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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최교진 교육부장관 "16세 선거권 하향, 그 방향으로 가야"

최교진 교육부장관이 '선거연령 16세 하향'에 대해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오마이뉴스>에 밝혔다.

최 장관은 6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선거연령 16세 하향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란 질문에 "그런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과 공정한 선거교육이 제대로 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학교의 수준과 학생들의 상황을 봤을 때 그렇게 큰 염려를 할 필요는 없다"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선거연령을 16세로 낮추는 방안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제안과 관련, 교육부장관이 의견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의힘이 주장해 온 '민주시민교육과 선거교육을 하면 교실이 정치판화 된다'라는 주장에 대해 최 장관은 "전 세계 민주국가에서 필수로 진행하는 민주시민교육과 선거교육에 대해 '교실 정치판화'라고 지적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라면서 "최근 장동혁 대표가 '16세 선거권' 제안을 한 것은 이런 '교실 정치판화' 주장이 설 자리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장동혁, 선거연령 16세로 낮추자? 나흘 전 국힘 "선거교육, 교실 정치화" https://omn.kr/2gy1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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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문장은 물이 용솟음치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으며, 산속에 간직하고 바다 속에 숨겨진 것과도 같습니다. 신(神)이 짓고 귀신이 응답하는 것 같은 오묘함이 살며시 드러나고 겹겹이 나와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말과 시중을 알 수 없게 하였습니다. 성율(聲律)과 격조는 애써 꾸미지 않았지만, 놀라운 것은 생각이 높고 먼 경지에 이르러 보통 사람들의 뜻을 멀리 넘어섰으니, 그저 글자나 아로 새기는 자들이 넘겨볼 경지가 아니었습니다." (최규목, <김시습의 사상과 글쓰기>)

김시습은 5세 때에 시로써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여 '김오세'란 별명을 들을 만큼 총명했다. 어느날 외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불러다놓고 시를 읊어주었다.

꽃은 난간에서 웃어도
소리를 듣지 못하니라.

어린 시습이 더듬더듬 댓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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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신천지하고 경기도는 지금 전쟁 중입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신천지와의 갈등 상황을 언급하며 종교의 정치 개입 가능성에 대해 강한 경고 메시지를 냈다.

김동연 지사는 6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신천지에서 저를 보고 사탄이라고까지 했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이와 관련 최근 일부 언론에서 신천지가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반(이재)명 후보 측에 접근을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동연 지사는 신천지와의 갈등 배경을 설명하면서 "24년 10월에 임진각에 있는 평화누리 공원에 신천지가 한 10만 명 모이는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했는데 저희가 그것을 불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도민의 안전 문제 또 국가 안보상의 문제 때문에 불허했는데, 한 달 동안 수십만 명이 (경기도청에) 와서 시위를 했다"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때 신천지 시설을 폐쇄했고, 제가 도지사 할 적에는 행사를 취소시켰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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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을 잡으려는 시도를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5월 9일 이후가 더 중요하다." - 4년차 직장인 김아무개(26, 여)씨

거리에서 만난 2030 청년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에 대체로 공감하면서, 더 촘촘한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일부 언론의 다주택자 입장 대변과 이 대통령의 직설적인 반박글이 이어지는 현실에 속에서 청년들은 좀 더 확실하고, 구조적인 집값 대책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오마이뉴스는> 6일 신촌과 광화문 일대에서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을 대상으로 5월 9일 종료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와 이 대통령 부동산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최근 이 대통령은 "수십만 다주택자들로 인해 (형성된) 높은 주거비용 때문에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수백만 청년들의 피눈물은 안 보이나"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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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37년 부족한 의사 인력 규모를 약 4262명에서 4800명으로 정했다. 내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 규모는 다음주 10일, 추가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반면 의료계는 집단 반발을 예고했다.

보건복지부는 6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에서 6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보정심에서는 지난 1월 29일 개최된 2차 의료혁신위원회(혁신위)와 같은달 31일 열린 의학교육계 간담회 결과를 보고받은 후 2027학년도 이후 의사인력 양성 규모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종합하면 많은 분들이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추계 결과를 존중해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들을 주셨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학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고언도 많았다"며 "주신 의견들을 최대한 반영해 논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보정심은 공급모형 1안과 2안에 대한 종합 검토를 진행했다. 두 모형을 비교한 결과 공급 1안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고, 이로써 2037년 의사 부족 규모는 4262~4800명으로 결정됐다. 1안을 기준으로 숫자를 좁히는 데에는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제외한 모든 보정심 위원들이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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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장생탄광(장生炭鑛·조세이탄광) 희생자 유해를 찾기 위한 해외 잠수사들의 합동 수중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대구를 비롯한 전국의 시민들이 84주기 추도식을 위해 현지를 찾는다.

장생탄광희생자 귀향추진단은 추도식 참석을 위해 출발하기 앞서 6일 오후 대구 중구 반월당 현대백화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희생자 유해 발굴과 귀향에 한일 양국 정부가 신속히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추도식은 한일 양국 정상이 장생탄광에서 수습된 유골에 대해 DNA 감식에 관한 공동 협력을 약속한 이후 처음 열리는 공식 추모행사"라며 "이번 행사는 희생자 추모를 넘어 한일 양국이 평화와 인권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책임 부처 후생노동성 관계자, 현장 처음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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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가 대표 사회공헌 활동인 '행복도서관' 사업 10주년을 맞아 지원 대상을 시니어로 확대했다.

오비맥주는 2016년부터 지역 상생 프로젝트로 '행복도서관'을 운영해 왔다. 지난 10년간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의 학습 환경 개선을 위해 낙후된 지역아동센터를 리모델링하고 교육 기자재와 도서를 무상 지원했다.

행복도서관은 서울 영등포구 지역아동센터 1호점을 시작으로 서울 금천구·송파구, 충북 청주, 광주, 경기 부천, 전남 해남, 경북 울진, 강원 강릉 등 전국 12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2025년부터는 교육과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사업 대상을 시니어로 넓혔다. 지난해 11월 충북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에 첫 시니어 행복도서관을 조성했으며, 2024년 한국해비타트와의 업무협약을 기반으로 시설을 개보수하고 도서 100여 권과 교육 자재를 지원했다. 이를 통해 복지관을 이용하는 일일 평균 300~500명의 어르신들이 독서와 문화 활동을 접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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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출생 80주기를 기해 그에 대한 우상화가 시작된 지 3년이 흐른 1958년이었다. 그가 간곡히 떠받들며 한국에 초청한 인물이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다. 스코필드는 정부수립 10주년 겸 광복절 이틀 전인 1958년 8월 13일 방한했다. 그해 9월 3일 자 <조선일보>는 "(그가) 이 대통령의 간곡한 초청으로 내한"했다고 말한다.

이승만이 그를 얼마나 극진히 대했는지는 9월 6일의 환영식 광경으로도 증명된다. 다음날 <조선일보> 기사 '어제 성대한 환영회'는 "푸랭크 스코필드 박사의 환영식이 6일 하오 3시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노천강당에서 33인 중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갑성 씨를 위시하여 조 외무부장관과 각 대학 총장 그리고 시내 각 중고등학교 학생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날 조정환 외무부 장관은 대통령 치사를 대독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유가족회는 금반지를 증정했고, 각계각층이 보내는 선물도 전달됐다. 한국 국민과 정부가 스코필드의 독립운동에 감사하고 있다는 점이 유관순의 모교에서 성대하게 표시됐다.

1889년에 영국에서 태어난 스코필드는 18세 때인 1907년에 캐나다로 이민했다. 여기서 농장 일을 하며 학업에 매진해 1911년에 토론토대학교 온테리오수의과대학에서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뒤 27세 때인 1916년에 캐나다장로회 선교사 자격으로 내한해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세균학과에서 위생학을 강의했다.

스코필드는 3·1운동 하루 전에 독립선언서를 입수했다. 국가보훈부가 발간한 <독립유공자공훈록> 제24권은 "1919년 2월 28일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한 학생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았다"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30세의 스코필드는 한국 독립운동을 해외에 알리는 임무를 갖게 된다. 공훈록의 설명이다.

"3월 1일 오전 이갑성으로부터 독립선언과 만세시위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해외에 알려줄 것을 부탁받았다. 그는 만세시위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해외에 알렸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만행 현장을 조사하여 보고서를 만들어 익명으로 해외 언론에 기고하였다."

그해 4월 15일 자행된 수원 제암리교회에 대한 일본군의 학살·방화 현장을 사진에 담아 한국 밖으로 내보낸 인물도 그였다. 그는 같은 해 8월에는 일본에 모인 극동 선교사 800여 명 앞에서 일제 만행을 고발했다. 또 하라 다카시 총리를 만나 한국에 대한 비인도적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 때문에 "일본 당국의 미움을 받고 테러 위협까지 받게 되었다"고 공훈록은 말한다.

자신을 초청한 이승만 정권 겨냥해 공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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