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중 1456년 6월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이 날은 본국으로 떠나는 명나라 사신을 환송하기 위해 창덕궁에서 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세조도 연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왕의 양옆에서 칼을 들고 서있는 별운검(別雲劍)으로 성승과 유응부가 선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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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즉위 이후 지속적으로 왕권 강화를 추구했다. 그는 의정부서사제를 폐지했고, 6조 직계제를 실시했다. 이는 대신들을 배제한 채 국왕 중심 체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실시하면서 세조는 "의정부서사제는 임금이 죽은 제도이다. 너희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어려서 정치를 재결(裁決)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했다. 아울러 종친, 공신 등을 대거 발탁해 의정부, 6조, 승정원, 고위 군직에 포진시켰다(종친의 정치 참여는 원래 금지됐다). 이를 통해 친위 그룹을 만듦으로써 왕권 강화를 도모했다. 세조는 신하들과 함께 논쟁하는 경연 및 대간의 활동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에 따라 대간에 대한 탄압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모습에 집현전 유학자들의 반감은 높아졌다. 이들은 세종, 문종대에 대간을 통해 조정에 진출했고, 신권이 중심이 된 유교정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조가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것에 대한 반감도 상당했다. 집현전 유학자들은 신하인 세조가 함부로 충의를 저버린 역적이라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인물들은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등이었다(무신인 유응부까지 포함해 '사육신'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자연스레 세조를 폐위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한 거사를 모의하게 된다.
사육신 사건
무신인 성승(성삼문 아버지), 유응부 등은 자신들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규합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중 1456년 6월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이 날은 본국으로 떠나는 명나라 사신을 환송하기 위해 창덕궁에서 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세조도 연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왕의 양옆에서 칼을 들고 서있는 별운검(別雲劍)으로 성승과 유응부가 선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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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026 패배의 역사 밖, 우리가 몰랐던 '아즈텍' 이야기
역사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 일컬어지듯, 정복자의 시선으로 덧칠한 패자의 모습은 편견의 굴레에 갇히곤 한다. 한번 왜곡된 인식은 오래도록 진실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곤 한다.
카밀라 타운센드(Camilla Townsend)의 <아즈텍(Fifth Sun : A New History of the Aztecs)>은 아즈텍 문명을 피의 제국으로만 이해해 온 기존 인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카밀라 타운센드의 저서 번역본인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2025년 9월 출간)를 읽었다.
이 책은 신화를 해설하는 책이라기보다 아즈텍 역사를 원주민 기록으로 재구성한 역사서에 가깝다. 이 책은 아즈텍인들이 직접 남긴 연대기를 바탕으로, 그들의 기원부터 테노치티틀란의 번영, 정복의 비극, 그리고 정복 이후 후손들의 끈질긴 생존기까지를 연대기적으로 촘촘하게 재구성했다.
이 책의 저자(카밀라 타운센드)는 스페인 측 기록 대신 원주민의 언어인 '나와틀어'를 익히고, 아즈텍의 문헌을 발굴하였다. 저자는 아즈텍인들을 잔혹한 광신도가 아닌 고도의 철학과 정교한 외교를 구사한 지적 주체인 보통 사람들로 되살려냈다. 이는 박제된 패배의 역사를 역동적인 생존과 저항의 서사로 전환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아즈텍을 잔혹한 광신도가 아닌 고도의 정치 체제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지적 주체로 묘사했다. 인신공양 또한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아즈텍 제국 질서의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코르테스를 신으로 착각했다는 신화 역시 정복자의 허구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즈텍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음을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가뭄과 기근이 닥쳐 힘든 상황에서 그들은 간절하게 신에게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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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 타운센드(Camilla Townsend)의 <아즈텍(Fifth Sun : A New History of the Aztecs)>은 아즈텍 문명을 피의 제국으로만 이해해 온 기존 인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카밀라 타운센드의 저서 번역본인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2025년 9월 출간)를 읽었다.

이 책은 신화를 해설하는 책이라기보다 아즈텍 역사를 원주민 기록으로 재구성한 역사서에 가깝다. 이 책은 아즈텍인들이 직접 남긴 연대기를 바탕으로, 그들의 기원부터 테노치티틀란의 번영, 정복의 비극, 그리고 정복 이후 후손들의 끈질긴 생존기까지를 연대기적으로 촘촘하게 재구성했다.
이 책의 저자(카밀라 타운센드)는 스페인 측 기록 대신 원주민의 언어인 '나와틀어'를 익히고, 아즈텍의 문헌을 발굴하였다. 저자는 아즈텍인들을 잔혹한 광신도가 아닌 고도의 철학과 정교한 외교를 구사한 지적 주체인 보통 사람들로 되살려냈다. 이는 박제된 패배의 역사를 역동적인 생존과 저항의 서사로 전환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아즈텍을 잔혹한 광신도가 아닌 고도의 정치 체제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지적 주체로 묘사했다. 인신공양 또한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아즈텍 제국 질서의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코르테스를 신으로 착각했다는 신화 역시 정복자의 허구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즈텍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음을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가뭄과 기근이 닥쳐 힘든 상황에서 그들은 간절하게 신에게 기도하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눈꺼풀이 붓고, 입이 말라 입술이 얇아지며,
목구멍의 색이 바랬습니다.
아이들에게서 전혀 활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뒤뚱거리고 기고, 요람에 누운 아이들까지
모두 고뇌와 고통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찌 인간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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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026 "을지로에 거대 미술관 만들려고요" 이 예술가들이 꿈꾸는 미래

"개발사업이 가리는 것은 문화유산의 풍경만이 아니에요. 을지로가 오랜 시간 축적해온 산업과 문화 생태계 그리고 그 너머에 깊숙이 숨쉬고 있는 관계의 맥락들이죠."
'을지로'에서 오래 활동해온 현대미술작가 고대웅과 건축가 이재원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개발사업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도면 한 장만 건네면 무엇이든 현실로 빚어내는 숙련된 기술 장인들. 그들의 손끝을 빌려 추상을 구체화하는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의 이질적인 공존을 지역의 매력으로 바꾸는 상인들. 골목마다 스며 있는 이들의 촘촘한 분업 구조와 상생의 연결망은 오세훈식 재개발 앞에서는 그저 정비의 대상이었을 뿐이지만 고대웅 작가와 이재원 소장에게는 을지로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지난 2월 11일 고대웅 작가가 두툼한 전시 팜플렛 하나를 보내왔다. 고대웅 작가와 이재원 소장이 오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설계한 도시 전략 청사진 <을지아트센터(EAC): City as Gallery>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2월 11일부터 12일까지 양일간 서울 중구 소재 파라다이스문화재단 1층 파라다이스 아트랩 워크숍에서 <을지아트센터> 프로젝트가 열렸다. 마지막날인 12일 방문한 기자에게 고대웅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을지로에 거대한 미술관, 을지아트센터를 만들어보려고요."
"미술관을 어디에 지어요?"
기자의 질문에 함께 작업한 이재원 소장이 점과 점이 선들로 촘촘히 이어진 '지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짓지 않을 겁니다. 대신 연결할 겁니다. 을지로에 있는 작은 전시공간과 공방, 그리고 오래된 장인들의 공장과 다방들까지. 이 모든 것들을 다 연결해 도시 전체를 미술관으로 쓰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만들 미술관 '을지아트센터'입니다."
"서울이 베니스보다 못할 게 뭐가 있나"


도시 전체를 미술관으로 쓴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이재원 소장은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이야기를 꺼냈다. 1895년에 시작된 이 축제에는 거대한 '본관'이 없다. 대신 전시 공간을 도시 전체에 흩어 놓았다. 지아르디니 공원의 국가별 파빌리온(전시공간), 옛 조선소였던 아르세날레, 그리고 팔라초와 교회, 창고, 골목의 작은 건물들까지 베니스 곳곳에서 전시가 열린다. 관람객은 이 공간들을 걸어서 이동한다. 골목을 돌다 우연히 전시를 발견하기도 하고 지도를 펼쳐 동선을 짜기도 한다. 단일 건물이 없어도 도시 전체가 하나의 전시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베니스는 130년째 증명하고 있는 셈.
이재원 소장은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을지로가 오히려 베니스보다 더 주목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베니스는 지아르디니와 아르세날레라는 본관 역할을 하는 사실상의 중심 공간이 있지만 을지로에는 그런 중심이 없다"며 "을지아트센터 프로젝트는 바로 중심 공간 부재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여러 공간들이 전시의 기반이 되는 '다중심 공간'들을 설계하고, 이를 연계해 지역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으로 작동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대웅 작가 역시 거들었다. 그는 "베니스의 공간들이 관광객을 위한 공예 상점 중심이라면 을지로는 기술 장인과 예술가가 실제로 같은 골목에서 호흡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십 년간 축적된 기술과 제작 기반, 골목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이 이곳을 '만들어내는 도시'로 지탱해왔다"며 두터운 창작 생태계를 갖춘 을지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서로 연결되는 순간 하나의 미술관이 되는 '작지만 강한' 거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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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026 혁신당 광주 예비후보들 "승자독식 선거제도 개편해야"

조국혁신당 광주광역시당 광역·기초 의원 예비후보들이 9일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는 시민의 표 절반을 사표로 만든다"며 중대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편을 촉구했다.
조국혁신당 광주시당 예비후보들은 이날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최저 수준의 투표율과 무투표 당선 속출, 더불어민주당의 90% 의회 독점은 '민주주의 성지' 광주의 아픈 자화상"이라며 "다양성이 살아있는 지역 정치의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광역의회 3~5인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사표를 줄이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의회에 진입해야 한다"며 "시민이 준 표만큼 의석이 반영되는 정직한 의회를 만들기 위해 광역·기초의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광역·기초의회 비례대표 정수를 30% 이상 확대해 여성, 청년, 노동자, 정책 전문가 등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의회에 들어와야 한다"며 "과반의 지지를 받는 시장 선출하고 정책 협약과 연합 정치가 가능한 협치의 시대를 열기 위해 자치단체장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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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026 "중앙-지방공공기관 육아휴직 대체인력 충원 제도 차별 없애야"

지방공공기관이 올해 육아휴직 대체인력 충원 제도에서 중앙공공기관과 비교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재부는 2024년 12월, 육아휴직을 6개월 이상 사용할 경우 대체 채용으로 발생한 '일시적 초과 인원' 인건비는 최대 5년 동안 총인건비 계산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작년 11월 재경부는 '2026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을 통해 육아휴직 기간이 6개월 이상일 때만 적용하던 기준을 3개월 이상으로 줄였다. 하지만 지방공공기관은 여전히 6개월이라는 기준을 적용받고, 심지어 지방 출자·출연기관은 이 같은 기준조차 없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제도(모성정원제라고 부르기도 한다)가 생기기 전엔 공공기관은 육아휴직자가 생겨도 대체인력을 안정적으로 채용하기 어려웠다. 정부가 기관별로 인건비 총액 상한선을 정해놓은 총인건비 제도 탓이었다. 대체인력을 뽑으면 직원 수와 인건비가 늘어나 총인건비 기준을 초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다수 기관들은 소극적으로 대체인력을 뽑았으며, 기간제 채용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건강일자리연구소는 2월 11일 이슈페이퍼를 통해 "지방출자·출연기관은 모성정원제 규정이 없고, 지방공기업은 (모성정원제가) 가능하나 실질적으로 미운영되고 있다"며 "결국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아 계약직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건강일자리 연구소는 "행정안전부가 지방공기업과 지방출자·출연기관을 경직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공공서비스 제공과 안전, 채용에 부정적 영향이 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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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026 영화 보러 인천에서 여의도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차미경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경. KBS의 한 장애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인 차 작가로부터 방송 출연 요청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내가 방송 주제의 배경이 되는 기사나 글을 전하면 차 작가님이 깔끔한 스크립트로 다듬어 줬다. 내가 이끄는 무의가 하는 일이 이동 장애뿐 아니라 다양한 장애와 다양성으로 확대하게 된 데엔 차 작가와의 방송이 큰 영향을 끼쳤다. 차 작가는 라디오 작가를 그만둔 이후에도 페이스북에 특유의 정곡을 찌르면서도 따뜻한 글을 써 왔다. 그가 쓴 다양한 글, 특히 영화나 드라마 등 대중문화 비평을 모아 책 <기울어진 스크린>이 나왔다. 책 소개를 보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알 수 있다.
마침 여의도에 영화를 보러 나온 차 작가와 만났다.
굳이 여의도 영화관을 찾은 이유
-오늘은 어떤 영화를 봤는지?
"<휴민트>를 봤다. 여의도 CGV 중 휠체어석이 맨 뒤에 있는 상영관이 있어 이곳을 자주 찾는다. 영화관 휠체어석은 거의 다 맨 앞에 있어서 보기가 불편하다. 휠체어석이 뒤에 있는 곳이 몇 개 되지 않는다. 신촌 아트레온도 뒤에 휠체어석이 있지만 거기는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이동을 또 해야 하니까. 용산 CGV도 뒷좌석에 휠체어석이 있는 곳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없어졌다."
-그러고 보니 안 지 오래되었는데도 작가님이 어떻게 휠체어를 타게 됐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소아마비로 여러 번의 수술을 했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장애 접근성에 대한 개념도 시설도 없던 때라 어떻게든 걸어야 한다며 다리가 휘면 수술을 하고 목발 짚고 다녔다. 아버지가 공무원 하기를 원하셔서 사회복지연수를 받고 사회복지 자격증을 따서 공무원 시험을 봤다. 면접관이 노골적으로 장애를 이유로 떨어뜨렸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다른 곳에 면접을 보러 가도 위아래로 훑어보곤 떨어뜨렸다. 아버지의 꿈을 이룰 수가 없더라.
그러다가 광주 장애인 시설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케어하는 일이었다. 혼자 내려가겠다고 하니 엄마는 반대하셨는데 아버지는 찬성하셨다. 1년 동안 편의시설 하나 없는 곳에서 3, 4층을 목발로 오르내리며 일하다 보니 몸이 축났다. 갑자기 몸이 안 움직이더라. 류마티스였다. '장애인 아닌 환자가 됐다.' 의사가 걷지 말라고 조언하더라. 맞는 약을 찾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몸이 가장 아팠던 스물 아홉살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35세경부터는 휠체어로 정착하게 됐다."
-방송작가는 어떻게 되셨는지?
"2007년에 시작해 20년을 약간 덜 채웠다. 류마티스로 몸이 가장 아프던 시절 TV를 많이 봤다. <베스트셀러극장> 이나 <네 멋대로 해라> 인정옥 작가, <서울의 달> 김운경 작가 작품을 많이 좋아했다. 드라마작가교육원에서 작가를 모집하더라. 강사는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 작가였는데 장애인 화장실 편의시설 없는 건물이라 울며 다녔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 작가 아카데미를 다니는 걸 보고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당시 장애인총연맹에서 개최한 '제 1회 장애인 아카데미'에 등록하라고 강권하셨다. 작가 양성 과정이었는데 안성 교육장까지 휠체어 핸드콘트롤러와 팔을 묶어 다니면서 먼 길을 이를 악물고 열심히 다녔다. 최우수 수료상을 받은 후 방송 출연 기회가 있었다. 그게 인연이 돼 2007년 KBS 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 작가가 됐다. 서울 마포구 마포FM에서도 장애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작가 겸 PD를 지냈다."
-<기울어진 스크린>은 미디어를 장애인의 시각에서 분석한 책이다.
"방송을 오래 하다 보니 모든 콘텐츠를 '장애 필터'로 보게 되더라. 책은 에이블뉴스 더인디고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았다. 방송도 하고 장애인식교육도 나가다 보니 방송에서 틀린 이야기 하면 어떻게 하지? 하며 자기 검열을 많이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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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뭐 맨날 희망을 노래하고 꿈을 그리고 써야 하나? "아, 저들은 저렇게 사는데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이런 값싼 자기 위안과 가짜 희망을 주자고 우리와 그들로 구분 지으며 장애인을 대상화 해 얻는 감동 추구는 이제 그만하자. 대중문화가 장애를 보여 주는 방식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마침 여의도에 영화를 보러 나온 차 작가와 만났다.
굳이 여의도 영화관을 찾은 이유

-오늘은 어떤 영화를 봤는지?
"<휴민트>를 봤다. 여의도 CGV 중 휠체어석이 맨 뒤에 있는 상영관이 있어 이곳을 자주 찾는다. 영화관 휠체어석은 거의 다 맨 앞에 있어서 보기가 불편하다. 휠체어석이 뒤에 있는 곳이 몇 개 되지 않는다. 신촌 아트레온도 뒤에 휠체어석이 있지만 거기는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이동을 또 해야 하니까. 용산 CGV도 뒷좌석에 휠체어석이 있는 곳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없어졌다."
-그러고 보니 안 지 오래되었는데도 작가님이 어떻게 휠체어를 타게 됐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소아마비로 여러 번의 수술을 했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장애 접근성에 대한 개념도 시설도 없던 때라 어떻게든 걸어야 한다며 다리가 휘면 수술을 하고 목발 짚고 다녔다. 아버지가 공무원 하기를 원하셔서 사회복지연수를 받고 사회복지 자격증을 따서 공무원 시험을 봤다. 면접관이 노골적으로 장애를 이유로 떨어뜨렸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다른 곳에 면접을 보러 가도 위아래로 훑어보곤 떨어뜨렸다. 아버지의 꿈을 이룰 수가 없더라.
그러다가 광주 장애인 시설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케어하는 일이었다. 혼자 내려가겠다고 하니 엄마는 반대하셨는데 아버지는 찬성하셨다. 1년 동안 편의시설 하나 없는 곳에서 3, 4층을 목발로 오르내리며 일하다 보니 몸이 축났다. 갑자기 몸이 안 움직이더라. 류마티스였다. '장애인 아닌 환자가 됐다.' 의사가 걷지 말라고 조언하더라. 맞는 약을 찾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몸이 가장 아팠던 스물 아홉살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35세경부터는 휠체어로 정착하게 됐다."
-방송작가는 어떻게 되셨는지?
"2007년에 시작해 20년을 약간 덜 채웠다. 류마티스로 몸이 가장 아프던 시절 TV를 많이 봤다. <베스트셀러극장> 이나 <네 멋대로 해라> 인정옥 작가, <서울의 달> 김운경 작가 작품을 많이 좋아했다. 드라마작가교육원에서 작가를 모집하더라. 강사는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 작가였는데 장애인 화장실 편의시설 없는 건물이라 울며 다녔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 작가 아카데미를 다니는 걸 보고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당시 장애인총연맹에서 개최한 '제 1회 장애인 아카데미'에 등록하라고 강권하셨다. 작가 양성 과정이었는데 안성 교육장까지 휠체어 핸드콘트롤러와 팔을 묶어 다니면서 먼 길을 이를 악물고 열심히 다녔다. 최우수 수료상을 받은 후 방송 출연 기회가 있었다. 그게 인연이 돼 2007년 KBS 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 작가가 됐다. 서울 마포구 마포FM에서도 장애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작가 겸 PD를 지냈다."

-<기울어진 스크린>은 미디어를 장애인의 시각에서 분석한 책이다.
"방송을 오래 하다 보니 모든 콘텐츠를 '장애 필터'로 보게 되더라. 책은 에이블뉴스 더인디고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았다. 방송도 하고 장애인식교육도 나가다 보니 방송에서 틀린 이야기 하면 어떻게 하지? 하며 자기 검열을 많이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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