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사라지는 새들, 남겨진 흔적들… 줍고 기록하는 하루"

창원주남환경학교(교장 최종수)는 2일 세계습지의날을 맞아, 습지의 중요성과 주남저수지 철새 보호에 대한 시민 인식을 높이기 위한 기념행사를 열었다.

행사는 "사라지는 새들, 남겨진 흔적들, 줍고 기록하는 하루"라는 주제로 진행되었고, 곽승국 자연과사람들 대표가 특강했다. 참가자들은 함께 주남저수지 인근 용산마을 일원에서 쓰레기를 줍는 정화 활동을 벌였다.

주남환경학교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단순한 기념을 넘어, 시민들이 직접 습지 보호의 주체로 참여하는 자리였다"며 "앞으로도 주남저수지를 중심으로 습지 보전과 생태 인식 확산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매년 2월 2일인 세계습지의 날은 1971년 람사르협약 채택을 기념해 제정된 날로, 습지가 물을 저장하고 홍수를 완화하며, 다양한 생물을 품고 기후 위기를 완화하는 지구 생명 기반 생태계임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고, 국제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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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부동산 이슈에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대책이 없다"고 토로했던 터라 180도 달라진 모습에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여권에선 부동산 시장을 이대로 놔두면 임기 내내 시장에 끌려다닐 거라는 위기감의 표출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특히 부동산 투기 세력을 옹호하는 야당과 보수언론 등 '투기 동맹'을 상대로 칼을 빼들었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일각에선 이런 대응이 6월 지방선거에 불리하지 않다는 계산을 끝냈다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이 대통령은 그간 부동산 문제에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대선 때는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고, 정부 출범 후에도 세제 정책은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지난해 7월 국무회의에선 부동산을 투자수단으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급기야 지난해 12월엔 "서울·수도권 집값때문에 욕을 많이 먹는데, 보니까 대책이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일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10·15 대책 이후에도 부동산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무력감을 호소하는 발언으로 시장에선 풀이했습니다.

이런 기류는 올들어 급변했습니다. 그 신호는 1월 중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언론 인터뷰였다는 게 여권에서 나오는 분석입니다. 당시 김 실장은 이른바 '똘똘한 한채'를 보유한 1주택자에 대해서도 보유세·양도세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당시 청와대와 민주당은 '원칙적인 수준'이라고 의미를 축소했지만, 이 대통령과 사전에 교감을 거쳐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발언 내용으로 볼 때 단순히 시장 반응을 떠보는 차원을 넘어 상당히 구체적 수준까지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부동산 세제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게 여권 주변의 시각입니다. 당시 언론은 "지금으로선 세제를 통해 부동산 정책을 하는 것은 깊이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데 방점을 찍었지만, 사실은 "선을 넘어 사회적 문제가 되는 상황이면 당연히 세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한 대목에 무게가 실려있다는 해석입니다. 이 대통령이 기자회견 이틀 뒤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재개 방침을 밝힌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겁니다. 언론과 시장에서 당분간 부동산 세제 개편이 없을 거라는 쪽으로 분석하자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바로잡았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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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구경북 의원들이 '대구경북 행정통합' 특별법을 발의한데 이어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행정통합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2월 임시국회 통과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임미애 의원(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비례대표)은 2일 대구시와 경상북도를 통합해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정부 직할 '대구경북특별시'를 설치하는 내용의 '대구경북 행정통합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임 의원은 특별법안에 수도권 일극체제로 인한 국가 경쟁력 약화와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이 아닌 권한, 재정, 규제 체계를 포괄적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별법안은 대구경북특별시를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도록 하고 특별시의 종합계획 수립과 행정·재정·자주권 강화, 중앙권한 이양 및 지원·우대 조치는 국무총리 소속 '대구경북특별시 지원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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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3선을 막기 위한 국민의힘 인사들의 경북도지사 출마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침체된 경북 경제를 살릴 적임자를 자임했다.

김재원 "경북 행정은 무능하고 무책임, 경북의 위대한 전진 위해 나서겠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인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경북도는 국난극복과 산업화를 이끌어 온 자랑스러운 역사의 고장"이라며 "시대가 바뀌어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침체기에 빠졌고 길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향해서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경북의 행정은 무능하고 무책임했다"며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사업은 금년에 예산을 한 푼도 확보하지 못했고 2030년 개항하겠다는 약속은 허공으로 날아갔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해 3월 경북 북부 5개 시군을 덮친 산불피해를 뒤로하고 대권 도전에 나서는 바람에 피해주민들과 도민들에게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대해서도 "도민들의 합의절차는 거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며 "앞으로도 무책임한 일방통행 도정이 계속되면 실패를 거듭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최고위원은 "경북도정은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며 "위대한 전진을 준비해야 한다. 이 시대는 세대교체, 선수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경북의 위대한 전진을 위해 제가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포항 철강공단과 구미 전자산업단지 전성기 회복 ▲바이오산업·스마트팜·첨단혁신농법 지원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조기 완성 ▲성공적인 대구경북 행정통합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오는 3일 예비후보 등록을 할 예정이라고 밝힌 김 최고위원은 "후보 신분으로 최고위원회 회의에 나오는 것은 자제하는 게 맞다"며 경선이 끝날 때까지 최고위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최고위원을 사퇴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이날 오후 경북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김 최고위원은 최고위원직을 사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퇴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당 지도부도 사퇴하지 않도록 조치를 이미 하고 있다"며 "공천관리위원장 인선이라든지 공천 규칙을 정하는 절차 문제가 최고위에 상정될 예정이기 때문에 최고위 회의를 비롯한 모든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과 관련 "행정통합을 하는 절차나 방식이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며 "지금 상황은 우리 당에서 특별법을 제출했고 결국은 민주당과 이재명 정권이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통합 절차가 진행되도록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정통합이 된다면 지금처럼 졸속으로 될 것이 아니라 경북 지역과 대구시민들이 모두 잘 살 수 있고 행정 서비스를 잘 받을 수 있도록 통합이 되어야 한다"며 "경북 지역을 더 배려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강덕 포항시장 "경북은 미래 50년 책임질 행정가 필요, 제2의 박정희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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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대구 동구·군위군갑)이 자신의 경제 공약인 '803 대구 마스터플랜'을 공개했다.

최 의원은 2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산업구조 고도화'와 '혁신을 통한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대구의 경기를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대구 경기침체의 이유로 전국 최하위권의 GRDP, 가속화되는 청년층의 수도건 유출, 소비 위축의 악순환, 장기 침체에 빠진 부동산 경기 등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GRDP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산업 구조 고도화를 통해 기업들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높이고 건설경기를 정상화하는 것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며 "대구 경제 회복의 사활이 여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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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 시민들이 연행된 당일, 시민들 500여 명이 세종호텔 앞에 모여 경찰의 강제 연행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냈다.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 등 시민 12명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강제로 연행한 경찰에 항의하는 투쟁 문화제가 2일 오후 6시 30분부터 서울 중구 세종호텔 정문 앞에서 열렸다. 같은 날 오전 10시경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업무방해, 퇴거불응 등의 혐의로 고 지부장과 허지희 세종호텔지부 사무장, 연대 시민 등 12명을 체포했다.


영하의 추위 속에도 500여 명가량의 시민들이 모인 문화제 자리에서 이백윤 노동당 대표는 "지난해 7월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고공 농성 중인 고진수 동지를 만나 정부 차원에서 해법을 찾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았나. 그런데 반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대답이 없다가 오늘 우리는 정부가 연행이라는 대답을 했다는 걸 보게 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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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마감하고 습관처럼 퇴근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던 길은 늘 같은 방향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퇴근길 하늘 한가운데, 유독 또렷한 달이 시야를 붙잡았다. 그냥 지나치기엔 그 빛이 너무 분명했다. 나는 방향을 틀었다. 목적지는 집이 아니라 경포호수였다. 퇴근길에 떠오른 달을 이대로 흘려보낼 수 없었다. 경포호는 하늘의 달과 수면 위에 비친 달이 겹치는 곳이다. 그 풍경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경포호로 향했다.


한겨울, 달빛에 발을 멈추다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달빛은 더욱 또렷해졌다. 경포호수 위에 떠오른 달은 유난히 붉었고, 낮의 소란을 모두 받아낸 듯 말이 없었다. 수면 위에 내려앉은 달빛은 바람에 잠시 흔들렸다가 이내 다시 하나로 모였다. 호수는 그 빛을 조용히 품고 있었다. 호숫가에는 발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몇몇은 휴대전화로 연신 셔터를 눌러 이 밤의 빛을 담고 있었다. 한겨울에 마주한 이 풍경은 가장 잘 어울리는 언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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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문섬, 범섬 앞바다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비를 갖추고 배를 탈 준비를 하고 있다 보면 구릿빛 피부를 장착한 다이버들이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베테랑으로 보이는 이들이 어떤 한 사람을 보면 하나같이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한다. 짧은 인사말이지만 그 눈빛과 자세에 '존경'이 깃들어 있다.

제주 스쿠버다이빙 1세대라고 불리는 이계준님이다. 창립 전부터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제주 바다에 대한 조사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든든한 어른으로 존재하고 있다. 파란의 시민과학 활동에 기초가 되어 준 이계준님을 지난 14일에 서귀포에 있는 한 다이빙센터에서 만났다.


전주에서 태어난 이계준님은 1957년생이다. 국민(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2월 생이라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갔더니 형 친구들과 같은 학년이 되기도 했다.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 정읍에서 자랐다. 그 당시 정읍은 시골마을이었는데 학교에 가려면 도시락을 싸서 책가방을 메고 개울을 건너 다녀야 했다. 여름이면 큰 비가 와서 사람들이 비에 휩쓸려 가는 사고도 종종 났다.

평상시엔 돌 징검다리가 있어 그리 다녔는데 그게 물에 잠기면 다리가 있는 데로 멀리 돌아가야만 했고 그 거리는 8km가 넘었다. 친구들과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멱을 감았고 저수지에선 물고기를 잡았다. 가뭄이 들면 저수지가 쩍쩍 갈라지는데 저수지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물고기를 잡아 가마니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운동을 좋아해 대학을 체육대로 진학했는데 수영 강사 자격증도 이때 취득했다. 대학 졸업 후 서울로 갔고 사회에서의 첫 직업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다. 평생의 반려인 배우자도 이 회사에서 만났고 사내 커플로 지내다가 이후 결혼에 골인했다. 첫 직장인 제약회사에 20년 정도 다니다 아내는 그대로 남고 이계준님은 퇴사했다. 아내는 후에 총무이사 직함까지 달고 회사에서 승승장구했다. 내내 자랑스러웠다.

서울의 한 대형약국으로 이직해 5년 정도 근무하다가 이후 경기도 부평에서 선배가 하던 스포츠센터를 인수해 운영하게 되었다. 규모가 꽤 컸고 수영장의 레인도 많았다. 수영반 회원들을 지도했는데 베테랑 급인 마스터 반 회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도 가르쳤다. 꽤 인기 있었다. 그러나 큰 규모의 스포츠센터 운영은 쉽지 않았고 5년 정도 운영하다 접게 되었다.

1997년 무렵 본격적으로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연중 기온 차이가 큰 한국에서 스쿠버다이빙은 한 해에 5~6개월 밖에 못한다. 겨울 시즌에는 따뜻한 필리핀으로 가 거기서 시즌을 보냈다. 손님들이 오면 공항으로 마중 나가 픽업하고 바다에 들어가 다이빙도 안내했다. 필리핀에서 지내는 동안 좋은 것도 많았지만 치안 측면에서는 불안한 점이 컸다. 지인이 사고를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스쿠버다이버로

한국에 들어와서는 제주도 서귀포로 바로 왔고 2007년부터 제주에서의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제주도는 예전부터 다이빙하러 많이 드나들던 곳이다. 제주도에 와 보니 산호도 많고 생태계도 좋았다. 지금은 최하 수온이 15도 정도인데 그 당시는 최하 수온이 13도까지 내려갔다.

겨울이면 바닷속에 몰망(모자반)이 하나 가득이라 다이빙하다 보면 오리발에 몰망이 수시로 걸리곤 했다. 바닷 속도 사계절이 있는데 봄의 바다가 가장 춥다. 바다는 한 계절씩 늦게 오기 때문이다. 수온이 낮으면 해조류가 왕성하게 자란다. 그 당시 제주 바다엔 미역, 감태 같은 해조류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이는 해녀들의 주 수입원이기도 했다.


다이빙은 주로 문섬, 범섬, 섶섬으로 다녔는데 섬 다이빙 방식이었다. 섬 다이빙은 배에 사람과 탱크를 싣고 가서 같이 내린 후 섬에서 탱크를 메고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방식을 말한다. 탱크를 맨 채, 바로 바다로 뛰어드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이다. 조류가 세거나 바다에서 섬으로 올라오는 역방향으로 흐를 땐 이를 거슬러 올라와야 하니 다이빙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빙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문섬의 작은섬(새끼섬)엔 하루에 150~200여 명이 모여들었다. 모두 산호를 보러 모여드는 것이다. 문섬은 조류가 매우 세다. 조류가 세다는 것은 플랑크톤이 많다는 거고, 플랑크톤이 많은 것은 산호들이 포자 활동을 열심히 하는 조건이 된다. 조류가 센 곳은 모든 것이 왕성하다. 플랑크톤, 산호, 작은 물고기, 큰 물고기, 그보다 더 큰 물고기 이렇게 차례로 먹이사슬을 이룬다.

당시 문섬은 한국 스쿠버다이빙의 메카였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계준님 선배들의 전언에 의하면, 그 당시 다이빙 교육은 군대에서 사용하다 밖으로 흘러나온 스쿠버 장비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문섬이었고 다이빙은 굉장히 열악한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다. 제주 스쿠버다이빙의 역사를 꿰고 있는 이계준님에게 스쿠버다이빙의 1세대가 아니냐는 질문에 본인은 1세대까지는 아니고 1.5세대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겸손하게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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