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겨울과 봄이 함께, '인생'을 보여주는 산의 절경
백화산(白華山)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곳으로,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에 걸친 해발 1063미터의 명산이다. 겨울철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하얀 천을 덮어 씌운 듯하다 하여 '백화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12일, 벗들과 백화산에 올랐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는 하나, 해발 1000미터 산골의 추위는 손이 얼얼하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만만치 않았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손꼽히는 분지리 안말 들머리에서 오르막을 치며 한참을 걷고 또 걷다 보니 백화산 꼭대기가 보였다.

백화산의 두 얼굴


순간, 심장이 멎는 듯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백화산 봉우리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산 몸뚱이는 하나인데 계절은 둘이었다. 아니, 어머니 계절이 아이 둘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북사면은 눈처럼 하얀 상고대가 피었고, 남사면은 벌써 봄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전체 내용보기
지난해 11월 홍콩서 있었던 웡 푹 코트 아파트 화재 참사를 기억한다. 노후로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던 고층 아파트에 불이 나 8개 동 중 7개 동이 화재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입주민 무려 168명이 사망했을 만큼 대규모 참사였다. 홍콩 특유의 밀집형 건축물로, 50제곱미터 내외의 소형 세대가 다닥다닥 붙은 구조라 인명피해가 더욱 컸다. 당시 기준 5000명 가까운 입주민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된 여러 보도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한 여성 입주민이 다 타버린 아파트 앞에서 오열하며 '저 집을 사기 위해 평생이 걸렸다'고 인터뷰하던 모습이다. 수많은 이웃들의 죽음 가운데서도 불타버린 제 집부터 떠올리는 비정함이, 또 충분히 그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이 그 장면 가운데 읽혔다.

왜 아닐까. 홍콩 부동산 가격은 부동산 공화국이라 말하는 한국조차 몇 수는 접어줘야 할 만큼 악명 높다. 땅은 작고 사람들은 많은데, 각종 투기자본까지 부동산에 몰린 탓으로 50제곱 미터 가량의 작은 아파트도 십 수 억을 헤아리는 경우가 많다. 웡 푹 코트는 국가 자본이 투입된 정부 보급형 주택이지만, 그럼에도 매매가가 300만~450만 홍콩달러(한화 5억 5000만~8억 3000만 원) 대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친 도시에서 살기 위해선 도시보다 미쳐야 한다

홍콩의 살인적 부동산 가격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소위 벌집 형태로 작은 집 하나를 여러 개 비좁은 공간으로 구분해 각 50만 원 내외의 월세를 받는 모습이 한국서도 수시로 보도됐을 정도다. 한국과 소득규모는 엇비슷하지만 부동산 가격은 훨씬 비싸니 서민들의 삶이 어떠할지 짐작이 간다. 임금의 7할 이상을 월세로 지출한다는 사회초년생들의 이야기가 흔하다는 곳이 바로 홍콩이다.

펑하오샹의 공포영화 <드림 홈>이 제작된 지 15년의 시차를 두고 이달 한국에 개봉한 건 이 같은 현실에 기댄 것일 테다. 영화는 바다를 바라보는 홍콩 아파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잔혹한 범죄극이다. 공포, 그중에서도 피가 튀고 신체가 훼손되는 장면을 서슴없이 연출하는 슬래셔 장르물인 영화는 제가 기대고 있는 것이 그저 그와 같은 폭력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검은 화면 위에 떠오르는 하얀 글씨로 관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2007년 조사에 의하면 홍콩 1인의 월 평균소득은 10100홍콩달러(현재 한화 180만 원)라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24%는 평균소득에도 못 미친다. 홍콩의 중국 반환 후 홍콩 국민의 소득은 1% 증가했지만 2007년 홍콩의 집값은 15%가 올라 600평방피트(약 17평)의 가격이 700만 홍콩달러(한화 12억 4000만 원)를 넘어섰다.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는 평방피트(0.028평)당 3만 홍콩달러(한화 530만 원)에 달한다. 이 미친 도시에서 살길 원하는 사람은 도시보다 더 미쳐야 한다.'


홍콩 살인적 부동산, 영화가 되다

전체 내용보기
당위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

설 연휴가 시작됐다. 30년 넘게 나를 지배했던 '명절의 공식'이 올해는 깨졌다. 내 고향은 경남 밀양이다. 대학 시절부터 결혼 후까지, 고속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는 '눈치게임'의 참여자가 되기를 자처하며 단 한 번도 귀향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고향가는 열차표를 사기 위해 자정부터 기차역 노숙을 마다치 않던 그 시절, 솔직히 고백하자면 부모님과 형제를 만나는 즐거움보다 귀향의 관성이 몰고 온 고통이 더 컸다. 하지만 "명절에는 고향에 가야 한다"는 그 압도적인 당위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족은 김해 진영으로 모였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새로운 터에 옹기종기 모여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머니의 기억이 조금씩 말라가면서 풍경이 변했다.

형제들은 돌아가며 치매가 깊어진 어머니의 건강을 챙긴다. 서울에 있는 나는 방학 때면 일주일씩 휴가를 내고 어머니 곁을 지킨다. 얼마 전 어머니를 다시 찾았다. 학교 일과 딸아이 결혼 준비로 이번 설에는 내려오지 못한다는 내 말에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셨다. 어머니는 사라져가는 기억의 끝자락에서 자식들의 온기를 붙들고 계셨던 게 아닐까.

결혼 31주년, 도심 시장의 풍경

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결혼 31주년이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신학기 준비를 위해 선생님들과 1박 2일 워크숍을 떠나야 했다. 가족보다 학교가 먼저였던 34년 차 교사 남편에게 아내는 서운한 기색을 문자에 담아 보냈다. 출가와 결혼을 앞두고 두 딸까지 분가한 터라 집안의 적막은 더 깊었을 터다.

미안한 마음에 아내와 지척에 사는 둘째 딸을 데리고 안양 관양시장으로 향했다. 예전 살던 동네의 전통시장이다. 텅 비어있던 평소와 달리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예비 사위들에게 먹일 식재료를 고르는 아내의 손길이 분주했다. 순간, 생전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스쳤다. 명절 전에 얄팍한 지갑을 털어 사위와 손녀가 먹을 음식을 정성스레 장만하셨던 장면.


상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어떤 가게에는 긴 줄이 생기는 생경한 모습도 보였다. 정당의 상징색을 입은 정치인이 상인들과 어묵을 나눠 먹는다. 짐짓 살가운 그 모습조차 명절의 생동감으로 읽혔다. 낯선 정치인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자고 제안한 것은, 아마도 그 활기찬 민심의 한복판에 나 또한 온전히 속해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5천 원짜리 목욕탕과 짜장면의 기억

전체 내용보기
2월 14일부터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다. 닷새라는 시간은 차례를 준비하고 음식을 마련해 손님을 맞이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요즘은 명절에 예전보다 차례를 간소하게 지내는 집도 많아졌고 가족 단위로 여행을 다니는 집도 많다. 명절 문화가 이렇게 달라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친구의 아들이 명절을 쉬고 2월 말에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이번 설은 여자친구 집으로 가고, 추석에는 우리 집으로 갈게요."

친구의 아들이 한 말을 전해 듣고 놀랍기보다 자연스러운 변화로 느껴졌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가 오히려 지혜로워 보였다.

지난 13일, 맏며느리인 내가 시가 식구들 단체방에 메시지를 올렸다.

"곧 설이 다가오네요. 이번 설날에는 뭐 맛있는 걸 준비해 오시는지, 전 뭘 준비하면 좋을까 싶어 연락드립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올해로 10년이 지났다. 어머님이 계시지 않아도 명절과 제사를 꼬박꼬박 챙기며 맏며느리로서 역할을 하며 지내왔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대구에 크게 퍼졌을 때 도시는 비상사태에 들어간 듯했다. 일상은 멈춰 선 것 같았다. 확진자가 하루 수백 명씩 늘었다. 시민들에게는 외출 자제와 마스크 착용이 강하게 권고되었고, 병원과 선별진료소는 연일 붐볐다. 공공시설과 학교는 임시 폐쇄되었고 정부는 대구를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방역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해, 부산에 사는 시동생네 가족은 명절과 제사에 오지 못하였다. 그 무렵부터 집집마다 명절 문화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2년 추석을 앞두고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현대적 차례상 간소화' 안내를 발표했다. 우리 집도 가족들과 상의 후 명절은 간소하게 차례상만 올리기로 했다. 설에는 떡국과 과일을 올리고 추석에는 성묘로 대신하기로 했다.

내가 결혼한 새댁이었던 1990년대에는 명절이 되기 이틀 전부터 부산에 있는 시가에 내려갔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이라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선 끝도 없는 줄을 몇 시간씩 서서 겨우 표를 끊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직장 일이 바빠 내가 아들만 데리고 먼저 시가에 내려갔던 적이 많았다. 맏이라 연휴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친정에 갈 수 있었지만, 불평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게 도리라 생각하고 어머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

두 시동생과 함께 홀로 사셨던 시어머님을 위해 남들보다 일찍 내려가서 시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그때는 연탄을 때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아궁이에 솥을 걸고 물을 데워 부엌살림을 했다. 전은 방에 들어가 부칠 수 있었지만, 튀김이나 다른 요리는 부엌에서 해야 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아들의 한 마디가 있다. 아들이 예닐곱 살 무렵, 이런 말을 했다.

전체 내용보기

<놀면 뭐하니?>가 시청자들에게 웃음 뿐만 아니라 17년 전 <무한도전> 시절의 추억을 동시에 선사했다. 지난 14일 방영된 MBC <놀면 뭐하니?> 317회 '쉼표, 클럽'편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동호회 정모에 참석한 유재석, 하하, 주우재 등 고정 멤버를 비롯해서 허경환, 정준하, 그리고 박명수까지 합세해 깨알 같은 재미를 안겨줬다.

올해 들어 '반고정 출연자' 허경환, 김광규 등의 가세로 점차 웃음을 되찾아가던 <놀면 뭐하니?>는 이날 <무한도전> 4인방의 재결합을 통해 기대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마련했다. '하와수' 박명수, 정준하 콤비의 두서없는 애드립 외에도 2009년 방영된 <무도> 봅슬레이 편까지 재현해 마치 설날 선물 같은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다.

수양대군 이후 최고의 등장신(?)​


전체 내용보기

설날 연휴를 맞았다. 해가 갈수록 명절 분위기는 옛날 같지 않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설날 덕담만큼은 풍성하다. 설날이 '이중과세'라는 논란이 있지만 이날이야말로 서로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하기 좋은 시간이다.

여기서 필자는 다른 사람보다 한 번 더 인사를 받는다. 고령의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집 사정을 아는 지인들은 아버지 안부도 챙겨 묻는다. 설날 덕담을 아버지 덕분에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를 기억하고 건강을 기원해 주는 지인들의 따뜻한 성의가 감사하다.

얼마 전 필자와 아버지를 아는 한 지인이 설날을 앞두고 오랜만에 전화했다. 일찍이 아버지와 그분의 관계를 알기에 설날 인사가 자식으로서도 참으로 반가웠다. 그런데 통화가 끝나갈 무렵 그는 "아버님은 아직도..."라고 묻는데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질문에는 고령인 아버지의 생존 유무도 모르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차라리 아버지 안부를 묻지 않았으면 좋았지 싶었다. 이에 나는 "덕분에 잘 있습니다"라고 전화를 끊었지만 기분은 찜찜했다.

전체 내용보기

설 명절을 이틀 앞둔 15일,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설 차례상 준비를 위해 찾은 시민들로 북적였다.

특히, 전날부터 시작된 연휴로 홍성전통시장과 상설시장 등은 아침부터 붐볐다.

연휴 둘째 날인 15일 오전 11시 기준 홍성지역 기온은 전날과 같은 8도, 습도 79%, 미세머지는 '나쁨'을 보이고 있다.

15일 찾은 홍성전통시장과 대형마트에는 과일을 비롯해 수산물과 농산물 등 다양한 상품이 진열된 가운데, 제수용품을 준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전체 내용보기



노숙인 쉼터 사단법인 유쾌한 공동체(경기 안양)가 설을 맞아 14일 사랑의 전부치기 행사를 했다.

'사랑의 전부치기' 는 매년 명절마다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유쾌한공동체의 대표적인 나눔 활동이다.

이번 행사에, 유쾌한 무료급식소와 유쾌한푸드뱅크, 시니어일자리 참여자, 안양시자원봉사센터 봉사자 등이 참여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