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났다. 선거 결과로 묵은 체증이 뚫리듯 시원한 사람도 있고, 깊은 시름과 낙담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 정치는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당면한 현실과 과제를 실제로 풀어가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가 풀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한두 가지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나는 남북 관계를 포함한 심각한 한반도 위기 극복의 문제를 앞에 두고 싶다. 이 땅의 현재와 미래의 안전이 우선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구상하고 꿈꾸는 모든 중요과제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세계 곳곳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님을 알고 있다. 남북은 3년에 걸친 혹독한 전면전으로 한반도 전체가 잿더미가 되었고, 당시 인구의 1/10에 육박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평화와 공존은커녕 전쟁 종료(종전)와 기본적인 협력관계조차 무너져버린 최악의 상황임을 알고 있다.

평창올림픽 이후 진행된 한반도 평화 전환 시도가 무너진 후 북한은 육해공 모든 곳에서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며 위기를 키웠다. 남한 역시 군사동맹 수준까지 발전한 한미일 동맹을 더욱 굳히고, 핵 공격까지 가능한 한미 군사훈련을 더 강화하였다. 외국에서조차 한국전쟁 이후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경고할 정도다.

현재의 인식만큼 중요한 것은 지금의 위기 구조가 도대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근원을 바로 살피는 일이다. 개인은 물론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은 표면적인 현상 너머의 시작과 그 뿌리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길게 잡으면 한반도 위기의 뿌리는 해방 당시까지 거슬러 가야 하지만, 남과 북,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재 위기 상황의 구조는 1990년대 전후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국과 소련을 필두로 한 동서 냉전 체제가 만들어지고 중국 사회주의 혁명(1949년), 한국전쟁(1950~53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인도차이나 전쟁(1955~75년)과 쿠바 위기(1962년) 등 오랜 대립 시대가 이어졌다.

양 체제의 중심인 미국과 소련이 국내외적 위기를 거치며 1980년대 들어 냉전 대결을 무한 확장하기 힘든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특히 미국 등 서방측과의 체제대결에 쏟아붓느라 국력을 소진한 소련에서 먼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의 거센 바람 맞은 한반도

1985년 집권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 등 서방과의 체제대결 중단과 소련의 개혁 개방을 선언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미국 등 서방측이 불참하고, 1984년 LA 올림픽에 소련 등 공산권이 불참했으나, 1988년 서울올림픽에는 북한과 쿠바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공산권 국가가 참여한 것은 그런 놀라운 변화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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