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는 10만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진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을 안고 산다. 정맥과 모세혈관, 림프관의 이상 증식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발과 다리가 왼쪽 다리보다 두 배 이상 컸고, 발등과 발바닥, 발가락의 생김이 일반인과 완전히 다르며, 오른쪽 다리뼈가 과다 성장해 양 다리 길이 차이가 4cm가량 난다. 다리 길이 차이로 인해 척추측만증이 생겼고, 오른쪽 종아리는 피딱지와 물집으로 가득하다.

외국 유학 시절 낳은 아이였기에, 아이는 5세가 될 때까지 해외의 아동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곳에서 아이는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1년 전, 우리를 5년 넘게 봐오던 혈관 전문의가 내 손에 논문 한 부를 쥐여줬다. 당시 막 1상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된 신약에 관한 논문이었다.

당시 우리 부부는 이제 겨우 1상 임상시험을 진행했을 뿐인 신약에 대해 신중하자는 입장이었다. 아이가 너무 어리기도 했고, 유학을 마치고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임상시험 중인 약물을 섣불리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이 약물에 대한 정보를 한국에 있는 환자들에게 전달했다.

당시 나는 온라인 카페 형태로 한국 환우회를 조직하고 있었는데, 해당 논문을 카페에 올려 이 약물을 한국에서도 쓸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그 후 이 약물은 2019년부터 한국의 환아들에게 '치료목적사용승인'이라는 제도를 통해 일부 공급되고 있다.

문제는 이 약물을 쓰려면 유전자 검사를 먼저 해야 한다는 데 있다. 2018년 처음 이 약물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우리가 이 약에 관심 가질 날이 과연 올까 싶었는데, 이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어느새 사춘기 초입에 접어든 아이는 한국에 온 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원인 불명의 급성 감염에 시달려왔다. 고열과 통증을 호소하며 걷지 못하는 날이 늘던 2022년과 2023년을 거치며 신약을 시도해 봐야겠다, 유전자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2023년 말의 일이다. 그 와중에 일이 터졌다.

너무나도 척박한 한국의 의료환경  

"유전자 검사 하시죠."

지난 2월 27일, 몇 달을 기다렸던 유전의학과 방문일에 의사는 내게 말했다. 한눈에 봐도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아이이기에, 그간 의사 쪽에서 먼저 몇 번 권유했는데도 마뜩잖아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제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하니 의사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단서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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