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강제입원 어려워져 교도소 내 정신질환자 늘었다? 법무부의 분석이 이상하다

최근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 수용자 증가를 우려하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지난 2월 10일자 SBS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교정시설에서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가진 재소자가 전체 재소자의 약 10% 수준까지 증가했으며, 2016년 3000명대였던 정신질환 재소자가 2019년에는 4000명대, 2025년에는 63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기사는 이러한 정신질환 재소자들이 난동을 부려 교정당국에 비상이 걸렸다고 전한다.

기사에 인용된 법무부의 원인 분석은 이렇다. 헌법재판소가 2016년 정신보건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이후 정신병원 강제입원 요건이 크게 강화되었고, 그 결과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들이 전문기관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곧바로 수감되면서 교정시설 내 문제 상황이 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사실관계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

첫째,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정신보건법이 개정되었나?

헌법재판소의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 등 위헌제청 사건' 선고일은 2016년 9월 29일이다. 그러나 구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전면 개정된 것은 그보다 앞선 2016년 5월 29일이다. 법 시행 시점이 2017년이었기 때문에 헌재 결정 이후 개정된 것으로 오해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헌재 결정 이전에 이미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헌법재판소 역시 개정된 법률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현행법의 위헌 여부는 판단 대상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헌재 결정 때문에 정신보건법이 개정되었다는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둘째, 정신보건법 개정으로 입원요건이 크게 강화되었나?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강제입원 요건인 "자기 또는 타인을 해할 위험성"과 "입원치료의 필요성"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점이다. 둘째, 이러한 판단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인이 하도록 하여 자의적 판단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셋째, 환자의 권리를 옹호할 절차적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법 개정으로 일부 변화가 있기는 했다. 기존에는 두 요건 중 하나만 충족해도 강제입원이 가능했지만, 개정 이후에는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또한 판단 주체도 전문의 1인에서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전문의 2인 이상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정작 헌재가 지적했던 요건의 모호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위험성 판단 기준을 하위법령에 서 정하도록 하였지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경우"나 "위해를 가할 개연성이 높은 경우" 등으로 구분되어 있을 뿐 명확한 판단 기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전문의 2인의 판단 제도 역시 실제로는 서류 확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전문의 부족 지역에서는 예외 규정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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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예정이었던 미국 개봉 일정이 올해 첫 해외 출장과 겹친다는 걸 알았을 때, 너무 실망스러웠다. 왜 하필 지금이냐며 투덜거렸다.

2월 28일, 출장을 마치고 토요일 저녁 비행기로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우버를 탄 순간은 3월 1일 일요일 새벽. 개인 폰의 비행 모드를 해제하고 오랜만에 소셜미디어 스레드에 접속했다.

<왕과 사는 남자>를 근처 극장에서 일요일에 관람했다는 지역 스레더의 포스트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우버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연장 상영이다. 놓칠 뻔했던 기회가 찾아왔다. 피곤함쯤은 하루 더 미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면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다시 바빠질 테니, 어떻게든 일요일 오후에는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학기 내내 준비한 경시대회 일정과 또다른 대회 출전 준비로 주말 내내 바쁜 아들이 <약한 영웅>으로 빠져든 최애 배우 박지훈의 영화를 함께 보지 못한다는 건 아쉬웠지만, n회차 관람을 기약하며. 반쯤 열린 캐리어도, 쌓인 집안일도 잠시 잊고 아이를 경시대회 연습실에 데려다 주고 남편과 함께 극장으로 향했다.


일요일 늦은 오후의 극장. 열 개 남짓한 상영관 가운데 세 개의 상영관이 <왕과 사는 남자>를 상영하고 있었다. 600만, 700만, 800만. 언론에 보도되는 숫자가 미국의 작은 상영관에서도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아 보였다. 부모와 함께 극장을 찾은, 아마도 1.5세대 혹은 2세대로 보이는 아이들을 보니 어쩐지 기대감이 커졌다.

프롤로그와 영화 줄거리, 감독과 주연 배우의 인터뷰를 통해 재미와 감동, 그리고 역사적 결말까지 이미 풍분히 '스포' 당한 이야기임에도 감동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감독이 준비한 유머 코드에 웃다가, 단종의 눈빛에 빠져들다가, 여러 번 지적되었던 호랑이 CG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괜찮은데 뭐"라며 감독과 제작진을 편드는 마음이 솟아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쌀밥을 먹이기 위한 촌장의 '유배 유치 프로젝트'가 만들어내는 소동이 잔잔한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동안 상영관 속 사람들과 한마음이 된 느낌이었다.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없었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며 부모와 자녀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영화의 배경처럼 들려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영화를 본 페어팩스의 영화관에서 2023년 말 <서울의 봄>을 봤다는 사실이다. 두 영화 모두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반역에 따를 것을 강요받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그러나 조용히 저항했던, 크게 조명되지 않았던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엄흥도와 이태신. 그냥 눈 딱 감고 넘어가면 좋을 일에 함께하지 않기로 한, 돌아선 한순간의 '의외의 용기 있는' 선택 덕분에 우리는 뒤늦게나마 그들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역사의 흐름에서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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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곳이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이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은 서울의 대표적인 농수산 도매시장으로 경매장의 활기찬 소리, 바쁘게 움직이는 지게차, 신선한 과일과 채소, 해산물이 가득한 곳이 연상된다.

예전에는 번잡하고 복잡하던 이곳이 이제 가락몰로 현대화 되어 예전의 시장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인들과 방문객, 신선한 먹거리가 가득한 곳임은 여전하다. 도서관을 검색 하던 중 많은 사람들에게 농수산물 시장으로 알려진 가락몰에 의외의 문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가락몰 업무동 4층에 위치한 바로 '가락몰 도서관'이다.

'가락시장에 도서관이 있다고?' 하며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가락몰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 또한 의아해했다. 시장과 도서관이라는 조합이 조금은 낯설 수 있지만, 막상 방문해 보면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가락몰 업무동 4층 엘리베이터에 내리면 볼 수 있는 책 모양 조형물이 이곳이 도서관임을 알려준다. 책 모양 조형물 사이로 가락몰 3층에 위치한 휴식공간인 '하늘공원'이 보인다. 도서관과 하늘공원을 보며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의 변화를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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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가시는가 싶더니 2월 27일 아침부터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강진에서 1박 후 서둘러 진도 '운림산방(雲林山房)'에 들어서니, 잘 다듬어진 정원 잔디 밑으로 봄비가 스며든다. 비가 멈춘 듯하더니 뒷산으로 물안개가 자욱하다. 소치 허련(1808~1893)이 즐겼던 한 폭의 산수화 같다.

관람객도 듬성듬성 보인다. 운림산방 앞뜰엔 해치 두 마리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오늘 내린 봄비가 봄을 알리는 신호일까. 봄비에 젖은 자주목련 새순이 속살거린다. 수백 년 묵은 매화나무 일지매(一枝梅)도 뒤질세라 붉은 꽃망울을 보인다.

매화나무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께서 선물한 것으로 알려진다. 봄기운에 물든 연못가 무지개다리 홍애교 역시 손님맞이에 들뜬 기색이다. 운림산방의 기둥엔 스승 추사 김정희 글씨체가 걸려 있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과 나물이고,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자녀 그리고 손녀와 함께하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소치 허련은 스승이 즐겨 그렸던 그림뿐만 아니라 스승의 모든 것을 닮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걸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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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웃집 맞벌이 부부의 아이(10살)를 돌보고 있다. 주중에 하루 2시간 만나는 아이와는 방학이면 4시간을 만난다. 덕분에 방학에는 아이와 나들이를 다니기도 하는데, 지난달 26일 봄방학을 맞아 아이와 서울시청을 찾았다. 서울시청 지하 1층에 '서울갤러리'라는 공간이 새롭게 조성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찾게 된 서울시청. 그런데 시청에 들어선 아이가 발걸음을 멈추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거 타고 싶다."

아이가 가리킨 건 하늘광장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아마도 유리로 된 모양새와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그럴까?"
"그래도 돼요?"
"그럼, 당연히 되지."

아이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서너 명의 어른과 함께 얼른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아이는 투명 유리를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에 눈길을 빼앗겼다. 아이는 손을 뻗어 바깥을 가리키며 어디냐고 물었다.

"스케이트장이었는데 지금은 공사하고 있네. 아마 잔디광장으로 다시 바꾸는가 보다."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를 낮추고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봄을 맞아 씨앗을 뿌릴 밭고랑을 일구듯 얼음으로 뒤덮였던 땅은 어느새 황토색 흙으로 물들어 있었다. 곧 다시 초록빛의 푸른 광장이 눈앞에 펼쳐질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9층에 섰다. 아이와 나는 어른들이 내리고 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이는 눈앞에 펼쳐진 넓은 공간에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9층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아이는 10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하더니 그곳으로 나를 끌었다. 10층은 카페와는 달리 쉼터 같은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아래층과는 다르게 자리가 많아 그중 한 곳에서 간식을 꺼내 먹었다.

아이는 10층에서 9층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난간 손잡이를 잡고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를 따라 나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와글와글 정겨움을 자아내는 적당한 소음과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일상의 안온함을 안겨주었다.

간식을 다 먹은 아이에게 이제 내려가자고 손짓을 했다. 원래의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9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왼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자꾸만 시선이 옮아갔다. 8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하늘광장 갤러리'라는 이정표가 붙어 있어서였다. 이곳까지 왔는데 갤러리를 들르지 않고 가자니 좀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 저곳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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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한 송영길 전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아 정청래 대표와 면담한 뒤 배웅을 받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년 10개월 만에 변희수재단의 법인 설립을 허가했다.

인권위는 5일 서울 중구 인권위 사무실에서 상임위원회를 열고 '변희수재단 설립' 안건을 상임위원 4명 중 3명 찬성 의견으로 의결했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는 지난 2024년 5월 주무관청인 인권위에 법인 설립 신청 서류를 제출했으나, 인권위는 그간 상임위원회에 안건을 여섯 차례 상정하고도 설립을 허가하지 않았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20일 이내에 심사해서 허가 또는 불허가 처분을 해야 하지만 인권위는 어떤 처분도 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 : 김용원 핑계 대봤지만, 인권위 위법 낱낱이 드러난 '변희수재단' 판결문 https://omn.kr/2h61r)

그러다 변희수재단 법인 설립을 방해해 온 김용원 전 상임위원이 지난 2월 5일 임기를 마치고,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가 같은 달 12일 '법인 설립 허가' 행정 소송에서 승소하고 나서야 설립을 허가한 것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변희수재단 설립 허가' 관련 입장을 묻는 <오마이뉴스> 질의에 5일 오후 "상임위원회의 결정이라 입장이 따로 없다"고만 전했다. 안창호 위원장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는 5일 오후 인권위의 법인 설립 허가 직후 입장문을 내고 "기갑의 돌파력에 반인권 내란 동조세력 안창호가 무너졌다"고 밝혔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는 "오늘(5일)은 5년 전 변희수 하사의 발인이 있었던 날이다. 복직, 순직 인정, 국립묘지 안장, 보훈 그리고 법인 설립 허가까지 어느 하나 쉽게 이루어진 일이 없었다"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긴 싸움을 이어온 사람들의 노력 끝에, 또 하나의 매듭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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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 선생이 1861년 창도한 동학(東學)은 흔히 서세동점의 물결에 따라 밀려온 서학(西學)의 대칭개념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동학의 '동(東)'은 지정학적 대칭 용어가 아닌 우리나라 고대 국호처럼 불려진데서 기원한다.

예부터 우리 나라는 '동방에 있는 밝은 나라'라고 하여 동국(東國)이라 불렀다. 고대 중국에서는 동이족(東夷族)이라고도 하였다. '동'과 관련하여 많은 저술이 이루어진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동국여지승람>·<동국명산기>·<동국문헌>·<동국문헌비고>·<동국문헌절요>·<동국사략>·<동국세시기>·<동국여지승람>·<동국지리지>·<동국통감>·<동사강목> 등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한의학을 동의(東醫)라 부르고, <동의보감>은 우리나라 의서를 한데 모아 편찬한 조선조 때의 으뜸가는 의학서를 일컫는다.

동학은 우리 문화, 우리 학문, 우리 철학, 우리 종교, 우리 사상을 집대성한 것으로, 결코 배타적이거나 그렇다고 국수적이지 않은 민족사상이고 시대정신이고 민족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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