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고려대를 싫어한 박정희... 대체 왜 그랬을까?

이른바 '반국가세력'에 대한 경고장인 12·3 계엄포고령 제1호에 "전공의"와 "의료인"이라는 구체적인 직업 명칭이 등장했다. 유신체제 때는 특정 학교가 그런 경고의 대상으로 거명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임시국무회의 의결 직후인 1975년 4월 8일 오후에 발표한 긴급조치 제7호 제1항에 "75년 4월 8일 17시를 기하여 고려대학교에 대하여 휴교를 명한다"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제3항은 휴교령을 어기거나 이 학교 내에서 집회·시위를 열면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경고했다.

제4항은 국방부 장관이 병력을 투입해 학교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당시의 고려대 운동권 학생들을 많이 감금한 서울 성북경찰서장 등에게 맡겨도 됐을 법한 일을 치안본부장(경찰청장)도 아니고 국방부 장관에게 맡겼던 것이다.

고려대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간 박정희 정권

1973년부터 박 정권은 고려대를 유독 심하게 다뤘다. 그해 봄부터 불거진 고려대 NH회 사건(고려대 민우지 사건)이 그 시작이었다.

NH회라는 명칭과 관련해 행정안전부 산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민주화운동사전> 홈페이지의 '고려대 민우지 사건' 편은 "NH는 Nationalism과 Humanism의 약자로 당시 학생들이 지향한 민족주의와 인간화를 뜻하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한다.

NH회는 그런 이념을 지향했지만, 박 정권은 이 그룹이 공산주의를 추구했다고 몰아세웠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은 엉뚱하게도 간첩단 사건으로 둔갑됐다. 그해 6월 21일 자 <매일경제>는 "중앙정보부는 고대 노동문제연구소 사무국장 김낙중(37)을 중심으로 한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 관련자 11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한 뒤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을 거명했다.

이에 따르면, NH회 회장 정발기(23세)와 최기영·박영환·정진영·윤경로·박세희 6명은 고려대 재학생이고, 고문 함상근(22세)과 김영곤·양재덕 3명은 고려대 퇴학생이었다. 유명한 통일운동가였던 김낙중은 1953년에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가 4년 뒤 고려대 경제학과에 편입했다. 피고인들 중에서 고려대에 적을 두지 않은 사람은 동국대 2학년 강태희뿐이었다. 위 기사는 거의 다 고려대 출신들인 사건 관계자들의 행적을 검찰 공소장을 근거로 이렇게 보도했다.

"이들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김낙중을 중심으로 사립의 명문인 고대에 침투, 반국가단체인 NH회를 조직하는 한편, 지하신문인 '민우지'를 발간, 학원 내에 살포, 학생들로 하여금 반정부 봉기를 획책하고 제3국을 통해 북한과 서신연락을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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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우즈베키스탄을 물리치고, 2027 브라질 여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한국은 14일 오후 6시(이하 한국시간)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 2026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8강전에서 6-0 대승을 거뒀다.

이로써 월드컵 본선 출전권이 걸린 이번 아시안컵에서 4강에 오른 한국은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2015, 2019, 2023, 2027)에 성공했다.

다양한 패턴의 공격 전개...대량 득점 승리

한국은 4-1-4-1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원톱은 손화연, 2선에는 박수정-지소연-문은주-최유리가 자리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김신지, 포백은 장슬기-노진영-고유진-김혜리, 골문은 류지수가 지켰다.

첫 골은 전반 7분에 터졌다. 전반 7분 장슬기의 강력한 왼발슛이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전반 9분 최유리의 로빙 패스를 받은 손화연의 슈팅이 상대 수비수 다리 맞고 미세하게 굴절되며 골문으로 들어갔다.

1-0으로 앞선 한국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전반 20분 고유진이 오른발로 감아찬 슈팅이 골문 오른쪽 상단에 꽂히면서 점수차를 벌렸다.

한국은 2골의 리드에도 경기 주도권을 잃지 않으며 줄곧 추가골 사냥에 나섰다. 전반 31분 골문 좌측에서 지소연이 시도한 슈팅이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전반 33분에는 노진영의 헤더를 골키퍼가 펀칭했다. 전반전은 한국의 2-0 리드로 종료됐다. 전반전 슈팅수에서 17-1, 볼 점유율 85%-15%로 크게 우세한 경기를 펼친 한국이었다.

한국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김신지, 김혜리 대신 정민영, 추효주가 들어갔다. 후반에도 경기를 주도한 한국은 후반 12분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코너킥 상황에서 골키퍼가 펀칭해 뒤로 흘러나온 공을 박수정이 잡아 놓은 뒤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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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리그(MLB)의 레전드 투수 클레이튼 커쇼가 정든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선수 유니폼을 입고 나선 마지막 무대였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였지만 커쇼는 끝내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대회를 마감했다.

미국은 14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다이킨 파크에서 열린 2026 WBC 2라운드(8강)에서 캐나다를 5-3으로 제압했다. 미국은 4강에 진출했지만 이 경기를 끝으로 대표팀을 떠나게 된 커쇼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커쇼는 경기 중반 불펜에서 혹시 모를 등판을 대비했다. 하지만 경기 중반 미국이 5-0까지 앞서나가자 커쇼가 공 대신 맥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 방송 화면에 포착됐다. 애초에 등판이 예정되어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미국은 6회말 캐나다에 3점을 내주며 고비를 맞이했지만 커쇼 대신 데이비드 베드나, 개럿 휘틀록, 메이슨 밀러를 연이어 투입하며 더이상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끝까지 리드를 지켜냈다.

미국 대표팀은 이미 4강전을 앞두고 커쇼를 대신할 예비 투수로 제프 호프먼(토론토 블루제이스)을 낙점한 상태였다. 커쇼는 이번 WBC를 앞두고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합류했으나 1라운드부터 8강전까지 5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번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국가대표 경력을 비롯한 선수생활에 완전한 마침표를 찍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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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병원 조직에서 간호사의 최고 목표는 '수간호사'나 '간호팀장' 같은 관리자가 되는 것이었다. 승진은 곧 능력의 증명이었고, 선배들의 길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 하지만 최근 병원 복도에는 새로운 기류가 흐른다. 승진의 기회가 와도 손사래를 치고, 책임이 따르는 보직보다는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는 자리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요즘 젊은 간호사들에게 '관리자'라는 자리는 매력적인 왕관이 아니라 기피해야 할 '독이 든 성배'다. 관리자가 되는 순간, 환자 간호라는 본연의 업무 외에 복잡한 행정 업무, 인력 관리, 부서 간 갈등 중재라는 거대한 짐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승진하면 월급은 조금 오르지만, 내 개인 시간은 완전히 사라져요. 주말에도 병원 연락을 받아야 하고, 사고가 터지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하죠. 저는 차라리 평간호사로 남아서 제때 퇴근하고 싶습니다."

한 중소병원 7년 차 간호사의 말처럼, 이제 간호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조직 내 성공'이 아니라 '나의 시간(워라밸)'으로 옮겨갔다.

'삶의 질'이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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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의 촬영 감독 조복동(趙福東)씨가 지난 12일 오후 8시28분께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4일 전했다. 항년 76세.

1950년생인 고인은 1969년작 만화영화 '홍길동 장군'에서 촬영을 담당한 삼촌 조민철씨의 영향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72년 만화영화 '괴수대전쟁'부터 촬영을 맡기 시작했다. 1972∼1974년 일본 후지TV가 방영한 만화영화 '독수리 오형제'(원제 과학닌자대 갓차만)와 '플란다스의 개', '알프스 소녀 하이디' 등 일본 애니메이션 촬영에 참여했다. 당시 일본 TV 애니메이션의 상당수를 국내에서 찍어서 납품할 때였다.

1976년 김청기 감독의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1, 2편 촬영 감독을 맡았다.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인터뷰에서 \"1960∼1970년대만 해도 (만화영화) 촬영 기술을 배울 곳도, 자료도 없었다\"며 \"1973년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촬영기법과 특수효과 기술을 배웠다, 로보트 태권V를 촬영하면서 셀 밑에 셀을 덧대고 유리에 반사하는 방식으로 내는 투과광 효과, 권총을 쏠 때 나오는 레이저 효과, 로봇이 변신할 때 나타나는 화려한 효과 등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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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종 민주진보교육감 후보 단일화 절차가 본격화됐다.

유우석·임전수 두 예비후보가 경선에 참여한 가운데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한 정책 경쟁이 이어지면서 단일화 레이스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26 세종 민주진보교육감 단일화 추진위원회'는 세종교육의 다음 10년을 시민의 힘으로 설계하기 위해 오는 24일까지 추진위원을 공개 모집한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최근 지역 곳곳에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 시민 참여 확대를 위한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개 모집하는 추진위원은 세종시에 주소를 둔 만 16세 이상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참여 연령 기준은 2010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로, 교사·공무원·청소년 등도 참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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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반국가세력'에 대한 경고장인 12·3 계엄포고령 제1호에 "전공의"와 "의료인"이라는 구체적인 직업 명칭이 등장했다. 유신체제 때는 특정 학교가 그런 경고의 대상으로 거명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임시국무회의 의결 직후인 1975년 4월 8일 오후에 발표한 긴급조치 제7호 제1항에 "75년 4월 8일 17시를 기하여 고려대학교에 대하여 휴교를 명한다"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제3항은 휴교령을 어기거나 이 학교 내에서 집회·시위를 열면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경고했다.

제4항은 국방부 장관이 병력을 투입해 학교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당시의 고려대 운동권 학생들을 많이 감금한 서울 성북경찰서장 등에게 맡겨도 됐을 법한 일을 치안본부장(경찰청장)도 아니고 국방부 장관에게 맡겼던 것이다.

고려대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간 박정희 정권

1973년부터 박 정권은 고려대를 유독 심하게 다뤘다. 그해 봄부터 불거진 고려대 NH회 사건(고려대 민우지 사건)이 그 시작이었다.

NH회라는 명칭과 관련해 행정안전부 산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민주화운동사전> 홈페이지의 '고려대 민우지 사건' 편은 "NH는 Nationalism과 Humanism의 약자로 당시 학생들이 지향한 민족주의와 인간화를 뜻하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한다.

NH회는 그런 이념을 지향했지만, 박 정권은 이 그룹이 공산주의를 추구했다고 몰아세웠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은 엉뚱하게도 간첩단 사건으로 둔갑됐다. 그해 6월 21일 자 <매일경제>는 "중앙정보부는 고대 노동문제연구소 사무국장 김낙중(37)을 중심으로 한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 관련자 11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한 뒤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을 거명했다.

이에 따르면, NH회 회장 정발기(23세)와 최기영·박영환·정진영·윤경로·박세희 6명은 고려대 재학생이고, 고문 함상근(22세)과 김영곤·양재덕 3명은 고려대 퇴학생이었다. 유명한 통일운동가였던 김낙중은 1953년에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가 4년 뒤 고려대 경제학과에 편입했다. 피고인들 중에서 고려대에 적을 두지 않은 사람은 동국대 2학년 강태희뿐이었다. 위 기사는 거의 다 고려대 출신들인 사건 관계자들의 행적을 검찰 공소장을 근거로 이렇게 보도했다.

"이들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김낙중을 중심으로 사립의 명문인 고대에 침투, 반국가단체인 NH회를 조직하는 한편, 지하신문인 '민우지'를 발간, 학원 내에 살포, 학생들로 하여금 반정부 봉기를 획책하고 제3국을 통해 북한과 서신연락을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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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니체의 초상>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니체가 주장한 인간의 본질적 조건을 담은 듯하다. 언뜻 보기에는 니체라는 철학자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저 평범한 한 점의 초상화로 다가오기에 십상이다. 니체의 저작을 접했거나 하다못해 서양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독일 철학자 니체의 모습이 캔버스 가득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물을 둘러싼 다른 요소들을 살피면 화가가 이 그림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문제의식과 만날 수 있다. 주변의 사물이 굴절된 모습으로 휘청거린다. 땅도 하늘도 온통 휘어져 꿈틀대며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뭉크의 대표작이라 할 <절규>의 배경과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다.

노란색·파란색·붉은색·갈색·검은색 등 거의 원색에 가까운 색들이 기본적인 배색의 조화에서 벗어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뒤섞여 어지러운 느낌을 주는 점도 비슷하다. 니체가 서 있는 곳도 마찬가지로 화면을 가로지르는 높은 다리 위다.

경계에 선 인간을 그리다

니체는 다리에 멈춰 서서 난간 아래를 응시한다. 세상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엉켜서 너울거리고 있으니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인들 어찌 고정된 상태나 단일한 정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할 수 있으랴. 인간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하나의 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인간은 본성이라는 견고한 뼈대를 세울 수 없는, 늘 불안하고 유동적인 존재임을 나타내려는 듯하다. 다리 위의 니체처럼 인간은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혼돈의 상황 속에서, 이쪽과 저쪽 사이의 다리에 서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늘 경계에 서서 불안을 숙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존재 말이다.

뭉크는 니체와 만나 직접 교류하지는 않았지만, 니체의 사상에 상당 부분 공감하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단순히 둘 다 어릴 때부터 가족의 죽음과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다는 현상적인 공통점에 머물지 않는다. 뭉크는 당대의 문학적·철학적 경향에 깊은 관심을 두고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실존주의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을 곁에 두고 여러 차례 읽었다고 한다. 일기에 그의 문장이 곳곳에 인용되어 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불안·허무 등을 깊이 탐구한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주요 저작을 읽고 여기에서 얻은 영감을 미술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다. 뭉크의 <불안>도 그 일환이다. 그림에서 니체가 서 있는 다리 난간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주위의 풍경과 사물이 서로 뒤섞여 안정을 잃고 있다. 사람들의 눈은 하나같이 초점이 분명하지 않고 표정도 흐려져 있다. 같은 분위기의 사람들이 뒤로 끝없이 이어져서, 경계에 서서 불안을 운명처럼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현실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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