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두산퓨얼셀, 11%대 급등…블랙록 지분 증가 소식
두산퓨얼셀이 급등하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두산퓨얼셀 지분을 늘렸다는 소식이 전해져서다.2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두산퓨얼셀은 전날보다
 
나는 조그마한 오피스텔에 산다. 10평 남짓한 원룸형 오피스텔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혼자 살기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소중한 나의 삶의 보금자리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홀로 전세살이를 하며 이사를 다니는 것에 진절머리가 날 때쯤 나는 집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세 계약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집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계약이 연장될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집을 빼야 할 상황에 부딪치면 늘 예외 없이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곤 했다.

서울에 집이 이렇게 많은데 내 몸 하나 누일 전셋집 하나가 없다니, 이것이야말로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한탄과 고난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겨우겨우 전셋집을 구하는 일이 반복됐다. 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전셋집 구하기'에서 탈출하는 길은 하나, 집을 사는 거였다.  

혼자 살기 적당한 공간에, 집값도 많이 비싸지 않은 오피스텔을 샀다. 나의 피땀눈물로 한 푼 두 푼 모아놓은 돈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장만한 나의 보금자리는 크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따뜻하고 아늑했다.

남들은 아파트를 사서 두 배로 뛰었네, 몇 억을 남겼네 할 때도 그건 남의 이야기일 뿐, 난 그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심지어 이사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행복했다.

코로나19, 집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이 집에서 생활한 지도 4년이 흘렀다. 혹여 나의 소중한 집에 먼지라도 앉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쓸고 닦는 일은 이미 오래전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마음에 안식을 주는 나의 집은 여전히 좋았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마음에 삐걱삐걱 틈이 생기기 시작한 건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부터였다.
 
예전부터 난 '집순이'였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제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던 것 같다. 평일에는 회사에 다니니 당연히 집에 없었고, 야근이 생기거나 약속이 잡히면 집에는 잠시 들러 잠만 자고 나오기 일쑤였다.

주말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보고 싶던 영화를 보러 가거나, 하다못해 집에만 있기 답답해 근처 커피숍에서 혼자 커피라도 마시고 왔으니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었던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상황은 달라졌다. 주말은 물론이고,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평일에도 주야장천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삼시세끼를 집에서 먹고, 내가 좋아하는 믹스커피도 먹다 지쳐 라떼 커피를 배달 시켜 집에서 먹는 상황까지 와 버렸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방이 벽으로 막힌 집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단점들도 하나하나 눈에 띄었다. 그때쯤 집에 대한 나의 권태기는 시작됐다.
 
원룸형이다 보니 집의 한 곳에서, 정확히 얘기하자면 방 중앙에 놓인 탁자 근방에서 모든 일은 이루어졌다. 근무시간에는 탁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일을 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노트북을 치우고 밥과 밥찬을 탁자에 올려 밥을 먹는다.

저녁에는 무료함을 달래줄 책이 펼쳐져 있거나 색칠이라도 하며 시간을 때우라고 친구가 보내준 물감과 팔레트, 물통이 탁자에 올라가 있다. 업무와 식사, 취미생활 모든 게 만능 탁자에서 시작되고 끝이 났다.
 
베란다가 따로 없어 만능 탁자 옆에 자리한 빨래건조대는 지나다닐 때마다 걸리적거려 발에 채이곤 했고, 라면 하나만 끓여도 웬 설거짓거리는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더이상 그릇을 올려놓을 수 없는 작은 그릇 건조대를 산 지난날의 나를 탓하게 된다. 큰 걸 샀어도 놓을 데가 없었던지라, 한숨과 푸념을 내뱉는 나날이 늘어갔다.
 
베란다가 있었으면, 방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 거실이 따로 있었으면, 주방이 나눠져 있었으면, 바람과 소망이 하나둘 늘어가면서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작은 집에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빼꼼히 고개를 들었다.

집에도 권태기가 찾아온다 
 
 
TV에는 입이 떡 벌어지는 인테리어에 막힌 속도 뻥 뚫어줄 듯한 시원한 한강뷰를 자랑하는 연예인들의 삐까뻔쩍한 집들이 끊임없이 보이고, 일반인들에게 집을 구해주는 프로그램에서조차도 몇억만 있으면 저런 집에서 살 수가 있구나 깨닫게 해주는 휘황찬란한 집들을 보면서 나의 권태기는 더 깊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회사 동료가 전세를 구하지 못해 결국은 반전세로 집을 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문득 이 집이 아니면 갈 곳도 없는 내가 불만만 가진다고 달라질 게 무엇인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집은 장점이 참 많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초역세권에 혼자 살아도 문제없을 만큼 안전하다. 도로와 가까이 있어도 소음이 들어오지 않아 조용하고, 낮에는 볕도 잘 들어온다. 집이 크지 않으니 청소하는 데 힘을 빼지 않아도 되고, 옵션도 잘 되어있어 가구를 별로 사지 않았어도 방이 휑해 보이지 않고 안락하다. 무엇보다 온전히 나에게 안식을 주는 나만의 공간이다.
 
사람 간에도 시간이 흐르면 권태기가 오게 마련이다. 4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면서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의 기쁨과 행복을 지워버리고 집에 대한 소중함을 잊어버렸나 보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이런 시기에 이 집이 없었다면 과연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을까? 집을 구하러 다니느라 고난행 특급열차를 수십번 탔을 거다.

그래서 올해는 '우리집과 권태기 극복하기 프로젝트'를 추진할 생각이다. 소소하게 조그마한 향초나 액자를 사서 집의 분위기를 바꿔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지난 4년간 내가 무탈하게 지낸 건, 나의 집이 나를 돌보아주었기 때문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이사의 시름을 잊게 해준 작지만 소중한 나의 집. 페르소나에 가린 내가 아닌 진짜 나의 본모습을 가장 잘 알고, 꼬질꼬질한 내 본연의 모습도 다 받아주는 우리 집. 삶에 지쳐 허덕이는 내가 온전하게 쉴 수 있도록 언제나 포근히 안아주는 나의 집을 오늘부터 조금 더 사랑해야겠다.
바야흐로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의 전성기다. 애정하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 몇 개 중 절반 이상은 남자 연예인들의 요리 솜씨 배틀의 장이 된 지 오래다. 그들의 요리는 '요리 좀 해 본 여자'인 나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남편의 요리가 심상치 않다. 멸치와 건새우,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내어 좀처럼 맛 내기 어려운 맑은 국물 요리까지 도전한다. 가격에 비해 내용물이 부실해서 자주 못 시켜 먹는 해물찜을 하는가 하면, 배달 음식의 최강자인 치킨까지 오븐에 구워 간장 양념을 입혀 내온다.
 
 
오늘 아침엔 입맛이 없어 전날 오븐에 구워둔 군고구마로 대충 때우려고 했더니, 딸을 대동하여 마트에서 재료를 사 와서는 북엇국을 끓여냈다. 일단 집 안으로 들어오면 웬만해선 다시 바깥출입을 안 하는 사람이. 해장할 일도 없는데 아침에 웬 북엇국? 내가 요리할 것이 아니라면 이런 생각은 머릿속에만 묻어두어야 한다.

국물을 한 번 떠먹어보니 와, 진짜, 미쳤다. 도대체 뭘로 간을 낸 것인가. 학교 급식으로 나온 북엇국보다 몇 배는 훌륭한 맛에 맛 본 혀가 먼저 놀란다. 캬, 소리가 절로 나는 시원한 감칠맛을 어찌 이리 잘 살렸는지, 남편의 오늘 요리는 절로 엄지 척!을 안 날릴 수가 없다.

북엇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잘해 먹지 않는 나지만, 오늘 아침 큰 사발로 담아준 북엇국을 거의 다 비우고는 아침부터 포만감에 작은 눈이 더 가늘어졌다. 그러다 궁금해진다. 남편은 왜 이렇게 틈만 나면 요리를 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 맛있는 걸 자꾸 해서 나를 뚱땡이를 만들려고 하냐, 고 물어보니 뚱땡이가 되어야 그만둘 거 아니냐고 남편은 농을 친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
 
  
  
남편이 30대였을 때, 아침 일찍 출근해 밤 늦게 퇴근하느라 주중에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가족 중 나 한 사람뿐이었다. 아이들은 주말이 되어서야 침대에서 잠자는 아빠 얼굴을 동물원의 곰 보듯 겨우 구경(?)할 수 있었다.

아빠가 고팠던 아이들은 주말이면 아빠와의 재밌는 놀이 시간을 기대했을 거다. 하지만, 일주일간 못 잔 잠을 몰아 자야 했던 남편은 아침도 거른 채 반나절을 잠으로 날려버려서 아이들의 원성을 사곤 했다. 잠이 깨어 있을 때도 못 다 풀린 피곤을 온몸에 검정 롱패딩처럼 두르고는 TV와 핸드폰만 멍하니 보며 나머지 주말 시간을 보내던 사람이었다.

딸은 그 시절의 아빠를 '항상 뭔가에 화가 나 있는 사람' 같았다고 회상한다. 대한민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는 30~40대 가장들의 삶은 얼마나 여유가 없고 각박한 것인가. 퇴사 관련 책이 지칠 줄 모르고 유행하는 걸 보면 짐작은 되지만, 맞벌이를 하는 아내의 입장으로 무한한 아량을 베풀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40대가 넘으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30대 끝자락에 이직한 회사에서 업무 강도면에서 조금은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였는지. 40대가 진행되면서 급격히 아내의 에스트로겐이 옮겨간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내 몰래 손댄 주식이 쪽박을 차는 바람에 이제는 정말 까딱하면 쫓겨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던 건지.

언젠가 퇴직 이후 그동안 'OOO한 사람'으로 불렸던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져 버리면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불안과 우울을 겪을 수 있다는 내용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OOO한 사람'이 한 가지로 규정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 뿐 아니라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 '때때로 오카리나를 즐기는 사람', '오마이뉴스에 가끔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사로 보내는 시민기자'와 같이 스스로에게 여러 정체성을 부여하려고 노력 중이다. 남편에게도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은 그런 건 생각하기도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퇴직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놀 거라면서.

처음 만났던 20대 때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인 사람이었으니, 퇴직 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면 그걸로 된 거다. 그런데 요즘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뭔가 복잡하게 만들어 먹는 부산함이 부담스러워 대충 먹자고 해도 남편의 요리는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그 지평을 넓혀가는 중이다. 아무것도 안 할 거라며 귓등으로 흘린 척하더니, '요리하는 남자'로 정체성을 더하기로 작정한 것일까?

밥 식(食)에 입 구(口) 자가 합쳐져 '한 집에서 함께 끼니(밥)를 같이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식구(食口). 우리 4인 가족, '식구'들의 입맛을 책임지는 주방장인 남편이 저녁 요리로 택한 메뉴는, 비교적 쉬운 조리법인 '카레'다. 유통기한이 거의 되어 얼른 처분해야 할 돼지고기 식재료 때문에 택한 메뉴였다.

남편은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비주얼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대충 물 붓고 모든 재료를 통째로 넣어 끓여 내는 손쉬운 조리법을 두고, 돼지고기 특유의 노린내를 잡기 위해 와인과 후추로 재어 놓는 과정을 건너뛰지 않는다. 
 
 
감자와 당근, 사과의 모양이 뭉그러지지 않도록 기름 둘러 볶는 과정을 절대 거르지 않는다. 지나치게 끊여서 모양이 퍼져 보이게 놔두지 않는다. 밥 위에 카레를 얹은 뒤엔 부족한 초록 빛깔을 더하기 위해 파슬리 가루를 톡톡톡 뿌려주는 걸 놓치지 않는다. 이렇게 들이는 정성이 한가득이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아빠가 만든 거 진짜 맛있지 않니? 이제 아빠는 백종원 주니어라 불러야겠다."

맛있는 요리를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기 미안해서 나도 칭찬이라는 '양념'을 뿌려본다. 딸은 나보다 한 술 더 뜬다.

"주니어라니! 아빠가 백종원보다 몸집이 훨씬 큰데! 아빠는 빅big종원이지!"

그래, 맞다. 아빠는 이제부터 'Big종원'이다!
한 해가 아무런 성과 없이 허무하게 사라지던 2020년 연말,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주식 투자를 권유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식에 투자해서 쏠쏠한 이익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투자를 하면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나는 주식 투자에 관심이 없었다. 주식 투자는 결국 원금을 잃거나 빚만 남게 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연말부터 주식에 대한 뉴스가 많아지고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쏟아졌다. 지금이라도 주식 투자를 하지 않으면 혼자만 손해를 보는 것 같아 조급함이 생겼다.

결국 2020년 12월 28일 첫 주식 투자가 시작했다. 휴대전화로 증권 계좌를 개설하고 소액을 증권사에서 추천하는 여러 ETF 상품에 투자했다. 막상 투자를 하니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졌다. 그때까지 주식이 나에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지 못했다.

상승, 상승, 상승...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돈 벌고 있었구나
 
 
드디어 롤러코스터보다 짜릿하고 스카이다이빙보다 무서운 주식 투자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내가 투자를 시작한 후에도 수익률이 상승했다. 주식창은 등락(전일 가격 대비가)을 상승은 빨간색 화살표로, 주가 하락은 파란색 화살표로 표시한다. 투자 종목 전체에 빨간색 화살표가 나타났고 누적 수익률이 올라갈수록 흥분 지수도 상승했다.
 
다음날도 모든 투자 종목이 상승했고 수익률이 더 커졌다. 종합주가지수도 연일 급상승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 속의 쾌재를 부르며 나의 투자 결정에 흡족했다. 3일 연속 주가 상승이 계속되자 진작 주식 투자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때까지 나는 주가 하락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돈을 벌고 있었구나. 남들이 돈을 벌 때 나만 세상 물정 모르고 주식 투자를 하지 않았구나. 미리 경제 공부도 하고 주식 투자를 할 걸... 지금이라도 투자 금액을 늘려서 더 큰 수익을 내야겠다.'
 
그동안 관심이 없던 경제 뉴스를 찾아 읽고 매일 주식 거래가 시작되는 아침 9시를 기다렸다. 주말이 되면 주식장이 열리는 월요일이 기대되었다. 직장 생활의 만성 스트레스인 월요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주식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 주식 관련 온라인 카페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 보니 내 투자 금액은 턱없이 적었고 투자 기간도 짧았다. 주변에서 많은 수익을 거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웠고 나도 빨리 큰 수익을 내고 싶었다.
 
연일 뉴스에서는 주가 상승을 예측했고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넘어가면서 주식 투자를 전 국민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2020년에 주식을 투자한 사람은 30%의 수익률을 거두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상상할 수 없는 개인 투자자의 투자금이 주식 시장에 유입되고 주식 거래 통장 증가와 주식 투자 예치금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기업의 실적 개선 기대와 다양한 투자 호재가 뉴스에서 쏟아졌다. 주가는 그동안 꾸준히 올랐고 내가 투자를 시작한 지 5일 만에 수익률이 15%까지 치솟았다.

투자금을 늘려야 한다... 연금 해지, 적금 해약, 통장 탈탈
 
하루 일과 중에 주식 시세를 보는 시간이 늘었고 투자금을 늘리기 위한 방법을 고심했다. 먼저 퇴직 연금통장을 해지했고 적금을 해약하고 통장 잔고를 모두 모아 투자금을 늘렸다. 2021년 연초에도 주가는 놀라울 정도로 상승을 이어갔고 나는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극심한 흥분 상태가 되었다. 앞으로도 더 높은 수익이 예상되기 때문에 무조건 투자금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너무 가파르게 수익률이 상승하는 것이 두려웠고 언제 주식을 매도해야 할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선 투자금을 늘리기로 결심했다. 적금을 해약하고 통장 잔고를 싹싹 긁어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나 투자에 대한 조급함과 갈증은 더 커졌다.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대출을 알아봤다. 우선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인터넷 대출을 신청하고 대출금이 나오자 주식에 바로 투자했다. 그런데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것이 조금씩 불안해졌다.

소위 빚투(대출금을 받아 하는 투자)는 위험성이 크고 손실이 나면 감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투자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투자를 해서 손해를 본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반대로 과감하게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마음이 조급했고 무조건 수익률이 오를 것 같았다.
 
나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식 앱에 자동 매매 조건 설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 주가가 떨어질 때를 대비하여 내가 주식을 사들인 가격으로 자동 매도를 설정했다. 자동 매도를 설정하니 안전 장치가 생겨 안심이 되었다. 새해가 되어 며칠 만에 종합주가 지수는 3200까지 치솟았다. 대출을 받아 투자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대출 받아 투자했다, 올랐다, 뿌듯했다
 
 
투자 금액이 커지자 틈만 나면 휴대전화로 주가를 보게 되었고 틈틈이 주가 상승 폭이 작은 종목을 팔고 상승 폭이 큰 종목으로 갈아타기를 했다. 예상 수익금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뿌듯했고 수익금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마음이 불편했다. 점점 나도 모르게 주식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더 큰 수익금을 상상했다.
 
나는 투자액을 더 크게 늘리기로 결심했다. 이미 자동 매매 설정으로 원금은 보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은행 창구에 추가 대출을 신청하러 갔다. 추가 대출은 심사 시간이 필요해서 당일 대출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돈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하루 대출이 늦어질수록 나의 이익도 감소할 수 있기 때문에 한시가 급했다.

그런데 대출을 신청한 날 오후가 되면서 열흘이 넘게 상승하던 주가가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종목에 파란색 화살표(주가 하락)가 나타났다. 다행히 하락폭이 크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예상 수익금이 줄어들었다. 다음날 나는 주가가 떨어진 종목을 팔고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을 더 매수하였다. 그러나 다음날도 주가는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보유한 일부 종목에서 상승이 있었지만 기존의 수익금은 점점 줄어들었다. 뉴스에서는 개인투자자의 투자금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수익률이 점점 떨어졌다. 나는 줄어든 예상 수익금을 보며 속이 쓰렸다. 수익금이 클 때 진작에 팔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일시적인 조정 시기이고 곧 주가는 급상승할 것이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음날 추가 대출이 승인되었고 거액의 대출금이 내 통장에 입금되었다. 그런데 주가가 계속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망설였다. 과감하게 투자를 해서 주가 상승을 기대할지, 주식 투자를 일시 중지하고 상황을 지켜볼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하루 이틀 주가를 지켜보고 거액의 대출금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은행 대출을 받았다,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망설였지만

다음날 기대와 달리 수익률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매입한 주가는 원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주가 반등을 기대하고 원금 보존의 안전 장치로 설정한 자동 매매 설정을 해지하였다. 그러나 그다음 날 주가가 무서운 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주가그래프가 롤러코스터의 하강 곡선을 그리며 급락하고 있었다.  

나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주식 매입가 아래로 떨어진 종목들을 급하게 매도하였다. 일부 보유 종목에서 작은 수익을 냈지만, 결국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간신히 하루 만에 투자했던 모든 종목 매도했다.

큰 투자 손실 없이 주식을 모두 매도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투자 원금의 손실이 생겨서 속이 상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주식 투자를 이어갈지, 여기서 주식 투자를 그만둘지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주식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주가가 하락할 때 마음고생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0일간의 주식투자 기간 동안 수익률이 올라가면 흥분되고 기대감이 컸다. 머릿속에서 투자의 미래는 장밋빛이었고 기대 수익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그러나 단 3일 동안 주가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자 두려움과 걱정이 커졌다. 원금 손실이 발생하자 마음이 힘들어 더 이상 주식 투자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결국 주식 투자를 중단하고 급하게 받은 대출을 전부 상환했다. 마지막으로 휴대폰에서 주식 투자 앱을 지웠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여전히 주가 폭등과 투자 과열을 보도하고 있다.

주식 투자 앱을 지웠다

이 시간 누군가 나처럼 주식 계좌를 급하게 개설하고 있는 돈을 모두 주식에 투자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대출을 받아 주식 투자를 시작할 것이다. 나는 투자한 사람들이 모두 은행 적금처럼 수익이 생기면 좋겠다. 소중한 원금의 손실이 발생하거나 빚을 내서 투자했는데 오히려 손해가 생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문가들이 주식 투자는 여윳돈으로 하고 장기 투자를 하라는 의미는 뭘까? 그만큼 위험 부담과 변수가 많은 것이 주식 투자라는 것이다. 투자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건전한 투자를 한다면 적절한 수익률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주식의 큰 흐름은 실물경제가 결정한다. 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개인투자자 10명 중 4명이 손실이 생겼다고 한다. 2020년에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투자 종목에 따라 손실이 발생한 개인투자자도 많았다.
 
나는 솔직히 주식 투자라는 이름으로 주식 투기를 했고 단기간에 큰 수익을 기대했었다. 주식 투자가 유행인 요즘 높은 수익률의 유혹을 참고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높은 수익만을 기대하고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마치 불나방이 불을 향해 뛰어드는 것처럼 언제든 불행한 결과가 생길 수 있다. 과열된 주가 상승의 거품이 꺼지면 순식간에 투자금이 줄어들 수 있다.
 
누군가 투자로 큰 이익을 얻어 기뻐하고 있다면 누군가는 큰 손실로 울고 있는 것이 주식 시장이다. 주식 투자를 하는 동안 나는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고 주가가 급등할수록 내 일의 가치(월급)가 한없이 초라하고 의미가 없어 보였다. 주가에 따라 나의 감정선은 오르락내리락하며 같이 널뛰기를 했다.
 
주식 투자를 해 보니 투자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일확천금을 바라는 내 욕심이 지나친 것이고 절제할 수 없는 욕망이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쉽게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에 상대적 박탈감과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조급함을 느꼈었다.
 
미래를 위해서 지출을 줄이고 돈을 모으는 습관은 필요하다. 하지만 일확천금을 기대하고 조급하게 과도한 투자를 하면 오히려 고통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자신은 결코 원금을 잃지 않을 거라는 믿음, 누구보다 재테크를 잘 할 수 있다는 자만은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착각이라는 것을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았다.   
  
이제 나는 휴대전화에서 주식 앱을 지우고 주식 투자 없는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새로운 투자 대상인 '나' 자신에게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저녁 시간에 가볍게 공원을 산책하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가까운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마음의 여유를 즐긴다.

미래를 아닌 현재의 나에 대한 투자는 점점 만족감을 준다. 매 순간 나의 삶을 존중하고 가치 있게 사는 것은 시간 부자, 마음 부자가 되는 가장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꽃나비 나풀거리는
    봄날께나 답신을 쓰겠다
         -이상옥 디카시 <깊은 침묵>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고향집 연못도 꽁꽁 얼어 몇 줌 안 남은 물에 의존해서 겨우 목숨을 지탱하는 금붕어도 깊은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연못 속의 금붕어를 자세하게 관찰하면서 혹 금붕어도 얼음 속에 냉동 상태로 갇힌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다. 꼼짝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 그랬다.
 
2월이 가까워 오니 조금씩 상황이 달라진다. 얼었던 연못도 정오의 햇살과 함께 해동이 돼 얼음 속에 갇혔던 것 같은 금붕어들도 지느러미를 흔들며 유영을 시작한다. 취미로 키우는 양봉 몇 통의 벌들도 기지개를 편다. 죽은 것처럼 꼼짝하지 않던 벌들이 따뜻한 햇살 내리는 정오 전후에는 벌통에서 나와 어디론가 날아가기도 하고, 작은 연못에서 물을 공급 받기도 한다.
 
아직 봄은 멀리 있지만 겨울 한파 속에서도 언뜻 봄기운을 느낀다. 며칠 전에는 사천양봉원에서 화분떡을 사서 벌들에게 먹이로 공급해 주었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해서 설탕을 조금 물에 녹여 공급해주니 벌들이 활기를 띤다. 아직도 고향집 인근의 텃밭에는 과수나무들만 을씨년스럽게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온갖 초록들이 고개를 비죽비죽 내밀 것이다.
 
올해는 어머니가 가꾸던 텃밭도 제대로 좀 관리를 해볼 생각이다. 자주 제초작업도 하고, 과수나무 전정도 하며 고추나 상추 등도 가꾸어볼 것이다. 코로나 지나면 베트남 호치민의 메콩대학으로 갈 생각에 고향집에서도 임시로 거주하는 것처럼 별다른 계획없이 하루하루 살았는데, 요즘 들어 생각을 좀 바꾸고 있다.     
 
한 달 전부터 오른쪽 팔이 저려서 견디다 할 수 없어 마산의 신경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별 차도가 없길래 고성읍내의 한의원서 침도 맞고 있다. 며칠 전부터는 의사 소견서를 가지고 진주의 경상대학병원에서도 진료를 받는다. 3차진료기관이라 개인병원에서 치료 받던 소견서를 지참하지 않으면 진료를 받지 못한다. 병원 출입을 잘 하지 않아서 그런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과잉진료로 환자들의 불신을 사는 사립병원도 없지는 않은데, 국립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니 의사선생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갔다. 국립대학병원이어서 그런지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벌써 다른 느낌이었는데,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담당 의사선생님은 히포크라테스 선서 그대로 인술을 베푸는 것처럼 보였다.   
 
새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감격을 느끼고 있다. 나이가 들면 이민 갔던 사람들도 의료시스템 등이 좋은 대한민국으로 다시 들어온다고 하는데, 이 좋은 나라를 두고 나이 들어 베트남에서 체류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과연 옳은 생각인가, 하는 회의가 요즘 든다.

사실 병원만 아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은 곳에서 통행료를 교통카드로 줄 때도 담당 직원들의 태도가 정중했다.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 물건을 고르다 몰라서 안내원에게 묻기라도 하면 친절한 답변이 돌아온다. 민원으로 면사무소에 들러 서류 하나 발급할 때도 완벽한 시스템에 감동을 받는다.
 
대한민국은 이미 경제대국을 넘어 민도나 문화 전방위에서 걸쳐서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 부쩍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너무나 피상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이고 순진한 생각일 수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나풀거리는 꽃나비를 보며 봄이 왔음을 알듯이, 아직은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꽁꽁 얼어 붙은 마음들로 깊은 침묵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만 정녕, 대한민국의 봄날이 머지 않았다. 미리 봄날의 답신을 이렇게 쓴다.    
사망신고 시 재산조회 통합처리 신청을 하면 '재산조회 통합처리 신청 접수증(아래 접수증)'을 줍니다. 왼쪽 상단에 접수번호가 나오는데 이 접수번호로 지정된 사이트에서 고인의 금융 재산을 조회할 수 있습니다.

사망신고 후 1주일 간 여기저기서 문자가 올 것입니다. 굳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통합된 조회 결과를 한번에 열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접수증을 보면 대단히 많은 사이트들이 나와있는데 3개의 사이트만 확인하면 됩니다. 먼저 금융감독원 사이트입니다. 금융감독원 사이트에서는 은행-보험-제2,3금융권 관련한 고인의 금융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은행권의 경우 통합조회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3주 정도 시간이 걸리니 그동안 마음 쓰지 마시고 편하게 기다려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3주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위 사진과 같이 금융감독원 홈페이지(www.fss.or.kr)에 들어가서 전체메뉴 클릭 후 상속인 조회를 선택합니다. 신청인(접수증에 기재된 신청자)의 이름과 접수번호를 넣어 전체사항을 조회합니다. 고인에게 보험이 있다면 처리방법에 대해 따로 보험사와 연락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국민연금과 세무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각각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www.nps.or.kr)와 홈택스 홈페이지(www.hometax.go.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국민연금과 세무관계는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서 열람이 안 되기 때문에 별도 확인이 필요하며, 그 외 접수증에 기재된 많은 사이트들은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 통합되어 나오니 들어가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각각의 자료는 1부씩 출력해두시면 편리합니다. 나중에 법원에 제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청일로부터 3개월까지만 조회가능하므로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 고인의 재산을 확인하였으니 이를 상속(단순승인) 받을지, 포기(상속포기)할지, 고인의 재산범위에서만 채무를 정리하고 남은 재산을 상속할지(한정승인) 정해야합니다. 각각이 어떻게 다른지 다음편에서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이구 속 쓰려. 왜 그러지? 갑자기 속이 쓰리기 시작하네."
"아빠 괜찮아? 많이 아퍼?"
"아니 그냥 속이 좀... 이러다 말겠지. 걱정하지 마라."


수술을 거부하고 자연치유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두 아들(이후 두 행자로 표기)이 걱정할까봐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고양이 발톱 같은 날카로운 것이 위장을 박박 긁어댔습니다.

좋은 먹을거리만 골라 먹고 신선 체조나 다름없는 기혈운동과 명상을 해가며 암과 함께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는 둥 오만방자 건방을 떨어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두 아들의 보살핌으로 잘 살고 있다고 떠벌여대고 있었지만, 어디 암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만만한 일이겠습니까?

간혹 속 쓰림이 은근슬쩍 기어 나올 때마다 따듯한 물을 마시거나 생감자를 갈아 마시면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 두 가지 방법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암환자, 그것도 위암 환자의 속이 멀쩡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으니 내심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위암 3기에 수술하지 않으면 1년밖에 살 수 없다는 암 산업의 통계치와 더불어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라는 프랑스의 어느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며 그럼에도 살아야 할 방도를 모색했습니다.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기 마련, 멀쩡하던 뱃속이 왜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는지 그 원인을 추적해 나갔습니다.

늘 먹어 왔던 음식들이기에 적어도 먹을거리가 속 쓰림의 원인을 제공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속 쓰림이 오기 며칠 전부터 게으름을 피웠던 것입니다. 밥을 먹고 나면 꼬박꼬박 산책을 나섰는데 한두 차례 빠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걸음걸이며 몸동작, 호흡 하나 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던 기혈운동이며 명상 또한 대충 대충 넘어갔습니다. 그리 했는데도 별 이상이 없자 그 며칠 전에는 스스로 몸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겠노라며 눈자위에 다크서클이 선명하도록 어리석게도 밤새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자만심으로 가랑비에 속옷 젖듯 대충 대충 했던 예전의 그 오만하고 게으른 습이 몸과 마음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암환자답지 않게 3개월 가까이 별 이상이 없자 꾸준히 먹어왔던 한약을 믿고 게으름을 피웠던 것입니다. 사사건건 몸 관리에 시비를 걸어오던 두 행자 역시 마찬가지로 늘어졌습니다.

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한약을 복용하면서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 빠졌음에도 지 애비가 아프기 이전보다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어지간한 지게질에도 끄떡없는 저력을 발휘하자 긴장의 끈을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늘어짐과 함께 찾아온 고통

속 쓰림과 함께 한약을 복용할 때마다 소변보기가 겁날 정도로 오줌줄기가 막힌 듯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여 3개월 가까이 복용했던 한약도 잠시 끊어 보았습니다. 한약을 멈추자 오줌 줄기는 시원하게 뚫렸는데 속 쓰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사나흘 지속되었습니다.

진통제의 유혹을 이겨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기혈운동 명상 식이요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마음자리를 다져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점점 예민해져 두 행자와 전에 없던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니들 요즘 너무 늦게 일어나는 거 아녀? 일찍 좀 일어나자. 몇 번이나 말해야 하냐."
"밤늦게 노래 만들었구먼."
"노래는 무슨. 요즘은 매일 컴퓨터 게임만 하더구먼."
"요 며칠 그러긴 했지. 머리 식히려고."
"핑계도 좋다."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두 행자. 이전에는 늦은 밤까지 노래를 만들거나 연주를 했는데 지 애비와 함께 축축 늘어지고 있었습니다. 밤늦게까지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내면에 숨겨져 있던 습관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고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다 보니 두 행자에게 사소한 일에도 화를 냈습니다.

"야! 아궁이 안에 장작을 그렇게 쌓아 놓지 말라고 했지! 그렇게 하면 불이 잘 안 붙는다고 했잖아, 이 자식들! 몇 번이나 말해야 되냐. 내가 말하면 건성으로 듣지."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녀 이눔들아. 아빠가 얘기하면 제발 좀 새겨들어라. 내가 뭐라고 했냐. 행자 생활 하듯 하라고 했잖아. 행자는 그냥 묵묵히 하라는 대로만 하믄 되는 겨. 뭔 말이 그렇게 많어? 하라면 하지. 그러고 니들 일찍 일어나겠다고 약속 해놓고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나는 겨? 다시 예전대로 돌아가는 겨?"

"아빠, 너무 예민해지신 거 아녀?"
"이눔 자식들이 지금 니들 얘기하잖어! 자꾸만 화나게 만들겨?"


두 행자 몰아붙이기

그렇게 암환자 주변의 가족들이 힘들어 한다는 말을 스스로 실감할 정도로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며 죄 없는 두 행자를 쥐 잡듯이 몰아붙이곤 했던 것입니다. 보통 화를 내면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어 한두 시간이면 그 화 기운을 제어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화 기운이 반나절 이상 지속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속에 있는 불만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부자지간에 서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지 애비의 화 기운을 피해 잠시 숲 속 텐트에서 지내던 두 행자가 돌아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잘못했어."
"그려 알았다. 아빠 몸이 예민해져서 그러니까 니들이 이해해라. 그리고 니들 아빠한티 불만 있으면 어떤 불만이든 얘기 해 봐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큰 행자부터 입을 열었습니다.

"... 어려서부터 아빠가 나한테 약은 놈이라고 할 때 마음이 안 좋았어."
"인효 너한티 그런 거 나도 후회하고 있다. 사실은 너한테 약은 놈이라고 한 것은 사람들 앞에서 지 자식 똑똑하다고 하기가 민망해서 그런 겨. 너 머리 좋잖아. 우리 삼행자 중에 젤 좋잖아. 그래서 그런 겨.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했다. 그건 아빠가 잘못했다."

"이제 그런 말 안 했으면 좋겠어."
"그려 그러마. 혹시 입버릇처럼 약은 놈이라고 해도 이해해라. 근디 너 동생한티는 좀 그랬잖아."
"인상이한티는 좀 약게 굴긴 했지. 그건 내가 잘못했다. 인상아 미안하다."


작은 행자 송인상 또한 큰 행자 송인효처럼 어려서부터 아빠에 대한 불만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말수가 별로 없는 녀석이었기에 내가 그 불만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 이유를 설명해 줘야 했습니다.

"인상이 너는 어려서부터 생각이 없는 놈이라고 그랬는데 그게 맘에 많이 걸렸다. 너도 그 말이 내키지 않았지?"
"그런 거 같네. 아빠가 늘 생각 없이 착한 놈이라고 해서 그게 힘들었어. 부담이 컸어."

"그래 그랬을 것이다. 생각 없는 놈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 얘기를 토 달지 않고 다 받아 주는 착한 녀석이라는 사실을 다른 말로 표현했던 거다. 똑똑한 형아 한티 약은 놈이라고 했듯이..."
"근데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만큼 착하지 않았어. 그게 부담이 컸어."

"너 어렸을 때 너를 때리고 괴롭혔던 녀석과 아빠가 맞서 싸우라 격투기를 가르쳐 줬을 때 그 친구가 울까봐 때리지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착했던 건 사실이잖아? 암튼 생각 없이 착한 놈이라고 부담 준 거 아빠가 잘못했다."

 
 
작은 행자는 어려서 지 애비에게 가장 컸던 불만이 따로 있었습니다. 사진 찍기 싫은데 아빠가 자꾸만 찍어대 사진기를 밀치는 과정에서 거울이 깨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빠가 자신 때문에 그 거울이 깨졌다고 심하게 혼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아빠하고 대화를 하기 싫어졌다고 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큰 행자가 한마디 합니다.

"야! 그런 일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다면 넌 행복한 거다. 다른 친구들 한티 물어봐라, 그게 가장 큰 불만이었다고 말하면 뭐라고 대답하는지."
"그래도 어쨌든 아빠가 잘못했다. 인상아! 거울 옆에 놓고 사진 한 번 더 찍어 볼래? 어뗘?"
"그럴까?"
"나도 니들 한티 불만 있다. 제발 좀 일찍 일어나자 새끼들아!"


아빠 대신 암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한 큰 행자

그렇게 서로의 불만을 털어 놓고 하하하 웃어 젖혔습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큰 행자가 갑자기 울먹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빠가 아픈 게 다 내 잘못 같아서..."
"그건 또 뭔 소리여?"
"내가 엄마 뱃속에 생기는 바람에 결혼했잖어. 내가 생기지 않았다면 암도 걸리지 않고 수행자로 자유롭게 살았을 건디......"
"그건 절대 아녀......."
"아빠 대신 내가 암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어......"


녀석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나 또한 감정이 복 받쳐 올라 말문이 열리지 않았지만 녀석에게 뭔가 말을 해 줘야 했습니다.

"이 눔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겨. 절대로 그런 생각 하면... 안 된다... 너는 이 세상에 필연적으로 태어난 거여. 엄마 아빠가 선택해서 태어난 거잖어. 그래서 니 동생 인상이도 태어날 수 있었고....... 너 그런 생각하면 아빠 몸이 더 안 좋아진다. 절대로... 그런 생각하지 말어......"
 
 
목울대가 떨려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녀석이 그렇게까지 생각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가슴이 너무나 아파 왔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참 행복한 놈이었습니다. 이 모든 게 암 때문이었습니다. 암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삼부자가 서로의 깊은 속마음을 툴툴 털어 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삼부자가 눈물 콧물 쏟아 가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그날 이후 심기일전,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워 기혈운동과 명상 식이요법을 철저히 지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몸의 균형을 잃게 되면 스트레스와 더불어 속 쓰림이 동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행자가 지 애비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 봤으면 좋겠습니다. 지 애비에게 마음을 쓰듯, 지 애비가 자신들에게 사랑을 베풀 듯이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과 자비를 베풀게 되면 그 행복이 바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니까요.

그날 두 행자에게 하지 못한 말을 이 글을 통해 덧붙입니다.
 
 
"만약 엄마와 인연이 닿지 않아 평생 수행자로 살았다 해도 아빠는 지금처럼 암에 걸려 있을 것이다. 아빠가 암에 걸린 것은 그 누구 때문이 아니라 다 내 탓이다. 전생부터, 살아오면서 굳어진 내 오랜 악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니들이 없었다면 벌써 히말라야 동굴에서 수행하다 객사 했거나 암에 걸려 죽었을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니들을 통해 지금처럼 행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사람 인(人). 나는 어릴 때 이 문자가 부부가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이라 생각했다. 사람은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니까,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결혼'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2세를 낳기 위해, 노쇠한 부모님을 함께 모시기 위해, 노후생활이 외롭지 않기 위해. 그것이 사람의 순리라 생각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부모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얘기했다. 사람 인(人), 그것은 두 발로 당당하게 서 있는 주체적 인간이라고.

우리 부모님은 결혼 반대파다. 맘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면 굳이 결혼하지 말라고 한다. 연애나 많이 하라고 했다. 나이 들면 혼자 외로워서 어쩌냐고 되물었다. 부모님은 답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혼자야."

하나뿐인 딸을 강하게 키운 부모님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나는 외동이라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다. 어미새가 새끼새를 둥지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부모님은 틈만 나면 하나뿐인 딸을 집 밖으로 내몰았다.

엄마 말을 까먹고 아람단에 가입하지 않은 날, 겨우 집에 도착한 나에게 가입 신청서를 쥐어 다시 학교로 돌려보냈다. 지역 행사장에서 학생을 대표해 연설하기로 한 날, 덜컥 겁이 나 눈물을 흘리며 안 하겠다고 했을 때도 엄마는 단호하게 내 등을 밀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리스 산토리니 사진을 보고 감탄했다는 이유로 비행기 표 한 장을 끊어 나를 유럽으로 보내 버렸다.

이쯤 되니 나도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익숙했다. 혼자 울산에 있는 할머니 댁에 놀러 가기도 하고,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나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혼자 양고기를 구워 먹었다. 연애도 틈틈이 했지만, 때때로 혼자 돌아다녀 남자친구를 서운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쩌겠는가, 사람은 원래부터 혼자인 것을.
  
 
"나 굳이 결혼 안 해도 될 것 같아. 일도 재밌고, 운전도 할 줄 알고, 혼자 잘 놀기도 하니까."

엄마는 웃었다.

"내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이 그거였어."

엄마는 자신의 얘기를 해주었다. 당신은 어릴 적 무용 선생님께 발레를 배워 보라고 권유도 받았고, 모델의 꿈을 품기도 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며, '시집만 잘 가면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꿈도 제대로 못 펼쳐 보고, 집에서는 하루 종일 4남매와 싸워야 하고, 그러다 아빠를 만났다.

그때는 결혼이 탈출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가정을 꾸려 보니, 자신은 여전히 어리숙한 아가씨였고 사랑하는 남편도 완전한 보호자가 되어주진 못 했다. 엄마는 생각했다. '몇 십 년 동안 쌓여온 내 체증은 내가 풀어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했다.

엄마는 다짐했단다. 그렇다면 내 아이에게는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해줘야지. 외로움도 인생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줘야지. 혼자는 고독이 아니라 자유임을 깨닫게 해줘야지. 결혼은 하나의 선택지일 뿐, 해결책은 아님을 알려줘야지. 그 염원의 조각이 모여 내 세상이 되었다.

이렇듯, 우리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내게 결혼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출산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최근엔 사회 분위기도 이처럼 변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이를 낳는 일을 '생산'의 개념이 아닌 '인권과 삶의 존중' 시각에서 보자는 차원에서 저출산(低出産)이라는 용어를 저출생(低出生)이라는 말로 바꿔 쓰자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다. 

90년대 이전만 해도 여성의 사회 진출율이 저조했으므로 업무 및 가사 분담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지만, 성별 간 사회 진출 격차가 줄어들면서 부부는 '일과 육아' 중 양자 택일의 기로에 놓였다. 개인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터의 업무 시스템 개편 및 기존의 관념적인 가사 분담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 또한, 단순히 결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건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자녀가 결혼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커리어를 포기하거나 일찍부터 기회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문득 어릴 적 엄마 아빠에게 결혼을 선언한 날이 생각난다. "나 지우랑 결혼할래!" 지우는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이름이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이 단순한 소꿉장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멋지다고 생각한 사람과 함께 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마음에서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결혼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밥을 함께 먹고 싶고, 거실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한다고. 결국 소꿉장난에서 시작하는 것뿐이라고. 다만 이런 감정이 사회의 무게에 눌려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거대한 짐처럼 느껴졌던 '결혼'은 나를 비추는 일부의 조각일 뿐이었다.

 
 
사람 인(人). 사실 이 문자는 옆으로 서서 손을 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 한다. 나는 이런 모습으로 비춰지고 싶다. 무조건 타인에게 기대서 사는 삶도, 혼자만 우뚝 서서 갈 길 가는 사람도 아닌, 항상 옆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스쳐 가는 수많은 인연에게 손을 건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날이 오면, 우리 부모님도 기쁜 마음으로 내 한쪽 손을 잡아 주시겠지. 오늘은 조금 알 것 같다.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사실 그 누구보다 결혼을 잘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