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눈길 닿은 곳마다 목련이 피고, 벚꽃이 흐드러져 한참 호사를 누렸다. 이제는 봄잔치가 슬슬 마무리되려나 싶었는데 겹벚꽃까지 만개하여 꽃잔디와 함께 여전한 축제를 벌이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꽃바람 흩날리고, 햇빛 따사로운 이 좋은 계절에 둘째딸이 태어났다. 아이 태어나던 26년 전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자라 성인이 되어 사회인으로서 자기 몫을 어엿하게 해내니 감사할 뿐이다.

20대 중반, 내게는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딸

그런데 꽃같이 아름다운 날, 생일을 맞이한 둘째 얼굴이 그리 밝지 않다. 워낙 유쾌하고 활달한 아이라 어느 때보다 더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태어남을 축복하는 '생일' 즈음에 아이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크다.
 
둘째가 근무하는 곳은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라는 곳이다. OECD 가입국 중, 자살률이 최고라는 국제적 오명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을 텐데, 조금이라도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함께 만든 사업의 일환으로 발족한 곳이다.

둘째는 이곳에서 사회복지사로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시도자의 사례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병원에 자살 관련으로 응급실을 내원한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치료를 연계하고 복지팀(사례관리팀)과 의료진(응급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과의 협업을 통해 생명존중을 심화하고 자살시도자의 심리 및 안정을 돕는 일을 한다고 들었다. 자살시도자에 대한 치료 서비스와 자살 재시도 예방을 위한 지역사회 자원연계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하는 가치 있는 업무를 생각하면 자랑스러운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엄마로서는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설 때가 많다. 어엿한 직장인이지만 엄마인 나에게는 아직도 20대 중반의 앳된 딸이기에, 우울과 좌절을 가득 안고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을 매일 만나 상담을 하고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공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되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만 봐도, 국내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연령대는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전 세대에 걸쳐있다. 이들의 자살 시도 이유도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일들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병원뿐만 아니라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자살위기관리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안타깝게도 그 관리 대상 학생들이 있기에 늘 둘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데, 자살시도 사례자를 관리하는 일은 참 만만찮다. 상담 후 예후가 좋은 사례자들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자살 징후가 옅어진 사례자의 감사 전화에 환한 미소만 지을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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