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보낸 2월의 마지막 날, 가야의 시간을 걷다

2월의 마지막 날,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장모님과 함께 국립김해박물관을 찾았습니다. 휠체어로 이동하기에 부담이 적은 공간입니다. 실내 전시라 날씨 영향을 덜 받습니다. 무엇보다 박물관은 이야기 창고입니다. 전시를 함께 보며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자 길을 잡았습니다.

실내로 들어서자 야트막한 경사를 올라갑니다. 휠체어를 밀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가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맞이방을 지나 상설전시실에 들어서자, 빛이 낮아집니다. 조명은 바닥 가까이에서만 움직입니다. 발걸음도 함께 느려집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우리와 함께합니다.

가야의 시간을 읽다, 그릇 앞에서 멈추다

어둠 속에서 통나무배가 먼저 드러납니다. 형태만 또렷합니다. 강과 바다를 건너던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가옵니다. 어디로 떠났고, 어디로 가려 했을지 생각이 붙습니다.


토기 앞에서는 시간이 둥글어집니다. 항아리의 어깨선이 단정합니다. 낮은 굽 위의 잔이 보입니다. 손잡이가 달린 머그잔을 닮은 토기는 오늘의 식탁에 올려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몇천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손에 익을 것 같은 형태입니다.

가야의 그릇들은 닮았지만 같지는 않습니다. 나라마다 입술선이 다릅니다. 신라 토기처럼 높이 치켜올린 긴 목도 아닙니다. 백제 토기처럼 부드럽게 퍼지는 곡선도 아닙니다. 가야의 그릇은 전반적으로 낮고 단단합니다. 쓰임이 먼저 드러납니다. 소가야의 토기는 몸통이 단정합니다. 장식이 적고 안정적입니다. 일상의 그릇에 가깝습니다. 고령가야의 그릇은 비례가 분명합니다. 굽이 또렷하고 형태가 정제돼 있습니다. 금관가야의 토기는 상대적으로 크고 묵직합니다. 철을 다루던 나라의 기질이 그릇에도 남아 있습니다. 화려함보다 실용이 먼저입니다. 각자의 삶의 방식이 모양으로 남았습니다.

전시장 중앙의 통나무 관 앞에서는 침묵이 길어집니다. 다호리 목관묘입니다. 개인의 죽음보다 공동체의 질서가 먼저 보입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가 정리된 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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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현재까지 이란에서 최소 555명이 사망했다고 이란 적신월사가 2일 밝혔다.

이란 반관영 파르스 통신에 따르면 이란 적신월사는 "이란 여러 지역에서 자행된 적들의 공격으로 131개 도시가 영향을 받았으며 유감스럽게도 우리 국민 555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목숨을 잃은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포함돼 있다.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 미나브에 있는 여자초등학교에서만 최소 165명이 사망하는 등 민간인 희생자도 속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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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은 "현재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중동지역 10여개국에 우리 국민 약 1만7천여명이 체류 중"이라며 "현재까지 파악된 우리 국민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2일 말했다.

김 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진행된 중동 상황점검 긴급 관계부처 회의 이후 합동브리핑에서 이렇게 밝히며 "1만7천여명은 장기체류자 중심으로 파악한 것이고, 단기관광객이나 환승객이 있을 수 있어서 숫자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 상황이 이란, 이스라엘 양국을 넘어 중동지역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여타 국내 교민은 물론 단기 체류자의 신속한 귀국 지원을 위해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과 불안정성이 계속 고조될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 우리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고 안전한 귀국을 도와드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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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은 조선왕조 말기 무능하고 부패한 지배집단이라는 내적 모순과 일본을 비롯 서구열강의 침탈이라는 외적 모순이 겹쳐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빠져들 때 '보국안민'을 위해 일어났다. 지배층은 국정의 개혁·경장 대신에 외세에 영합하며 이권을 챙기고, 내정은 곪을 대로 곪았다.

당시의 부패상을 매천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10만 량이 있어야 과거에 급제하고 감사자리 하나에도 2만 량이 있어야 하는데 그나마 안동 김씨만 가능했다"고 썼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봉준을 선봉으로 하는 깨어난 동학농민지도자들이 봉기하여 역사의 물굽이를 바꾸고자 하였다. 사발통문으로 동지를 규합하고 뜻을 전하며, 동학의 '학'을 통해 근대성을 일깨운 민중들이 기꺼이 혁명의 대열에 나섰다.

이들은 손에 손에 〈광제창생〉, 〈척왜척양〉,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깃발을, 다른 손에는 소나무에서 추출한 송진으로 켠 횃불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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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든 시민들의 함성이 도심을 가로질렀다. 1919년의 만세 물결이 2026년 봄, 경기 부천에서 다시 살아났다.

부천시는 1일 시청 어울마당에서 시민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07주년 3·1절 기념식'을 열고 1919년의 독립정신과 나라사랑의 가치를 되새겼다. 기념식은 단순한 행사에 그치지 않고, 공연과 재현극, 거리행진으로 이어지며 도심 전체를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날 행사는 태권도 시범과 퓨전 국악 공연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 어린이합창단이 애국가와 '대한독립만세' 동요, 3·1절 노래를 합창하며 경건한 분위기를 더했다. 객석 곳곳에서는 휴대전화로 무대를 기록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가장 큰 울림을 준 장면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기미독립선언서 낭독이었다. 광복회 소속 독립유공자의 2대손부터 5대손까지 후손들이 나란히 무대에 올라 선언서를 읽어 내려갔다. 세대를 건너 이어진 목소리는 과거의 외침을 현재의 언어로 되살렸다. 객석에서는 숙연한 정적이 흐른 뒤 박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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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끝까지 간다"…이란 실세 "협상 없다" 항전의지 강조
호르무즈 봉쇄로 유가 급등…불확실성 급증에 주식시장 된서리

(워싱턴·서울=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차대운 김승욱 기자 =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2일(현지시간)사흘째로 치달으며 세계 안보와 경제에 충격을 더했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필두로 이란의 대리세력이 미국, 이스라엘에 맞선 전면전에 가세해 전선이 확대되면서 중동정세는 더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압도적 화력과 제공권, 첨단 방공 시스템으로 무장한 미군 측에서도 처음으로 사망자가 발생해 미국 내 여론도 들끓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 사망에 대한 보복을 공언했고 이란 지도부는 일각에서 나오는 재협상설을 부인하며 항전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글로벌 에너지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봉쇄 여파로 국제유가는 10% 뛰어오른 배럴당 80달러까지 치솟았다.

◇ 美·이스라엘 공습 지속…이란 도와 최대 대리세력 헤즈볼라 가세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이란 타스님 통신 등 현지 매체들을 인용해 2일 새벽부터 테헤란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내고 테헤란 전역의 표적을 대상으로 자국 공군이 새로 대규모 추가 공격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중부사령부도 2일 페이스북 등 SNS에 이란군의 탄도미사일 이동발사대(TEL)가 미사일을 쏘기 전에 정밀 선제 타격하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이란의 핵심 전력을 무력화 작전이 효과적으로 진행 중임을 강조했다.

이에 맞서 이란군도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 미군 시설을 겨냥한 탄도미사일, 드론 반격을 이어 나갔다.

이란 국영방송은 2일 새벽 바레인의 미 해군 기지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는 미 해군 5함대 기지가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아온 '대리 세력' 헤즈볼라가 이날부터 가세하면서 전선은 이제 미국·이스라엘 대 이란 및 추종 세력 간의 전면전으로 한 단계 비화했다.

이날 새벽 이스라엘에는 레바논 국경 너머에서 발사된 여러 발의 로켓이 날아왔다. 이스라엘군은 한 발을 요격했고 나머지는 사람이 없는 개활지에 떨어져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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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다 재미있는 내용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제목은 <"이런 건 처음봅니다" 전례없는 AI 바이러스 등장에 전세계 의사들 단체 멘붕>이었다. 처음에는 바이러스가 인공지능에 침투하여 오작동시킨 것으로 착각했다. 동영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얼마 전 인간이 신의 영역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사상 최초로 AI로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어요." (필자는 이 첫 문장을 들으며 어떤 섬뜩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박테리오파지가 자연 상태보다 증식력이 무려 65배 뛰어났다고 했다. 자연 상태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투로 보아서는 어마어마한 내용을 설명하려는 것 같았다. 전 세계를 한때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라고도 했다. 그런데 '증식력이 크다'는 것이 어떻게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로 이어지는지를, 필자는 영상만 보고서는 알아내지 못했다. 이어지는 설명을 들어보면 인공지능이 무엇인가 매우 놀랍고 '위험한' 일을 해낸 것 같았다.

"바이오 전쟁의 서막일까요, 아니면 인간이 신의 범주에 들어선 역사적 특이점일까요?"

유튜버는 연구논문의 초록을 보여주며 설명을 덧붙였다. 논문 초록에 해당 문장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기 우리는 최초로 박테리오파지 유전체를 생성해 냈다."
그런데 형광펜으로 강조한 영어 원문을 보니 'Here, we report the first generative design of viable bacteriophage genomes'였다.

사실이라면 어마어마한 일이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무언가 이상했다. 내가 읽은 초록의 영어 문장과 해설자의 말에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최초로 박테리오파지 유전체를 생성해' 낸 것이 아니라 '설계'를 보고한다고 해석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롬에 탑재된 인공지능에게 이 영어문장의 해석을 부탁했더니 '여기에서 우리는 생존 가능한 박테리오파지 유전체의 첫 번째 생성적 설계(generative design)를 보고합니다'란다.

연이어 미국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의 논문을 해설하였다. 약 270만 개의 박테리오파지 유전체을 포함한 방대한 DNA 염기 서열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있는데, 이것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유전체 지도를 인간에게 만들어 줬고, 인간이 이걸 합성해 봤더니 그 바이러스의 성능이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같은 종류의 그것들에 비해 매우 뛰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연구는 당연히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유전체를 찾아내려는 것이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심지어 "생명창조의 설계가 실험으로 검증 가능한 단계에 돌입했다"는 말까지 하는 것을 보니 매우 중대한 일이 벌어진 것만은 확실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학습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수백만 개의 염기서열을 인간처럼 통째로 외웠다는 뜻일까? 그냥 메모리에 저장해 놓으면 되지 컴퓨터가 그런 것을 뭣 하러 외우지? 그건 그렇고, '생명창조의 설계가 실험으로 검증 가능한 단계에 돌입했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 아마도 전하고 싶은 속말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미루어 짐작한다. '인공지능이 생명까지 창조했어.' 만일 사실이라면 어마어마한 일이고 세계가 뒤집혀야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래서 유튜버가 참조했다는 원자료를 들여다 봤다. 'AI가 만들어낸 최초의 생명체 탄생'라는 제목(https://heisenberg.kr/ai_creature/)의 보고서 형태 자료였다. 군데군데 유료사용자만 볼 수 있도록 가림막이 돼 있어 다 보지는 못했으나 필자에게 필요한 말은 다 보였다. 원문의 시작을 보면 이러하다.

2025년 9월,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이 사상 최초로 AI로 생명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바이러스 게놈 전체를 최초로 설계해냈는데, 생성형 AI 모델 Evo를 이용해 대장균을 감염시키는 박테리오파지(세균을 죽이는 바이러스) 302개의 게놈을 설계했고, 이 중 16개가 실험실에서 실제로 작동했습니다. ...(중략)... 생명공학의 '챗GPT 모멘트'가 도래한 지금, 우리가 신의 영역에 발을 내딛은 걸까요, 아니면 지옥으로 발을 내딛은 걸까요?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고 운을 떼더니 이내 '게놈 전체를 최초로 설계'했단다. 무언가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이쯤 되면 원자료의 원자료(https://www.biorxiv.org/content/10.1101/2025.09.12.675911v1)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논문의 제목이 '유전체 언어 모델을 활용한 신규 박테리오파지의 생성적 설계(Generative design of novel bacteriophages with genome language models)'였다. 어째 제목부터 생명 창조가 아니라 '설계'란다. 인터넷주소에 나와 있듯이 현재 이 논문은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공개된 상태이다. 그런데 문외한인 필자는 아무리 읽어도 모르는 것이 많아서 인공지능에게 이 논문의 요약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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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튜브를 켜면 소띠 2026년 운세를 봐주겠다는 영상들이 난무하였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내가 소띠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지난날 내가 검색한 알고리즘에 의해 보여지는 영상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한때는 나도 점집 꽤나 다녔었는데... 총총 잘도 걸어 다니던 때를 회상하면서 소띠 무료운세를 클릭하였다.

울컥했던 소띠 2026년 운세

소띠 2026년 운세는 자다가도 떡이 생기고, 귀인을 만나고 부동산의 문서가 들어오고, 횡재수가 있는 대박의 한 해가 될 것이란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바깥에 나갈 일 없는 내가 어떻게 귀인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음이 들떴다. 내친김에 이 영상 저 영상 클릭해서 소띠에게 들려주는 2026년 덕담들을 마음에 담았다.

소처럼 묵묵하고 우직하게 돈 벌어 부모위해 자식위해 가정위해 쓰느라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소띠들이 2026년부터는 그동안 베푼 것들을 거두어들이니, 지금부터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라, 하는 대목에서는 어쩐지 마음의 위로도 받았다. 울컥하여 울 뻔도 하였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라, 나로 살아라' 하는 대목에 욕심이 났다. 살아온 삶 전부를 통 털어 희생만 하고 산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나 자신만을 돌보면서 살아온 기억은 별로 없다. 너무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가셨고, 스무 살이 갓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집을 나간 날부터 나의 고단한 삶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꾸준하게 한 길만 걸어왔지만 모든 면이 더뎠고 가난한 삶은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노릇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했다. 사람노릇, 자식노릇, 아내노릇 그리고 부모노릇. 내 지갑의 무게와는 아랑곳없이 감당해야 하는 노릇들을 해내느라 때로는 지갑이 너덜거렸다. 때로는 시커먼 작업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점심시간에 돈을 마련하겠다고 회사 부근에 있는 은행들이나 보험회사들을 쫓아다닌 적도 있었다. 자식노릇이 필요할 때였다.

부모노릇을 하면서는 사실 없는 티를 그렇게 내지 않았다. 부모로서 가진 것이 많다 허세를 부리지는 않았지만, 빈털터리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차마 그렇게까지는 솔직해지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자식일 때도 아내일 때도 엄마일 때도 나 하나로서 솔직하게 그들 앞에 나를 내세우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아프고 난 후 깨달았다. 마음의 병이 내 몸 하나를 망쳤구나 깨달았다.

남편과 나에겐 아직 독립하지 않은 자녀, 즉 캥거루가 둘 있다. 부모로서 어떻게든 힘을 보태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본인이 벌어서 시집 장가 가야지는 정말이지 옛말이 되었다. 자녀가 성장하여 결혼을 할 즈음에 부모로서 숨겨놓은 통장 하나쯤 내어주는 일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일까. 생각하면 마음이 더 답답하다. 지금까지 나는 뭘 했지 자연스레 자책도 든다.

집만을 지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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