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율곡의 개혁론 '만언봉사'

조선왕조는 왜란과 호란이라는 양대 전란을 겪고도 이씨왕조가 지속되었다. 막상 전란을 일으킨 일본과 참전국인 명나라 왕조가 바뀐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조선왕조 역시 창업→수성→경장→쇠퇴 멸망이라는 봉건적 역사관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다.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은 역성혁명을 통해서라도 신체제가 요구되었지만, 현상유지의 수준에 머물렀다. 당시의 국가적 상황을 율곡 이이는 이렇게 분석했다.

지금 나라의 형세는 만간(萬間)의 큰 집이 여러 해 지나도록 손질을 하지 않아 옆으로 기울어지고 위에서 빗물이 새며 대들보와 서까래는 좀이 먹고 썩어가며 단청은 다 벗겨졌는데 임시로 받쳐주고 잡아끌고 하여 구차하게 아침 저녁을 넘기고 있는 것과 같다.(<율곡전서>, 권3, '소태')

율곡은 1574년 1월 우부승지가 되어 선조에게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올렸다. 당시 지진이 일어나고 자연 재이가 심해 선조가 신하들과 재조·초야의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널리 의견을 구하는 교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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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이틀 전, 집 근처에서 일주일에 한 번 서는 새벽시장에 내려갔다. 봄나물을 살 생각이었다. 명절을 앞둔 장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봄나물을 찾기 위해 입구부터 세심하게 살피며 걸었다.

곳곳에 시금치가 보였지만 내가 찾는 건 아니다. 그 틈에 할머니 한 분이 여린 머위를 앞에 두고 계시는 게 보였다. 벌써 머위가 나왔나 보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할머니께 다가가서 값을 물어보니 많이 담은 건 2만 원, 그보다 작게 담아놓은 건 만 원이라고 하신다. 제철 때보다 세 곱절 값이다. 머위 만 원 어치를 샀다.


조금 더 가니 내가 찾던 시금치가 있다. 해풍을 맞고 옆으로 누워 자란 시금치다. 대가 길쭉한 시금치보다 훨씬 달짝지근하고 맛있다. 시금치를 사고 냉이와 달래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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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근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어떤 언론이 어떤 행태를 보였는가를 생생히 목격했다. 노골적으로 특정 정치 세력에 편향된 보도를 일삼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중대 사안을 회피하거나 희석시키는 언론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날이 갈수록 커지는 자본권력 앞에서 재벌이나 부동산 토건세력 등 기득권에 일방적으로 편승하는 보도를 하는 언론도 부지기수다. 언론의 '자유'가 국민의 판단을 그르치는 '권력'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주권자 국민에 의한 언론개혁운동, 이제 '감시'를 넘어 '결정'의 시대로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언론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행했던 왜곡 보도 저항과 불매운동이 언론의 잘못을 꾸짖는 '채찍'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언론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장치가 필요하다. 포털의 알고리즘이 뉴스의 가치를 결정하고, 자극적인 제목이 저널리즘의 품격을 실종시키고 있다. 시민은 더 이상 뉴스의 단순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 주권자로 나서야 한다.

현재 제22대 국회에 계류 중인 '국민참여를 통한 언론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일명 '미디어 바우처법', 김승원 의원 등 발의)은 그 출발점이다. 언론개혁 운동의 완성이자, 시민이 직접 뉴스 생태계의 재원을 결정하는 '적극적 주권 행사'의 시작이다. 이미 제21대 국회 때도 김 의원 등이 법안을 발의했지만 불발된 바 있다. 이제는 국회가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

미디어 바우처는 시민은 각자 자신의 몫으로 책정된 언론 지원 예산(바우처)을 자신이 지지하는 언론에 지원하도록 정부에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다. 개별로는 소액이지만 모이면 큰 금액이다. 공정하고 진실된 보도를 하는 언론에게 그 지원이 모일 수밖에 없다. 연간 1조 원 규모의 정부 광고 집행 권한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 법안은, 언론이 권력과 자본이 아닌 오직 '시민'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혁명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미디어 바우처는 결코 검증되지 않은 이상론이 아니다. 저널리즘의 위기를 겪고 있는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미 국가의 직접 지원 대신 '시민의 선택'을 통한 배분 방식을 대안으로 채택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사례는 '언론 다원성'의 회복을 보여준다. AFP통신 이사를 역임한 줄리아 카제(Julia Cagé)는 거대 자본이 언론을 독점하는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미디어 민주주의 바우처'를 제안했다. 특정 대주주의 입김에 휘둘리는 언론이 아니라, 시민들이 선택한 비영리 재단 형태의 매체들이 자생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다. 프랑스는 청년층에게 신문 구독 세액공제를 제공하며, 미래 세대가 저널리즘의 가치를 체험하고 지탱하게 하는 마중물을 붓고 있다.

캐나다에서 2020년부터 시행된 '디지털 뉴스 구독 세액공제(DNSTC)'는 시민들이 유료 구독에 느끼는 경제적 부담을 국가가 분담해 준 사례다. 그 결과, 언론사는 광고주의 눈치를 보는 '조회수 경쟁' 대신, 독자들에게 직접 선택받기 위한 '고품질 심층 보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캐나다 정부는 이 제도가 저널리즘 기관들의 디지털 전환과 재정적 자립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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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연휴에 엄마 생신이 있었다. 늘 명절 즈음이 생일이라 젊었을 때는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올해는 연휴와 겹쳐 생일 전에 좋은 곳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고개를 저으시며 온 가족이 함께 갈비를 구워 먹자고 하셨다.

마음 같아서는 근사한 식당에서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멋진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많이 드시지 못한다며 집에서 가족들과 둘러앉아 먹는 한 끼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생일만큼은 조금 다른 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생일이신 엄마가 편한 자리가 더 중요하니 내 욕심으로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대식가도 아닌 식구들과 아직 어린 아이들까지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나를 기사 삼아 명절 준비 겸 갈비를 사러 대형마트에 다녀오셨다. 예전에는 좋은 고기를 팔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래에는 뼈만 들어 있었다며 한참 LA갈비에 대한 불평을 하셨다. 난 마음속으로 엄마의 불평을 다시 듣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갈비의 품질이 제발 괜찮기를 빌었는데, 그 바람이 통했나 보다. 다행히 이번에는 아래쪽까지 살이 잘 붙어 있는 품질 좋은 갈비였다. "진작 이랬어야지"라며 기분 좋게 말씀하시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딸의 음식 솜씨가 못 미더우셨는지, 생일에 먹을 갈비를 이틀 전부터 직접 준비하셨다. 내가 하겠다고 해도 한사코 말리셨다. LA갈비는 재워 놓아야 맛있다며 두 팩을 모두 손질해 두셨다. 배와 양파 등 각종 재료를 갈아 면보에 걸러내는 과정까지, 정성으로 하나하나 만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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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문이 섰던 자리가 허공이다. 성벽도 사라지고, 그나마 능선은 깎여 나갔다. 혜화문은 동쪽 작은 문이라는 '동소문'이기도 하다.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 성문 가운데 하나다. 일제강점기 도로 확장으로 철거(1928)되었고, 나중 지금 위치에 복원(1994)된다. 옛 자리의 높이에 맞춰 북쪽으로 살짝 옮겨 복원되었다. 문은 되돌아왔지만, 터는 허공으로 남았다.


성문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가르던 시대는 아니다. 왕조는 갔고, 공화정이다. 문도 더는 닫히지 않는다. 걸음을 통제하지도 않는다. 혜화문을 지나는 사람들은 성문을 '통과한다'기보다 곁으로 '스친다'고 느낄 터이다. 복원된 문은 기능보다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처럼 외따로 서 있다.

혜화문이 있던 자리를 이제 누구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도성은 남았으되, 도시도 그처럼 성곽을 기준으로 흐르지 않는다. 성곽이 더는 시각을 가두지 않고, 도시 활동은 성곽을 비켜 간다. 이 어긋남이 현재의 도성 풍경이다.

혜화문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옛 서울시장 관사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정책임자의 거처였으나, 지금은 '도성 안내센터'로 사용 중이다. 도성 복원에 진심이던 어느 시장의 겸손한 태도가 일궈낸 변화다. 집은 좀 더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하였고, 집안의 생활이 전시 대상이 되었다. 응접실과 정원은 더는 특정인의 향유가 아니게 되었다.


옛 관사를 천천히 둘러보며, 이 변화가 혜화문 복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요에 따라 기능이 변했고, 형상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도시에서 오래 남는 건 '용도'가 아니라 '형태'라는 사실을 이곳이 조용히 말하고 있다.

두 얼굴의 성북동

성북동은 한 방향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김광섭은 <성북동 비둘기>에서 이곳을 먹이를 찾지 못한 비둘기가 내려앉는 가난한 동네로 그렸다. 비둘기는 날지 못한 존재라기보다, 날아갈 이유를 잃은 존재에 가까웠다. 시인은 파괴되어 가는 자연과 문명에서 소외되어 비루한 존재로 전락한 인간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시가 쓰이던 시절, 성북동은 도성 변두리의 비탈을 따라 삶이 밀려들던 자리였다. 복개된 성북천 동쪽 언덕, 비둘기들이 앉았던 자리는 재개발로 곧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도시가 이처럼 찡그린 표정 짓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성북동 시간은 한 겹이 아니다. 조선 시대부터 성북동은 왕족과 고관대작의 별서(別墅)가 즐비한 고급 주거지였다. 도성에 가깝되 소란을 피할 수 있고, 북악과 낙산 사이의 지형이 바람을 막아 주었다. 성안의 중심 권력에서 한발 비켜선 대신,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가난과 별개로 이미 선택받은 땅이었다.


성북동 길을 걷다 보면 담장이 유난히 잦다. 낮은 담도 있고, 안이 보이지 않는 높은 담도 있다. 담장 안팎의 풍경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 경계는 생각보다 근엄하다. 담은 경계를 만들지만, 소리까지 막지는 못한다. 이 동네에서 삶의 차이는 분리보다 외면에 가까운 '병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동네에선 빈과 부가 충돌하기보다, 서로 공간을 달리해 머문다. 어느 공간에는 비둘기가 내려앉았고, 어느 공간에는 별장이 들어섰다. 같은 골목과 같은 비탈이 전혀 다른 삶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성북동 인상이 단정하게 정리되지 않는 이유는, 이 겹쳐진 시공간 때문이다.

성곽과의 관계 또한 성북동을 규정한다. 성 안도 아니고, 성 밖이라 단정하기도 어려운 모호한 위치다. 성곽 테두리에서 벗어났었기에, 오히려 생활 밀도에 더 치중했다. 성곽은 이곳을 보호하지도, 그렇다고 배제하지도 않았다. 그 모호한 거리감 덕분에 성북동은 늘 다른 방식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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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오랜만에 주어진 닷새간의 휴일이다. 그럭저럭 긴 듯한 시간이지만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고, 지친 몸에게 기나긴 잠을 허락하다 보면 금방 사라질 시간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렇다면 이 연휴 기간 진정 나를 위하면서도 신체적·정신적 부담은 주지 않을 활동이 있을까. 스크린 안에서 우리와 함께해 줄, 정주행하기 딱 좋은 '물 건너' 유튜버들을 소개해 본다.

지적인 재충전을 원한다면, 더 북 리오


신년 목표로 '올해는 책을 더 많이 읽어야지' 하고 다짐한 사람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허구한 날 쏟아지는 스마트폰의 알림과 바깥세상의 피로로 인해, 정작 목표를 포기하게 된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책의 '요약본'을 보는 것 역시 성에 안 차는 당신을 위한 채널이 바로 67만 구독자의 '더 북 리오(The Book Le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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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더 이상 '누가 더 오래 일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누가 더 똑똑하게 일하느냐'가 모든 경쟁의 판을 바꾸고 있습니다."

AI시대, 이런 류의 주장과 자주 마주치곤 합니다. 뭔가 불안해집니다. 뒤처지는 것 같습니다. 압박감이 밀려옵니다. 이어지는 주장, 이런 마음을 더 부채질합니다.

"AI를 통해 하루에 한 시간을 절약하는 사람이라면, 일주일 업무 시간이면 다섯 시간, 한 달이면 스무 시간, 1년이면 240시간입니다. 한 달 치 업무 시간을 앞서 나간다는 뜻입니다."

하루에 8시간, 주 5일 일한다고 계산하면, '나보다 더 똑똑하게 일하는 누군가'는 1년에 무려 한 달 이상을 더 일한다는 뜻이 됩니다.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이같은 주장들, <프롬프트 텔링>(필름)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지은이는 로사장(김다솔) AI교육브랜드 1프로클래스 대표입니다. 출판사에 따르면, AI를 자신의 사업에 도입한 지 3년 만에 매출을 두 배 이상 성장시켰다고 합니다.

"신입사원 고용한 상사라고 생각하라"


저자가 우선 강조하는 바는 AI에 대한 환상, 즉 "AI가 처음부터 마법처럼 모든 일을 뚝딱 해줄 거라는 환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AI의 작동 원리를 접하면,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AI는 사람처럼 실제 경험이나 직무 지식이 있는 게 아닙니다. 대신 수많은 텍스트를 학습하면서 '10년 차 전략가는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 '컨설턴트는 이런 구조를 쓰더라'라는 언어 패턴의 통계적 확률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흔히 접하는 생성형 AI의 경우는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계산된 시스템이란 설명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자연스럽게 '프롬프트적 사고'가 무엇인지 자신의 설명을 이어갑니다.

프롬프트, 생성형 AI 입력값을 뜻하는 이 단어에 '사고'를 조합한 이 말의 뜻. 저자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배경을 설명하고, 원하는 형식이나 톤까지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사고법"이라며 "다시 말해 AI를 도구가 아니라 협업 파트너로 대우하고, 그 파트너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디렉팅하는 능력"이라고 풀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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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텃밭에서 막 따온 푸릇푸릇한 상추를 씻을 때의 일이다. 거무스름하고 미끌미끌한 정체불명의 생명체에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알고 보니 달팽이였다. 달팽이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동심 속 달팽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끈질기기는 또 어찌나 끈질긴지, 아무리 흔들어대도 상춧잎 치맛자락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달팽이가 산다는 건 친환경 채소임을 인증하는 셈인데, 그 맑고 귀한 생명을 대접해도 모자랄 판에 온갖 물고문을 퍼부었다니. 그제야 내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재빨리 상춧잎에 태워 달팽이를 흙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부디 오래오래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지난 1월 3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경기도서관을 방문했다. 2025년 10월 개관한 경기도 광역 대표도서관이다. 9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완성된 이곳은 개관하자마자 도서관계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북적거림에 대한 망설임도 있었지만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핫플은 한창일 때 가야 제맛이니까.

거대한 규모에 주눅 들지 않으리라 마음을 다잡으며 들어선 순간, 뻥 뚫린 천장 아래로 경이로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쏟아졌다. 소문대로 거대한 달팽이의 모습이었다.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혹시, 그때 그?'

순간, 텃밭으로 돌려보냈던 달팽이가 떠올랐다. '친환경 상춧잎을 먹고 불로장생하더니 이렇게 거대한 존재로 환생한 걸까' 엉뚱한 상상이 솟구쳤다.

아래서 보면 달팽이, 위에서 보면 소라

"여기는 5층부터 올라가야 해."

서너 명 무리를 지은 중년 여자들의 대화가 들렸다. 그들 중 한 명의 말에 따르면 5층으로 올라가 전체를 조망한 뒤, 층층이 내려와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하다는 것이다. 은근슬쩍 합류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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